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생명위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생명위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희망을 찾는 농업 살리기 <1> 탁발순례의 길에서 찾은 깨달음

<프레시안>은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건강한 농지제도 개편을 위한 연석회의(농지제도 연석회의)'와 공동으로 최근 농지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통해 촉발된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공론화하는 기획을 마련한다.

특히 이번 기획은 그 동안 농민·생명·소비자·평화·환경운동을 전개해오면서 농업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을 고민해온 여러분들의 '릴레이 기고'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기획을 통해 사실상 '전근대의 유산'으로 치부돼 온 농업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정치·경제·사회문제를 극복하고 21세기 대안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첫 글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도법스님의 글이다. 도법스님은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시작한 후 4백30여일이 넘게 탁발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도법스님은 긴 탁발순례 기간 동안 "빈부 격차와 지역 편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자연 농촌 도시의 오염과 파괴로 생명의 안전성·건강성·지속성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으며, 그 속에서 너와 나, 이웃과 이웃,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불신과 갈등, 분열과 대립이 날로 첨예화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며 "이런 반생명 비평화적인 문명을 극복하고 생명과 평화의 축으로 지탱되는 '지속가능 발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기획의 큰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길에서 찾은 도법스님의 깨달음이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의 고민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생명 평화를 향한 탁발순례의 길에서**

2004년 3월1일 노고단에서 탁발순례의 첫발을 내딛었다. 4백30여일 동안 9천여리를 걷고, 3만여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도시도 돌아보고, 농촌도 순례했다. 도시 사람도 만나고, 농민들도 만났다. 부자도 만나고, 가난한 사람도 만났다. 이 종교인 저 종교인, 진보적인 사람 보수적인 사람, 정치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 만났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으며 보고 들었다. 밥을 얻어먹고 잠자리를 얻어서 잠을 잤다. 돈을 얻어서 생명 평화 활동 기금으로 썼고, 사람들 가슴 속에 숨쉬고 있는 생명 평화의 마음을 얻어내려고 했다. 부분적이고 현상적으로 보면 매우 고맙고 감동적이고 희망적이었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전체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현 시대 우리 모두의 삶은 반생명적이고 비인간적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느 구석을 들여다봐도 답답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없었다. 너나없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계기만 주어지면 하시라도 불만을 폭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직시해야 할 역사 현실 : 생명의 불안과 사회의 지각변동**

순례 길에서 본 두 가지 역사의 진실을 정리해보자.

첫째, 자신의 삶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희망하는 삶을 실현해 갈 주체도 바로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자신을 잘 다루어갈 수 있는 삶에 대한 주체적인 안목과 바람직한 태도를 확립해 가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도시인도 농촌사람도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정치인도 시민사회 운동가들도,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이 지역 사람도 저 지역 사람도 구체적으로 삶의 진실을 눈여겨보려 하지 않는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진실은 바로 자신의 생명이다. 자신의 생명은 '지금 여기' 자신의 문제이다. 너나없이 생명은 유일무이한 가치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생명이 어떻게 이루어진 존재인지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입만 열면 생명과 평화를 얘기한다. 생명이 안전하지 못하고, 삶이 평화롭지 못하며 그 어떤 삶도 불행한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생명 평화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생명 평화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배우고 익히려하지 않는다.

