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주미대사가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 홍대사는 13일(현지시간)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하겠다"며 "늦어도 올해 안에 출마선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결정이 나는 대로 9월께 가시화할 생각"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홍 대사는 이어 "공식 출마 선언은 노무현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9월이나,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리는 10월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아시아 몫이 될 가능성이 커서 이미 4∼5명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고 한다.
***지금이 출마선언할 땐가?**
여기서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홍 대사의 발언 시기가 적절했는가의 여부다. 지금 한반도는 한동안 드리웠던 북핵 먹구름이 북한의 6자회담 수용으로 천신만고 끝에 서서히 걷히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관계도 그 동안 한미 양측 극우 보수세력들의 북한 및 노무현 정권 흔들기와 이간으로 초래된 오랫동안의 갈등이 겨우 해소돼 예전 관계를 조금씩 회복해가는 조심스런 국면이다.
그런 상황에서 주미대사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당장 이달 말에 있을 6자회담에 앞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미간, 미-일간, 미-중간, 미-러간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관련국 공관장들에게 긴밀한 협조를 구해야 할 판이다.
한편 그 동안 한미 양측 보수 세력의 한미동맹 균열 이간으로 만신창이가 된 양국간의 관계를 조속히 복원하는 것도 홍 대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따라서 지금 자신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 당위성을 설파한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당선 가능성은 있는가?**
다음으로 홍 대사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 가능성 여부를 보자. 현재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거론되는 후보는 타이의 수라키앗 사티라타이 부총리, 싱가포르의 고촉통(吳作東) 전 총리, 스리랑카의 자얀타 다나팔라 전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 필리핀의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등이다.
홍 대사는 아시아 몫이 될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군 중에서 자신이 가장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 거명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홍 대사의 지명도와 함량이 가장 떨어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홍 대사가 이들 쟁쟁한 후보군과 겨뤄 최소한 결승에나 나갈 수 있을지 그의 이력을 한번 살펴보자.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국 경제와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홍 대사는 졸업 직후 세계은행(IBRD)에서 잠시 일한 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재무장관 보좌관으로 관계에 들어와 곧이어 청와대 비서실에서 2년 남짓 일한 것이 공직생활의 전부다. 오너로서 중앙일보 발행인으로 있으면서 세계신문협회장을 지낸 것이 국제무대에 데뷔한 것이라면, 지난 2월 주미대사에 보임돼 5개월째 봉직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국제무대에서의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보임된 유일한 경력이다.
국제적 지명도도 지명도이지만, 홍 대사는 불행히도 남북분단 및 핵문제로 첨예한 갈등이 집중되고 있는 한반도 출신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 간단없이 발생하는 국제문제를 거중조정하고 때론 특단의 결단을 내리기도 해야 하며, 미국 중국 등 강대국과의 빅딜도 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를 과연 홍 대사가 차지할 수 있을까, 그에게 유엔회원국들이 표를 던질까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자격 여부를 따져봤는가?**
진정 홍 대사가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할 자격이 있는가도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홍 대사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해야 할 문제다.
재산 공개과정에서 불거진 부동산 투기 의혹이야 지나치자. 기회가 없어 하지 못하지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그 문제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운 문제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병역 기피 의혹과 독재정권 하에서의 공직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탈세범으로 복역했던 경력에 이르면, 홍 대사를 주미대사로 보임한 참여정부의 도덕성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병무청 기록에 따르면 그는 폐결핵 때문에 병역을 면제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문제는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 68학번이었던 그가 스트레이트로 학교에 다녀 72년 2월에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병력을 면제받을 정도의 중증 폐결핵 환자가 당시 고도의 실험과 치열한 학습을 요구하던 전자공학과를 쉬임없이 다녔다는 것. 어딘가 석연치 않지 않은가.
다음 전두환 정권에서의 그의 행적이다. 그가 길지 않은 IBRD보좌역이라는 일자리를 뒤로 하고 귀국한 것은 83년 6월. 그는 당시 정식 직제에도 없는 재무부장관 보좌관이라는 직책으로 관계에 입문한다. 그리곤 6개월이 채 못돼 청와대 비서실 보좌관으로 변신한다, 1년 반쯤 청와대 생활을 한 그는 이번엔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87년부터는 사돈집으로부터 건네받은 삼성코닝의 실질적 경영자로 재계에 투신한다.
얼마전 자신이 비난한 독재정권의 핵심에서 독재자를 위해 봉공(奉公)한 뒤 경영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리곤 1994년 역시 사돈집으로부터 부친 몫으로 건네받은 중앙일보의 오너이자 발행인으로 화려하게 입성한다. 이같은 과정을 보면 그는 상당히 영민한 경력관리를 해온 셈이다. 적어도 1999년 10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의 탈세사건으로 실형을 복역하기까지는.
비록 DJ정부의 보복성 징치 의혹이 없지 않다 해도 하지도 않은 탈세를 뒤집어쓸 만큼 어리석지 않은 그로서는 '치명적인 과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경력은 그야말로 '지구촌 총리'라는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바라보는 그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NON ISSUE-ISSUE'**
지난해 12월 정부가 홍석현씨를 차기 주미대사로 지명했을 때 세간은 시끄러웠다. 앞서 제기한 내용 중 일부가 이슈화되어 논란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예의 '유엔 사무총장 카드'를 들고 나온다.
이건 전형적인 'non issue-issue'였다. 즉 자신의 주미대사 기용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그것보다 훨씬 강도 높은 이슈, 하지만 '말이 안되는 이슈'를 내세워 세간의 시선을 돌리고자 한 것이다. 아무튼 그 같은 전략이 주효했는지, 우리의 냄비언론은 며칠 와르르 끓다가 그대로 수그러든다.
***"일은 안하고 엉뚱한 데 신경"**
지금 외교부는 상당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앞두고 할 일이 태산 같은 것이다. 주미공관, 주중공관, 주러공관, 주일공관 등과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열어 놓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주미공관의 역할은 그야말로 결정적이고 막중하다. 그런데 그 공관의 수장은 눈치없이 자신의 앞날, 그것도 확실치 않은 희망사항을 언론에 떠벌이고 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13일 오전 "홍 대사가 자신의 기대를 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코앞의 현안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안이라는 것이 유감"이라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고위당국자는 "그 분(홍대사를 지칭)은 부임 전부터 공관 업무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식물대사' 5개월**
지난 2월 국내의 미심쩍은 시선을 뒤로 하고 홍 대사가 현지에 부임할 때만 해도 정부나 국민이나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국제 경험이 풍부하고 미국 조야에 두루 지면이 넓으며,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부총장을 지낸 스탠퍼드대 출신으로서 활약이 기대된다"는 정부의 과장된 포장을 조금은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말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홍 대사 부임 이후 북미관계는 파국을 치달았고, 한미관계는 예전 그 어느 때보다 고약하게 꼬여갔다.
북미관계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한미관계가 그토록 꼬이는데도 홍 대사의 노력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지난 몇 개월 내내 '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미대사로서 홍대사의 업적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유일한 사건은, 지난 1일 뉴욕에서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와 만나 덕담 몇 마디 나눈 것뿐이다.
***부끄럽지 않은 인물 나서야**
우리나라 인사가 유엔 사무총장이 된다는 것, '그까짓 것'이라고 할 일이 아니다. 자랑스런 일이다. 그리고 출마한다면 거국적으로 적극 밀어줘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그 인사가 자격을 갖춘 인사여야 할 것,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합당한 인사일 것.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인사일 것.
염불보다 잿밥이라더니. 그러고 보니 홍 대사는 불교신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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