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계의 핵심 행정기구인 영화진흥위원회 제3기 집행부 진용이 갖춰졌다. 위원장에는 전직 언론인 출신인 안정숙 씨가 선임됐으며 부위원장에는 이현승 감독이, 새로운 위원들로는 독립영화 <송환>의 김동원 감독, 시네마서비스의 김인수 부사장, MK픽쳐스의 심재명 이사 등 현재 국내 영화계에 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영화진흥 위원회는, 그 기능의 중요성에 비해 다소 뒤늦게 출범한 법적기구로 그 전신은 영화진흥공사였다. 현재 상영등 급분류소위원회, 결산심의소위원회 등 무려 10개의 소위원회를 산하에 둘 만큼 국내 영화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 10개 소위의 새 위원장 및 위원은 아직 구성되지 않은 상태며 사무국은 스크린쿼터감시단(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을 통해 영화계내 개혁운동에 앞장서 왔던 김혜준 사무총장이 맡고 있다.
이번 3기 집행부 출범은 그 구성 면면으로 볼 때 영화계의 각종 현안에 대해 보다 정치(精緻)한 이론을 구축하되 이를 실용적 노선으로 실천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념적으로는 다소 왼쪽으로 개혁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되 영화산업이 갖고 있는 생래적 특성 곧, 비교적 큰 자본과 조직력으로 운용돼야 하는 시스템의 특성을 고려하여 영화계 현업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시킨 ‘ 실무파’들을 전진 배치시켰다.
새 부위원장 및 위원들로 임명된 이현승, 김인수, 심재명씨 등 모두는 이른바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듀서들(이현승 감독은 <여섯개의 시선>을 , 김인수 씨는 <넘버3> <정글 스토리> 등을, 심재명씨는 <그때 그사람들>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제작)로서 현재 국내 영화산업의 가려운 부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사들로 꼽힌다.
이념적으로 개혁의 선명성이 부각되고 있는데는 안정숙 위원장과 함께 김동원 감독이 위원으로 전격 발탁된 것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 김동원 감독은 남한내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과정을 그린 <송환>이란 작품을 비롯해서 20년 가까이 ‘굴하지 않고 ’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어 왔던 인물로 유명하다.
김동원 감독의 이번 입성은 영화진흥위원회의 향후 사업이 보다 공익적이며 보다 대사회기능적인 역할로 확실하게 터닝할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동원 감독과 같은 독립영화 기수가 진흥위원이 됨에 따라 향후 국내 독립영화계에 대한 지원은 보다 적극화되고, 또 보다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이는 독립영화인들로서 뚜렷한 청신호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으로 해석된다.
영화진흥 위원회는 지난 99년 이후 제1기와 제2기 집행부를 거치면서 사회적 기능에 대한 노선 정립에 부심해 왔다. 1,2기 모두 한편으로는 주류상업 영화권에, 또 한편으로는 비주류 저예산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권에 손을 내밀고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 노력은 오히려 일정한 성과나 결실을 맺기보다는 양측 모두에게서 일정한 불만을 사는 쪽으로 기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 안정숙 -김동원 조’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시장경제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주류 영화권과는 앞으로 확실하게 선을 긋고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실험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쪽에 사업 방향을 치중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영화계에서는 안정숙 위원장의 ‘합리적 사고 ’ 에 많은 부분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는 눈치다. 한겨레 신문사 출신으로서 오랫동안 영화전문기자로 활동해 온 만큼 독립영화 진영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서 국내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균형있는 방법들을 창출해 낼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출범된 영화진흥위원회 집행부는 그러나, 시급히 해결해야 될 문제들로 겹겹이 싸여 있다는 점에서 위원들의 행정능력이 조기에 검증되고 또 노출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영화진흥위원회는 미국측의 통상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스크린쿼터 제도에 대한 영화계내 행동 방향의 가이드 라인 설정을 한층 더 심각하게 요구받게 될 것이다. 법적 기구로서 쿼터문제에 대한 공식적 태도 표명은 어렵겠지만 영화진흥위의 ‘속내 ’ 에 따라 영화계 전체가 깊은 영향을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스크린쿼터 문제외에 오랜 시간을 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활성화되고 있지 못한 극장통합전산망 시스템 구축 문제, 방송 등 연계산업과의 협력체계를 꾸려내 고 더 나아가 통합영상정책을 효율적으로 구축해 내는 문제 등에 대해서도 그리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영화가 발전 속도와 성장세를 멈추고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냐 아니면 지금보다 체계적인 구조 발전을 이루어낼 것이냐의 많은 부분이 현 3기 집행부의 할 몫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로 임기가 시작된 영화진흥위원회 3기 집행부의 행보에 눈과 귀가 쏠리는 것은 그때문이다.
영화전문 기자 / 동의대 영화과 교수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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