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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치 후회 안해.."

오동진의 영화갤러리<34> '배우' 문성근 인터뷰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생각하기만 하면 문성근은 아직도 입맛이 다셔진다. 3년전 그는 아쉽게도 이 영화의 배역을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문성근 대신 <지구를 지켜라>에서 역을 맡았던 백윤식은 일약 스타가 됐다. 소위 인생역전의 기회를 맞은 셈이 됐다. 백윤식은 이후 <범죄의 재구성> <그때 그사람들> 등에서도 주요 배역을 따냈으며 시쳇말로 현재도 계속해서 잘나가고 있다.

물론 문성근이 백윤식의 높아진 인기를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성공을 가로챘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연기자는 늘 좋은 작품을 놓치면 마음에 끝까지 남기는 법이다. 어쨌든 문성근은, 사람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작품을 놓치거나 버려가면서까지 지난 3년동안 정치활동에 힘을 쏟았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문성근을 스크린에서보다 정치집회장에서 더 많이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줄기차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받았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가 더 이상 영화배우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그는 그럴 때마다 늘 연기를 다시 하겠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그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진짜, 영화계로 컴백했다. 그것도 지금껏 별로 해본 적이 없는 연쇄살인범을 좇는 강력계 형사 역으로. 배우출신 감독 방은진의 장편데뷔작 <오로라 공주>가 그가 선택한 컴백작이다.

***"사람들에게 빨리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 많은 사람들은 당신의 영화속 이미지를 지식인이나 늘 정의의 편에 서있는 인물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당신은 < 오! 수정>이나 <질투는 나의 힘>처럼 비루하고 야비한 지식인 역할을 더 잘한다.

문성근: (웃음) 음…그런 역할이 허망하고 부조리한 지금의 세상을 역설적으로 조롱할 수 있는 것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편이다. 배우에겐 그런 배역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번 영화 <오로라 공주> 에서의 형사도, 음… 한마디로 목사가 되고싶어하는 형사다. 그 말 한마디로 이번 영화의 캐릭터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뭔가 세상을 안타까워 하고, 조직과 사회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렇게 빈 구석이 있는 인간이라는 거다. 어쩌면 그게 바로 나다. 이번 영화의 캐릭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영화속 주인공처럼 나도 그렇게 늘 용서받고 구원받고 싶어 하니까.

- 이번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좋아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스릴러 장르이기 때문에? 아니면 방은진 감독과의 친분때문에?

문: 세가지 다다. 대본의 완성도가 일단 너무 좋았다. 캐릭터에 끌렸던 점도 있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기도 했다 . 하지만 특히 방은진이란 감독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에 마음이 갔다. 방은진은 다 아는 것처럼 정말 연기자다. 작품을 정확하게 운반해 내고 또 분석해 낼 줄 아는, 지성을 갖춘 배우다. 몇몇 단편을 통해 보여진 연출력도 뛰어난 수준이었다. 오래 전부터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동안 연기를 계속하겠다고 몇번씩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빨리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작품 기획에 들어갈 때는 일단 거기에 나올 연기자의 이미지를 떠올리 면서 작품을 쓰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그런 대상에서 제외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은진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

- 이번 영화속에서도 늘 그렇게 첫번째는 뭐, 두 번째는 뭐, 하는 식으로 앞뒤 말을 착착 맞춰서 하나? 형사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인 것으로 안다.

문: (웃음) 물론 영화속에서는 안그런다. 말을 그렇게 하는 건 일종의 직업병이다. 앞뒤를 딱 맞춰서 조리있게 말을 못하고 집에 돌아 간 날이면 잠을 못잔다. 아 오늘 인터뷰때 당한 것 같아,하는 마음이 드는 거다. 이거..「그것이 알고싶다」영향인가 봐. (웃음)

***"정치활동 후회 안해, 하지만 정치를 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

- 그동안 영화 안하고 정치했던 거 후회하나 ?

문: 전혀. 오히려 영광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언제 그렇게 역사 안으로 바짝 들어가서 치열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난 너무너무 감사해 하는 쪽이다. 연기 공백은 내가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일이다.

- 영화가 재밌나, 정치가 재밌나?

문: 다이너믹한 측면에서 보면 정치속의 드라마도 결코 만만치 않다. 특히 우리처럼 매일매일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화가 더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내가 최종적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정치를 한다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무지무지하게 고생스럽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는 사람을 잡는 일이다.