둘째, 삶의 무대는 사회이다.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개개인들이다.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우리 사회는 도시와 농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와 농촌은 우리 사회를 이루는 두 개의 축이다. 그런데 지금 자연의 대변동인 지진으로 인하여 대지의 기본축이 뒤틀리듯이, 우리 사회의 기반에도 대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도시는 사람들의 집중으로 인하여 반(反)생명 비인간적인 삶의 공간으로 병들어가고, 농촌은 사람들이 떠남으로 인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 상황은 삶의 안전성, 건강성, 지속성이 불가능한 국가 사회적 위기 상황이다.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두 발로 걸으면서 보고 느꼈던 순례자의 문제의식이다. 너나없이 삶의 진실을 통찰하려는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정치적 이해타산, 경제적 이해득실에만 골몰하고 있다. 역사 경험의 교훈에는 귀기울이려하지 않고,'내편이냐? 내편이 아니냐?'는 관점에서만 삶의 문제를 다루려고 하고 있다. 역사는 구체적 삶을 진실의 관점에서 다루지 않는 한, 어떤 변화와 발전도 모순과 혼란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오늘의 사회 현상은 생명 평화를 가치 척도로 삼고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는 한, 반생명 비인간적인 야만의 문명사를 극복하고 벗어날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순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한 가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모순과 혼란을 재생산해온 반생명 반평화적인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 넘어서야 한다. 불신과 불만, 갈등과 대립을 극대화해온 그 동안의 문명사가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새로운 문명사를 가꾸기 위한 모색이 절실하다. 국민적 지혜와 힘을 모아 '지속가능 발전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비상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라고 판단되었다.

***왜, 지속가능 발전사회인가?**

20세기 백년은 개발과 성장, 변화와 발전이 눈부시게 전개된 문명사였다. 부분적이고 현상적으로 보면 가히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것이 해결되고 좋아졌다. 농촌 사회에서 도시 사회로,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물질적 빈곤에서 풍요로움으로, 생활의 불편함에서 편리함으로, 비효율에서 효율로,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억압에서 자유로 변화하고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명사의 실상을 보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우리의 바람이 거의 실현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문제는 더욱 확대 심화되었고, 우리의 바람은 아득히 멀어졌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자연, 농촌, 도시의 오염과 파괴로 인한 생명의 안전성과 건강성과 지속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사회 기반인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의 균형과 조화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빈부 격차와 지역 편차가 갈수록 더욱 심화 확대되고 있다. 너와 나, 이웃과 이웃,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불신과 갈등, 분열과 대립이 날로 첨예화하고 있다.

개발과 성장, 변화와 발전의 결과가 생명 위기와 삶의 황폐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의 소리는 뼈아픈 반성적 성찰을 명령하고 있다. 문명사의 현상은 근본적 변화와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생명 위기와 삶의 황폐화를 낳게 한 기존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대립적 방법론으로 일관해온 반생명 비평화적인 문명의 전철을 밟을 경우, 심각한 문명사적 위기를 피할 길이 없게 되어 가고 있다.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대 문명의 여러 가지 조짐들은 인간의 맹목적인 이기적 소유욕을 충족시키려는 가치 의식과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추구하는 한, 인류 문명이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임이 불을 보듯 명백해지고 있다. 지구촌 인류의 삶이 지속불가능할지도 모르는 현대 문명의 심각한 자기모순 앞에 인류 사회는 매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 문명의 현주소이다.

이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이 나라와 저 나라, 이 종교와 저 종교, 관과 시민, 가진 자와 가난한 자, 도시인과 농촌 사람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이고, 경쟁적인 관점과 입장을 넘어서서 생명의 안전성과 건강성과 지속성 그리고 평화로운 삶이 담보되어지는 사회 즉 '지속가능 발전사회'를 서둘러 모색해야 할 때이다.

***'지속가능 발전사회'의 조건**

21세기의 희망, 인류 사회의 희망으로 제시되어진 사회상이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사회이다. '지속가능 발전사회'를 이루어내는 문제는 인류 사회의 운명이 걸려있는 일이다. 절망과 죽음의 길을 갈 것인가? 생명 평화의 길을 갈 것인가? 이것을 가름하는 관건이 '지속가능 발전사회'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 평화의 삶이 실현될 수 있는 '지속가능 발전사회'를 만들어 내는 일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화두임을 뼈 속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절대적인 지속가능발전사회의 조건들이 어떤 것들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겠다.

