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안의 조건**
불상을 새로 마련했을 때 그 불상의 혼을 살리고 신통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눈동자를 그려 넣는 의식을 치르는데, 이것을 점안(點眼)이라고 한다. 조각을 다 마쳐도 조각가는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는다. 점안은 조각가의 몫이 아니라 수행이 깊고 신통력이 있는 고승대덕의 몫인 것이다. 만들어진 불상을 놓아야 할 자리에 가져다놓고 의식을 치르면서 점안을 하게 된다.
무애스님도 오대산 자락 주변에서 점안식을 할 때에는 초청을 받았다. 그것은 절이 아니라 무속인들로부터였다. 절에서는 이미 하산을 하셨고, 항상 주민들의 병을 신통하게 다스려 주시는 스님의 능력을 인정해서 그랬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무애스님이 점안을 하실 때 필자도 따라가서 구경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무속인들은 특별히 신(神)을 가리지 않는다. 신을 더 많이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더 능력 있는 무속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여자 무당을 대접해서 만신이라 이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1만의 신을 모신 무당을 일만 만(萬) 자를 써서 만신(萬神)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 무속인들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기독교의 예수 상은 모시지 않지만 다른 신은 가리지 않고 모신다. 그 중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모시는 것이 부처님의 상이다. 아마 우리나라에 있는 신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슈퍼파워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점안을 요청해 오면 스님은 단서를 붙여서 승인을 하셨다. 그 주변 동네 사람들이 다 와서 배불리 먹을 만큼 음식을 많이 해서 사람들을 먹여 달라는 것이었다. 점안은 무속인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기 때문에 점안해 주는 고승대덕에게 상당히 많은 재물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당신께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사람들 먹일 생각만 하셨다.
우리나라는 이제 굶어죽는 사람은 없지만 아직도 때를 거르는 사람이 많은 복지 후진국의 하나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끼니 걱정은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로서는 배불리 먹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이제 고기는 그만 먹고 채소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채식주의자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고기는 아무 때나 구워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절이나 어른들 생신날에만 국을 끓여서 국물과 함께 손톱만한 고기점 서너 개를 넣어서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먹는 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아 목으로 스르르 넘어갔다. 지금도 그때의 고기 맛을 생각하면 입안에서 군침이 돈다. 우리나라에서 고기 구워 먹는 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자가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경이었다.
필자가 살던 서울이 그랬으니, 강원도 산골짜기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논농사할 평지가 많지 않으니, 밭에다 조, 수수에 감자를 경작해 주로 밭작물을 먹고살았다. 지금도 강원도 사람들을 ‘감자바위’라 부르고 있는 것은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쌀밥은 못 먹고 감자나 먹고사는 사람들이라고 아래로 보는 뜻도 있었지만, 실제로 감자 농사가 잘 되니 감자를 많이 먹고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또 감자가 건강식품으로 꼽히고 있으니, 세월 따라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다.
스님은 눈동자를 그려 넣고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고 의식을 마치신다. 그러면 무속인은 돈을 주면서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한다. 스님은 돈을 사양한다. 사양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강하게 사양한다. 무속인은 그러시면 안 된다며 거듭 가져가시라고 권한다. 그러면 스님은 정말로 마지못해서 받으신다.
이 돈을 스님은 바지춤에다 똘똘 말아 깊숙이 꽂아 놓으신다. 스님께서 이 돈을 쓰실 때가 있다. 우선 당시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을 켰는데, 여기에 연료로 쓰는 것이 석유(중유)였다. 동네 젊은이들이 오일장에 갈 때면 10홉들이 유리 댓병 두 개를 새끼줄로 묶어서 바지춤에서 꼬깃꼬깃해진 돈과 함께 주신다.
또 돈을 쓰실 때가 있다. 아주머니들이 산달이 되면 스님께서 준비를 하시는데, 다름 아닌 미역이었다. 미역도 장에 가서 돈을 주고 사야 했다. 또 어느 가난한 집 아주머니한테 미역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되면, 역시 젊은이들한테 부탁을 했다. 동네 젊은이들은 스님께서 시키는 일에 군말 한마디 없이 당연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로 여기고 기꺼이 심부름을 했다.
