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군기 사고 발발, 軍 '진상 은폐' 의혹

일병이 수류탄-총기 난사해 선배 8명 살해, 군 '상식밖 조사결과' 발표

평소 선임병의 폭력에 시달리던 육군 일병이 수류탄과 폭탄으로 8명의 선배들을 살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육군 일병이 소초장-상병 8명 살해**

육군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19일 오전 2시 30분께 경기도 연천군 중면 OO사단 예하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평소 선임병의 폭력에 시달리던 이 부대 김모(22) 일병이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소총 44발을 난사해 GP장(소초장) 김종명(26.학군41기) 중위를 비롯해 전영철(22)·조정웅(22)·박의원(22)·이태련(22)·차유철(22)·김인창(22) 상병 등 7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이건욱(21) 상병은 군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복부와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김유학(22)·박준영(22) 일병은 복부와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합동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평소 선임병으로부터 언어폭력 등 괴롭힘을 당해온 김 일병은 이날 오전 2시 30분께 경계 근무 중간에 빠져나와 다음 번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반으로 들어갔다가 자신을 괴롭힌 선임병의 자는 얼굴을 보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수류탄 1발을 선임병을 향해 던졌다고 진술했다.

김 일병은 이어 관물대에 있던 동료 부대원 K-1 소총을 꺼내 자기가 갖고 들어간 탄창을 끼워 40여발을 난사했고, 이 과정에 상병 5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김 일병은 이어 휴게실로 이동해 이날 함께 근무를 섰던 GP장 김 중위에게 총기를 발사해 사살한 데 이어, 취사장으로 이동해 물을 마시던 다른 상병에게도 총기를 발사해 사살했다.

사고가 일어난 GP는 군사분계선(MDL)에 인접한 최전방 감시초소로 3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김 일병은 사고후 초소로 돌아가 근무를 섰고, 사고 발생 10여분 뒤 후임 GP장(중위)이 소초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키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 일병의 탄창이 없어진 것을 보고 김 일병을 붙잡아 추궁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육군은 주장했다.

이날 사고를 저지른 김 일병은 지난 해 12월 입대해 올해 1월 14일 이 부대 GP로 전입한 김 일병은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으며 대학 재학중 입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발표 헛점투성이, 사건 진상 은폐 의혹**

그러나 이같은 합동수사단 발표는 곳곳에 허점투성이어서, 군이 사고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우선, 김 일병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부터가 설득력이 없다. 합동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김 일병은 경게근무중 다음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반에 들어갔다가 평소 자신을 괴롭힌 선임병 얼굴을 보는 순간 우발적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합동수사반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정했듯, 현 복무규정은 경계병은 근무를 선 후 탄약고에 총기와 수류탄 등을 반납해야 하고 근무 투입시 다시 지급 받도록 돼 있다. 또한 김 일병은 사건후 초소로 돌아가 근무를 계속 서다가 탄창이 없어진 사실이 적발돼 붙잡혔다고 군은 밝히고 있다. 김 일병은 또 내무반에서 나와 휴게소와 취사장으로 이동해 김 중위와 다른 상병을 사살했다.

이런 의문점들을 종합하면 김 일병은 조직적으로 범행을 했다는 혐의가 짙음에도 군은 우발적 사고였다고 주장하고 잇어, 책임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상을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낳고 있다.

또한 30여명이 자고 있던 내무반에 수류탄에 던져 부대원들 모두를 깨웠던 김 일병이 사고후 경계초소로 돌아가 근무를 하다가 검거됐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 사고 현장에서 모두가 얼굴을 봤을 텐데, 태연히 경계초소로 돌아가 근무를 섰다는 주장 자체가 상식밖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군이 평소 김일병에게 가해진 폭력의 진상 및 사건발발 과정에서의 군 복무규정 붕괴 상황을 은폐하고, 책임소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상을 숨기려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낳고 있다.

***정부여권 '당황', 야당 "진상 제대로 밝혀라"**

군 기강의 총체적 붕괴를 의미하는 사건이 터지자, 정부여권은 크게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사건 발발후 윤광웅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국방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오후 사고현장에 이어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국군 양주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불의의 피해를 당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새벽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사건 개요와 피해 상황 등에 대해 보고받았으며, 오전 8시40분 윤광웅 국방장관과 통화를 갖고 "부상 치유와 사고수습에 최선을 다하라"며 "사태의 원인과 동기를 철저히 밝혀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지시했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전날인 18일 군 수뇌부와 골프회동을 갖고 군의 노고를 치하했던 노대통령은 골프 다음날 이같은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도 크게 당황하며, '정확한 진상조사'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야당은 훈련소에서의 인분 사건으로 윤광웅 국방장관 등이 철저한 인권개선을 약속한 지 다섯달만에 또다시 유사사건이 발발함에 따라 윤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에 대한 엄중문책 및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앞으로 국회에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문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우선 국회 국방위원회는 20일 윤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총기난사 사건의 경위를 보고받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