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시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수차례 설명하고 나섰지만 그 뚜렷한 개념과 구체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22일 연 정책토론회에서도 동북아 균형자론은 약소국 외교정책론적 관점에서 '균형 외교'란 개념으로 설명됐으나 다양한 이견이 제시돼 더 이상의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개념 정립과 이론적 세련화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김기정 교수, “균형자론, 약소국 외교 전략차원의 ‘균형 외교’”**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민화협 통일포럼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의 국제정치학적 의미>란 주제발표를 통해 "균형자론은 지역 국제정치에서 권력 구조의 변동, 즉 세력균형체제의 새로운 창출이나 기존 세력구도 변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외교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김기정 교수는 균형외교(balancing diplomacy) 개념에 대해서는 "약소국이 자율성 확보 차원의 주권을 보호하고 확대하기 위해 고려하는 외교 전략"이라며 "일국 중심의 외교구도를 탈피해 외교적 유연성을 구가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균형외교에서 균형자 역할은 19세기 영국의 세력균형 지향적 균형자(balancer), 탈냉전기 미국의 안정도모자(stabilizer)라기 보다는 19세기 후반 독일 비스마르크의 주변국들과 상호 신뢰구축 관계 설정을 통한 중재자 역할(honest broker)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에 따라 한국이 추구하는 균형외교로는 ▲동북아 지역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 확대시켜 나가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 ▲국가간 갈등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조정자(mediator) 역할 ▲협력의 지역질서 속에서 공생의 질서, 공동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적 아젠다를 제시하는 창안자(initiator) 역할을 거론했다.
그는 그러나 "균형외교를 통해 지역 수준의 평형상태(equilibrium)를 유지시키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도 균형 추구의 한 목표가 될 것"이라면서도 "제약도 도처에 존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한 제약 요인으로 힘의 논리가 국제관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19세기 및 냉전기 인식요소의 관성과 여전히 홉스적 무정부성에 관한 인식이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동북아 국가의 인식문제를 꼽았다. 아울러 현실적으로도 북핵문제의 해결구도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한국 외교의 구체적 수단이 제약돼 있다는 점도 동북아 균형자론에 미치는 한계로 지적했다.
***조성렬 연구위원, “정부에서도 해석 차이, 이론적 세련화 과정 촉진해야”**
토론에 나선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균형자 개념과 관련해 해석이 너무 다양하다”며 “개념이 먼저 정립되고 전문가들의 토론을 거친 후 나왔다면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아무리 균형자론을 설명하더라도 오해와 잘못된 이해가 나오고 있다”면서 “정부에서도 (관계자별로) 해석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 안에는) 상당히 양립할 수 없는 개념 등이 포함돼 있다”고 정부측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이에 따라 “균형자 개념이 이미 나왔으므로 정립 하는데 필요하는 이론적 세련화 과정을 촉진해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하며 “동북아 균형자론 제기 과정을 보면 정말 외교적 개념에 국한한 것인지 아니면 상당부분 군사적 의미 들어가 있는 것인지 명확히 돼야 하고 동북아에서 이미 대립 구도가 심화된 상황을 상정한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밖에 김기정 교수가 한국의 균형자론은 미-영 형이 아니라 독일형이라고 주장한데 대해서도 “최근 우리의 대일 외교정책을 보면 독일형의 ‘정직한 브로커’ 역할보다는 ‘약한 고리’인 일본에 공격해 균형을 맞추는 밸런서 역할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단순한 촉진 및 신뢰 조성자라면 기존의 ‘동북아 협력개념’으로도 가능하지만 대일 정책을 보면 하나의 세력균형자를 도입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는 설명이다.
***우승지 교수, “균형자론 개념상 모호 충분치 못해, 시기적으로도 부적절”**
우승지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도 “균형자론이 나온 것은 시기적으로 좋지도 않고 정부 관계자들이 말하는 것이 포인트가 다르기도 하며 동북아에서 다자 안보틀을 만들고 한미동맹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뜻인지 개념상으로도 모호하며 충분한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우승지 교수는 “(균형자론의 목표를 보면) 촉진자 및 신뢰 구축자로도 충분한데도 19세기 균형자를 들고 와 혼란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면서 “19세기 전통적 밸런서 개념은 21세기에 잘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평면적 개념인 균형자론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동북아는 다면적 입체적 모습이며 실제로 동북아에는 미-중-일 트라이앵글이 있고 그 사이에 한-중-일 전통 삼각관계가 있으며 그 아래에 남-북-러, 남-북-일, 남-북-미 등 또다른 삼각관계가 놓여 있는 등 다층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도 “동북아 균형자론이 이전보다 분명한 외교전략인 것 같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면서 “이것이 자주 외교의 연장선상인지, 국제정치에서 좌절된 자주외교의 경험에서 파생된 개념인지 의문이 많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김기정 교수는 “개념 정의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지적은 인정한다”면서 “처음부터 고정된 개념이 아니고 만들어가야 할 개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균형자론은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해야 한다”면서 “균형자론과 한미동맹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론적 관점에서는 그럴 수 있으나 현실 문제를 보면 한미동맹을 변형해 한중동맹으로 가면 대립 구도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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