-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문성근은 결국 정치판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문: 지난 3년간 난 일종의 자원봉사자였다 . 좀 깊이 참여한 '자봉'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 혼란을 드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다. 시민 한명한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해야 제대로 운영되는 그런 나라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나처럼 적극적인 정치 자원봉사자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활동이 적극 권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고. 때문에 그런 차원의 일은 앞으로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 말도 좀 헷갈리는데?

문: 지금 내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는 다소 복잡하게 여러가지 얘기를 해야 하니까 그냥 쉽게, 한마디로만 말하겠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덕도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금의 정부나 정권으로부터 덕을 보기 위해, 한 자리 하기 위해 지난 3년간 정치활동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실천하고 싶다. 정치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고 지금부터 어떻게 살지는 내 자유다. 그걸 미리 얘기해서 나 스스로를 속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 정치 대신 <지구를 지켜라>를 선택했으면 지금 매우 다른 처지였을 것이다.

문: 물론 아쉽긴 하다. 하지만 당시 사회정치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작품 놓치더라도 그걸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한다. 아쉽긴 하지만 못견디게 안타까울 정도는 아니다. 배우에겐 또 기회가 오는 법이다. 이번 작품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 영화계에 가장 중요한 건 배급문제"**

- 이번 작품은 연쇄살인범 얘기다. 스릴러 작품은 처음인 셈인데 어떤가?

문: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상당기간 연기 안한 게 힘들 뿐이다. 체력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방은진 감독이 평소에는 친하게 굴어도 현장만 가면 싸늘해진다. 그 여자, 꽤나 차가운 여자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아주 쌀쌀맞은 표정으로 배우가 몸이 너무 불었다며 살을 빼라고 해서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5Kg정도 감량했고 지금도 계속 다이어트중이다. 오랜만에 연기하느라 감정몰입도 쉽지 않은 데다 다이어트 때문에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

- 우리 영화계는 3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문: 촬영감독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때 막내였던 친구더만. 그때가 작고한 유영길 감독 시절이었지 아마. 이번 조명감독은 사실 그 아버지하고 일을 많이, 시간이 많이 했고... 아차 이거 내가 나이가 많다는 얘기밖에 안되는군. (웃음)

- 당신이 쉬는 3년동안 중년 연기자들의 몫이 굉장히 확장됐다 .

문: 멀티플렉스가 베드타운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나이든 관객이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나이든 관객이 있으니까 영화에서 다루는 얘기들도 그 연령대로 올라간 셈이다. 물론 <황금연못>까지 가는 수준은 아니지만.(<황금연못>은 노년의 얘기를 다룬 헨리 폰다 주연의 영화 – 편집자註)

- 그런 만큼 당신의 연기 정년도 올라갔다고 생각하나?

문: 나야 이제 늘 '중고신인'일 뿐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우리 영화계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참에 언론에 요청하고 싶은 것은 나나 안성기 형처럼 이미 다 아는 사람은 제끼더라도 우리 바로 밑에 있는 친구들은 기사가 나갈 때 가급적 나이를 안밝혀졌으면 좋겠다. 할리우드는 그걸 지킨다. 잭 니콜슨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 출연했을 때 상대배우인 헬렌 헌트와의 나이 차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근데 우리의 경우는 그걸 쓴다. 배우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지금 국내 영화계에 가장 필요한 것은 ?

문: 제일 중요한 것은 배급문제가 아닐까? 스크린쿼터로 미국과 싸우다 보니까 미국의 배급방식을 그대로 배우게 되버렸다. 크게 벌리고 크게 먹는, 독점방식말이다. 이걸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지난 해에 극장체인인 프리머스가 CJ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간 것은 앞으로도 계속 아플 일이라라고 생각한다. 영화계를 부감으로 길게 볼 줄 알았으면 절대적으로 막았었어야 했던 일이다. 정책적으로 예술영화든 등등을 도와주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예산 문제라는 게 늘 있는 거니까…아이디어를 하나 더 얘기하자면 중소형 영화, 예술영화의 배급을 위해 전국 공공도서관에 영상섹션을 만들어서 DVD 등으로 보게 하는 거다. 어때, 좋은 아이디어지?

- 물론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이 대목부터 사람들이 읽지 않을 것 같다. 인터뷰 끝내자. <오로라 공주>로 빨리 만나기를 기대하겠다.

문: (웃음) 현재 한 20% 찍었을 거다. 7월이 넘어가야 촬영이 끝난다. 곧 스크린에서 뵙겠다.

영화전문기자 / 동의대 영화과 교수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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