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센트럴파크에 외국군 기지가 있다거나, 워싱턴 부근에서 외국군의 장갑차가 연루된 비극적 사고가 난다면 미국 여론은 어떻겠느냐?"
홍석현 주미대사가 11일(현지시각) 주한미군의 서울 용산기지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2명 사망사건으로 인한 한국내 반미 정서를 설명하면서 내세운 '역지사지론(易地思之論)'이다. 경기고-서울대-스탠퍼드대를 나온 수재다운 비유다. 매끄럽고 감동적이다.
홍 대사는 이날 워싱턴DC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국의 반미정서는 중동의 반미주의와는 다르다. 그것은 특정한 이슈나 사건에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내 반미정서의 배경과 원인을 386세대의 시각에서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일견 설득력있는 분석이다.
그는 "1980년 전두환 장군은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시위를 빌미로 정권을 잡고 300여명의 시민을 학살했다. 그때 미국이 이를 묵인한 것으로 비쳐졌다. 또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집권 이후 첫 외국 손님으로 전두환 대통령을 초청하면서 미국이 전 정권을 승인했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 결과 1980년대의 반정부 시위는 종종 반미 시위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상당히 논리적인 분석이다. 이 역시 그럴 듯하다.
문제는 이 분석 속에 치명적인 모순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전두환 장군의 학살 행위'와 '미국의 전두환 정권 승인'에 대한 부분이다. 홍석현, 그는 누구인가. 그의 휘황찬란한 경력 중에서 다른 것은 놔두고라도 83∼85년간의 행적을 보면, 그가 과연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77부터 세계은행(IBRD)산하 경제개발연구소 조사역으로 일하다가 83년 귀국해 재무부장관 보좌관으로 관계에 발을 디딘다. 그러나 그것은 정거장에 불과했다. 홍석현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CSIS 연설에서 비난했던 바로 전두환 정권의 권력핵심에서 관료생활을 '즐긴'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짧은 그의 관직 경력은 노무현 정권에서의 주미 대사 발탁 당위성에 상당한 작용을 한다.
그의 이날 발언에서 또 하나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
바로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노무현의 '균형자 역할'론이 한국이 초강대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거나 어떤 중립적 입장을 취하겠다는 게 아니라 한·미동맹과 미국의 지도력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상호번영과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기본 개념으로 하고 있다"고 옹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소유하고 있는 중앙일보의 필진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균형자 역할론에 입체적이고 악의적인 태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유와 경영, 아니 소유와 논조의 분리라고 주장할 것인가? 중앙일보는 삼성과의 소유와 경영 분리를 주장하면서 교묘하게 열린 보수, 친재벌 성향, 반노조 성향 등 진부한 논조를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특히 홍 대사는 "한국은 이웃나라를 침략하거나 위해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서, 역내평화조정자와 공동체 건설자로서 도덕적 우위와 정통성을 갖고 있으며, 미국 역시 영토적 야심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은 한·미 양자간 굳건한 동맹을 기반으로 안정 혹은 균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주장은 아예 말도 안되는 얘기다. '한국이 이웃나라를 침략하거나 위해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는 주장과 '미국 역시 영토적 야심이 없다'는 대목은 사실(史實)과 사실(事實)을 왜곡한 전형적인 허위 주장이기 때문이다.
홍석현 대사의 절묘한 변신과 가히 천재적이기까지 한 소신 전환, 정말 감탄스럽다. 문제는 이같은 변신과 소신 전환이 자연인 홍석현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거대 미디어 그룹의 오너이자 대한민국의 재외공관장 중 가장 중요한 포스트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의 홍석현 주미대사 기용은 엄청난 실수이다. 그의 인물분석과 활동 전망에 대해서는 차후에 또 언급하겠지만, 노무현 정권의 홍석현 기용은 그에 대한 과대 평가와 평가 오류, 과도한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전형적 실패 케이스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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