첫째, 생명의 안전성과 건강성과 지속성의 절대적 조건은 생명의 고향인 '자연'과 생명 활동의 터전인 '농촌'과 생명의 양식인 '생명 농업'이다. 그런데 순례를 통해 확인한 우리의 현실은 '자연과 농촌'이 없어져도 좋을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농촌은 지각변동에 의해 그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었다. 농촌과 자연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도시의 건강성이 지속적으로 담보될 수 없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는 이 단순명쾌한 사실에 애써 눈감고 있다. 시급히 도시와 농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 머리를 맞대어야 할 시기이다. 농민이 없어진 들녘은 생명의 양식인 '생명 농업'을 대신하여, 각종의 위락 단지와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다.

둘째, 사회의 안전성과 건강성과 지속성의 기본적 조건은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이웃과 이웃, 너와 나의 공존과 균형 그리고 지역의 안전한 자립성과 주민의 주체성이다. 세계화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는 세계를 이루는 각 지역이 평화롭게 살아 있어야 온전히 실현된다. 독점과 지배의 논리로서 세계를 획일화시키는 것으로는 진정으로 공존과 균형에 입각한 세계화일 수 없는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생명의 터전을 제대로 지켜갈 수 있는 지역민들의 주체적 각성이다. 지역민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 애정을 가지고, 확신 있는 태도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때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삶의 질적 내용의 본질적 조건은 생명의 실상에 근거한 세계관과 철학, 가치의식의 주체적 확립이다. 건강한 사회는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건강한 '철학과 삶의 태도'에 기반을 둔다. 지금의 삶의 질은 '파괴적 자연관과 경쟁적 인간관 그리고 대량 소비의 문명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현대 문명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이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진실한 자세로 자명한 이 사실에 대하여 성찰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절대적 화두인 지속가능발전사회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위에서 짚었던 세 가지의 조건들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만 가능하다. 이 점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인식하는 안목과 문제의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역사의 명령에 겸허해야 한다. 생명 위기와 삶의 황폐화를 낳게 한 현대문명의 오류를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모순된 현대 문명을 자초한 인간중심의 왜곡된 가치의식과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인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대립과 경쟁의 삶의 방식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한다. 새로운 안목이 필요하다. 삶의 궁극적 이상과 가치인 생명평화의 길에 눈떠야 한다.

기존의 모든 입장들을 넘어서서 인류의 영원한 염원인 생명 평화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의 장기적 구상이 필요하다. 앞에서 제시한 '지속가능 발전사회'의 조건이 온전하게 존중되고,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몇 가지 근본적 계획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첫째, 국민들로 하여금 문명사의 오류를 직시하고 왜곡된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넘어서서 생명 평화의 가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생명 평화 공동체로서 통일된 한반도를 추구해야 한다.

셋째, 생명 평화를 가치 척도로 국가의 정책과 제도가 정리되어야 한다.

넷째, 반드시 생명 평화의 세상인 '지속가능 발전사회'를 위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와 결의를 형성해야 한다.

다섯째, 관과 민, 여와 야, 종교와 종교, 자본가와 노동자, 도시와 농촌 등 범국민적 지혜와 역량이 통합적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가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민사회가 희망하는 생명평화의 한국사회 실현을 위해 대범한 발상전환을 해야 한다. 관이냐 민이냐, 진보냐 보수냐, 자본가냐 노동자냐, 이 종교인이냐 저 종교인이냐, 이 단체이냐 저 단체이냐 등의 분열적이고, 대립적인 입장을 과감하게 넘어서야 한다. 진정 생명 위기, 사회 위기, 삶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장기적인 해결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바람직한 생명 공동체로서의 한반도 사회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전심전력해야 한다.

지금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 사안에 대한 대응과 함께,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구상과 계획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물론 쌀 개방, 농지법 개정, 국토 난개발 등을 막아내는 현안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문명사적 격변의 상황으로 볼 때 시민사회의 역량이 보다 더 통합적인 대안과 전망을 세워가야 할 때이다. 오늘의 우리 현실이 총체적 위기상황임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비상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시민사회의 전 역량이 모아져야 할 때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