방송인 김제동 씨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추모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나타나자 울음을 삼키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사는 애국가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 공식 식순에서 '퇴출'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이해찬 전 총리와 도종환 시인의 추도사, 배우 문성근과 명계남의 박석 추모글 낭독, 유족대표 인사, 시민조문단 100명의 나비 날리기, 묘역을 완공하는 마지막 박석 놓기, 유족과 시민들의 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모제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엄수됐다.ⓒ프레시안(최형락) |
100명의 시민참배객의 나비 523마리 날리기, 박석 놓기 등은 고인의 유지나 다름없는 '시민참여'를 상징했다. "나비는 오랜 시간 고난의 시기를 거쳐 비로소 날개를 가진다. 현실의 참혹함과 절망을 이제는 버린다. 날개를 가진 나비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날아오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는 주최 측의 설명이었다.
1만 5000개의 박석의 마지막을 채운 사람들은 한 집안에서 3대가 함께 박석을 기부한 가족, 봉하마을과 노 전 대통령에게 오리농법을 전수한 주형로 씨,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 원창희 씨 등이었다.
유족 대표인 아들 건호 씨는 "어머니와 유족을 대신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참석자들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1년 전 오늘을 돌이켜보면 비통함을 가눌 길이 없다. 여전히 생생하지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비극의 기억이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건호 씨는 "그러나 그날의 비극보다는, 당신이 걸어오셨던 길, 당신이 걷고자 했던 길을 기억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 전 총리는 "지금이야말로 두 분 대통령님의 말씀을 더욱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할 때"라면서 "우리 모두가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종환 시인은 "오늘도 당신을 잊을 수 없는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 봉하마을로 오고 있다. 저 사람의 물결이 보이는가? 그들의 발소리가 들리는가?"라면서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벼랑 끝에 한 생애를 던진 당신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칙을 버리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정의롭게 살아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다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면서 "당신도 우리가 그렇게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어 하실 것이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길'에서 만난 '바보 노무현'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들었다. 가슴에는 노란색 리본이, 손에는 노란 풍선과 바람개비가 들려 있었다. 마치 '거짓말 같았던' 그의 죽음을 접한 지 어느덧 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 본 봉하마을은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은 23일 오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1년 전의 충격과 달리, 다소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추모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온몸을 적시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추모객들은 '아주 작은 비석' 앞에 국화를 헌화하고,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 부엉이 바위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지 어느덧 1년. 그 동안 봉하마을엔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지난해 9월 노 전 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됐고, 지난 16일엔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도 문을 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맞은편에 마련된 '추모의 집'엔 안으로 들어가려는 추모객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농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추모의 집은 120평 남짓의 가설 건물로, 노 전 대통령의 유품과 사진이 전시돼 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손녀와 함께 논길을 달렸던 자전거, 천상 '농사꾼'처럼 담배 한 가치를 피워 물며 썼던 밀짚모자를 바라보는 추모객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옆, '아주 작은 비석' 주변엔 시민 1만5000여 명의 추모의 뜻을 담은 박석(바닥돌)이 새로 조성됐다. 돌에 새겨진 한 글자 한 글자에 '바보 노무현'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겼다. 묘역을 조성한 '작은비석위원회'의 유홍준 위원장은 "몇 마디 이야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맞는 비문을 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아주 작은 비석' 옆에 깔리는 박석에 국민들의 추모의 글을 새기면 그 어떤 비문보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과 죽음에 맞는 비문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겠습니다', '그립습니다, 바보 노무현…'. 비문을 대신한 시민들의 추모글이 적힌 1만5000개의 돌을 따라 걷다 보면, 가장 낮은 곳, 그곳에 여전히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누워있는 '바보 노무현'을 만나게 된다.
대통령의 길은 곧 '슬픔의 길'이기도 하다. 묘역에서 부엉이바위로 오르는 길엔 시민들이 매달아 놓은 노란 추모 리본이 끝없이 펼쳐졌다. 부엉이바위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바보 노무현'을 잃은 슬픔과 마주한다. 봉하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대통령 노무현'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마주한다. 이곳에서 만난 시민 이지선 씨(34)는 "1주기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서 봉하까지 왔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 부엉이바위 위에 올라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부엉이바위에서 만난 추모객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었다.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여 울타리 위에 올려놓거나,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나뭇가지 사이에 꽂아 넣었다. 그가 떠난 봉하마을엔,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바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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