필자는 점안식이 끝나고 스님이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필자한테는 좀 먹고 오라 이르고는 혼자 떠나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필자도 20대 중반의 식욕이 왕성한 나이이니 먹고 싶은 생각이야 없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혼자 털레털레 산에 있는 움집으로 올라가는 것이 싫어서 그냥 스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이미 1일1식이 몸에 배어 특별히 음식이 입에 당기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스님은 당신께서는 한 끼 소식(小食)으로 사시는 데 만족하셨지만, 동네 사람들이 못 먹고 굶주리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마음 아파하셨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먹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고 계셨다. 사람들에게 당장 자기 목숨에 대한 위협이 없을 때 가장 서러운 것은 춥고 배고픈 것이다. 배고플 때 추운 것이지, 속이 든든하면 춥지도 않은 법이다. 당시에는 추위야 산에서 나무라도 해다 때면 됐지만, 배고픈 것은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일화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사람의 5복(五福) 중의 하나로 이(齒)가 튼튼한 것을 들었다. 이가 부실해서 음식 맛을 모르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을 잃는 것이니, 5복 중에서도 튼튼한 이는 으뜸이라 할 것이다. 음식 맛을 모르는 것도 불행한 것인데, 하물며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것보다 더 큰 아픔과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1950~60년대에 인구는 넘치고 먹을 것은 부족할 때 미국이 PL480호에 의거해서 준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에 의지해서 목숨을 부지했다. 40대 이상의 사람들 중 미국이 준 식량을 먹지 않고 자란 이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도 잘 먹고 잘사는 나라가 됐으니, 특히 그 시절을 생각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기아에 신음하는 우리와 똑같은 인류를 구제하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에서 너무 인색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짠 음식은 독인가?**
이왕 먹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소금에 관해서 한마디하고 싶다. 요새 사람들은 보통 고혈압의 원인을 술과 담배, 스트레스, 짠 음식으로 알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그렇게 얘기하니 그렇게 믿고 살고 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 짜게 먹는 사람은 핀잔까지 받는다.
그런데 술은 음식이다. 모든 음식은 너무 과하게 먹으면 좋지 않다. 밥도 너무 많이 먹으면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술도 너무 과하게 먹으면 분해를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몸에 해롭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당하게 먹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술도 음식이니 술 마시는 즐거움 자체를 포기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시고 싶은 사람은 적당히 마시고, 마시기 싫은 사람은 안 마시면 되는 것이다.
담배를 피면 우리 몸에서 나쁜 요소를 위로 밀어내 코로 내뱉게 된다. 이런 능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은 담배가 해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은 담배를 펴도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담배도 몸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피면 인생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술과 담배의 문제는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우리 몸이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몸이 틀어져 있어 기관의 기능이 저하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술과 담배는 교감신경을 자극해 심장의 박동을 빨리 하기 때문에 심장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고혈압의 근본적인 원인은 심장이 혈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이는 흉추에서 심장으로 연결되는 혈압을 관장하는 신경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 신경이 풀리면 고혈압은 저절로 사라진다.
스트레스는 실제로 받는 스트레스도 중요하지만,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이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하면 등이 구부러지는데, 그러면 흉추 3, 4번이 틀어지면서 심장으로 가는 신경이 막혀 심장의 박동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진다. 스트레스 역시 혈압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인은 등이 구부러진 데 있지, 스트레스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등이 많이 굽어 있고, 이것 때문에 없어야 할 등살이 두껍게 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등쌀의 어원이 등살인지는 몰라도, 등살은 등쌀만큼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고혈압을 이기는 길은 등을 펴 이 등살을 없애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짠 음식이 만병의 원인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는 것도 정말로 잘못된 것이다. 소금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이고, 필요한 소금을 섭취하지 못하면 우리 몸은 전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돼 있다. 또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우리 몸이 알아서 과잉된 염분을 땀이나 오줌의 형태로 걸러내서 밖으로 내보낸다.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이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쓰고 불필요한 것은 비상시를 대비해 쌓아 두거나 밖으로 내보내게 돼 있다.
문제는 소금에 들어 있는 몸에 해로운 성분이다. 소금은 주로 바닷물을 말려서 만드는데, 여기에는 염산과 나트륨이 함께 함유돼 있다. 나트륨도 우리 몸에 필요한 원소이지만, 나트륨 중에는 우리 몸에 해로운 변형된 나트륨도 있다. 고혈압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염산과 이 나쁜 나트륨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죽염은 이 나쁜 성분을 제거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친 소금을 말한다. 이 죽염은 무엇보다 염증을 제거하는 데 효력이 있다. 일반 염증뿐만 아니라 비염의 염증, 아토피성 피부염의 염증을 해소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아토피의 경우에는 증류한 죽염수를 써야 하지만.
문제는 죽염이 좋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죽염을 찾고 너도나도 죽염을 만들고 있는데, 시중에 나도는 죽염 중에는 거꾸로 나쁜 성분을 강화한 죽염이 있다는 것이다. 고동색 빛이 나는 죽염이 그런 것이다. 좋은 죽염은 약한 잿빛에 거의 하얀 색을 띠고 있다.
죽염이 없으면, 왕소금을 쓰는 게 좋다. 표백을 한 곤소금(흰 소금)은 좋은 성분은 제거하고 나쁜 성분을 강화한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왕소금이 좋다는 것이다. 왕소금을 물로 한번 씻어서 불순물을 걸러내면, 좋은 죽염보다는 못하지만 나쁜 죽염보다는 훨씬 좋다.
소금은 고혈압의 원인이 아니다. 나쁜 소금은 고혈압에 영향을 주지만, 좋은 소금은 몸을 맑게 한다. 오히려 현대문명이 좋은 왕소금을 몰아내고 나쁜 곤소금을 먹게 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반성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필자**
1949년 서울 생
저서 <몸의 혁명>(백산서당 간)
연락처(momsali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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