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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쫓겨났다. 아니, '두산대'서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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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는 대학에서 쫓겨났다. 아니, '두산대'서 해고됐다"

[인터뷰] '퇴학' 중징계 받은 중앙대 학생 노영수 씨

"극소수의 학생들이 이번처럼 극단적인 돌출 행동으로 반대한다면 우리 대학은 큰 혼란에 빠져 필요한 개혁을 할 수가 없다. 재단의 투자 의욕과 도약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10일 중앙대학교가 밝힌 학생 중징계의 사유다. "재단의 투자 의욕을 잃을 수 있다." 지난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돼 대규모 대학 구조 조정을 벌여온 중앙대가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퇴학'이란 초강수 카드를 연달아 빼든 배경이다. 이쯤 되면 대학 본부가 대기업 재단의 '전위 부대'로 나섰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기업식 구조 조정으로 내홍을 겪어온 중앙대가 이에 반대하는 학생을 연달아 중징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교직원과 몸싸움을 하고 폭언을 했다"며 총학생회 간부 김주식(25) 씨를 퇴학 처분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학교의 일방적인 구조 조정에 반대하며 학내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오른 학생 한 명을 퇴학 조치했다. 같은 이유로 한강대교 아치 난간에 오른 학생 두 명도 각각 무기 정학과 유기 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이 전인 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이미 옛 이야기이다. 이제는 '직업 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인 2004년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한 말이다. 대학이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직업 교육소'로 바뀌어야 한다는 박 회장의 '소신'은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해 그가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현실로 드러났다.

두산그룹 인수 후, 학교 당국은 '일방적 구조 조정'이라는 교수와 학생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현행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로 통폐합하는 '학문 단위 재조정안'을 통과시켰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사회대가 주요 희생양이 됐다. 총장 직선제 폐지, 교수 차등 연봉제 전환, 전교생 회계학 수강 의무화 등의 조치도 실행됐다.

'기업화'의 칼날은 학생 자치 활동에도 들이 닥쳤다. 대학본부는 지난 3월 학생들의 학내 집회·시위 활동을 모두 불법화하는, 이른바 '중앙대 집시법'을 발표했다. 총학생회의 가장 큰 행사인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가 학교에 의해 폐지됐고, 이에 반발해 새터를 강행한 단과대 학생회장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1980년대나 볼 법한 풍경인, '무제호 교지'도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교지 <중앙문화>는 두산그룹을 비판한 풍자 만화를 실었다가 배포 3시간 만에 전량 회수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 사건 이후 학기마다 나오는 교지 편집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중앙문화>는 지난달 모금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기업식 구조 조정을 비판하는 무제호 특별판을 내려 했으나, 학교 측은 이마저도 가로막았다. "교내에 배포되는 모든 인쇄물은 지도 교수와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학칙을 근거로 제시하며, 또다시 '징계' 카드로 압박했다. 사립대의 '학칙'이 사전 검열을 금지한 헌법보다 위에 있는 셈이다.

지난달 8일, 독어독문과 학생 노영수(28) 씨가 30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오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고공 시위를 벌이는 동안, 학교에서는 그간 준비한 학문 단위 구조 조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이사회가 열렸다. 조정안은 예상대로 이사회를 통과했고, 노 씨는 크레인에 오른 지 4시간 만에 시공사인 두산건설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됐다.

'과격 행위'의 대가는 혹독했다. 학교는 10일 그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시위가 언론에 보도돼 학교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이로 인해 "재단의 투자 의욕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퇴학 처분을 받은 노영수 씨를 14일 오후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교정에서 만났다.

▲ 대학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퇴학 처분을 받은 중앙대 독문과 학생 노영수 씨. ⓒ프레시안(선명수)

프레시안 : 징계를 예상했나.

노영수 : 농활을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퇴학 소식을 들었다. 징계위원회가 여러 차례 열려, 징계를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 퇴학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 학과장님과 이 문제로 여러 번 얘기했을 때만 해도, '퇴학만은 막아보자'고 하시길래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박용성 이사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타워크레인에 오른 것은 다소 극단적인 선택이었지만, 이게 퇴학까지 당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프레시안 : 고공 시위는 어떻게 진행하게 된 건가. 타워크레인에 오르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말은 뭔가.

노영수 : 타워크레인에 올랐던 그날이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어떻게든 대학을 기업화하는 구조 조정안을 막아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자보나 집회 등으로 이 문제를 얘기하려고 해도, 학교가 철저하게 통제한다. 자보를 붙이고 뒤돌아서면 바로 직원에 의해 떨어지는 상황이다. 교수님들과 같이 설치한 농성 천막도 강제 철거됐다.

"중앙대의 학칙은 헌법 위에 군림한다"

프레시안 :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 이후, 학생들에게 체감되는 변화가 있나?

노영수 : 학생 자치권에 대한 탄압이 급격하게 심해졌다. 학교 당국은 학칙에서 사문화됐던 조항을 들춰내 입맛대로 집회를 불허하고, 인쇄물을 사전 검열한다. 학칙이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도 퇴학 처분에 대한 성명서를 학교 여기저기에 붙였는데, 붙이자마자 모든 대자보가 떨어졌다. 이제 퇴학생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징계만 해도 그렇다. 학교는 구조 조정에 걸림돌이 되는 학생들을 퇴학시키면, 조용히 원하는대로 구조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지난 2월 새터를 진행했던 자연대 학생회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도 다시 열린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을 징계를 빌미로 압박해, 그나마 목소리를 내던 학생들이 많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집회를 열면, 항상 교직원들이 나와 채증을 한다. 지난해 진중권 교수 재임용 탈락 사태 때에도, 사진에 나온 집회 참가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불러 징계하겠다고 압박했었다.

프레시안 : 학교에서 2500만 원 상당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고 했다는데….

노영수 : 지난달 13일 학생처 직원이 고공 시위로 신축 공사가 중단됐다며 손해 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기계 임대료와 인건비 등으로 2496만 원 가량의 피해가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 지난달 8일 교내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 고공 시위를 벌이는 노영수 씨. ⓒ프레시안(허환주)
그런데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학교는 이제 와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나를 몰아세우고 있다. "학교 당국이 공식적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한 적이 없음에도 이를 결정된 사실처럼 언론에 유포"했다는 것이다. 뒤로는 불러다가 수천만 원으로 협박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공식 청구가 아니었다고 얘기하는 건데,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크레인에서 내려와 경찰에 연행됐을 때, 애초 경찰은 건조물 침입 혐의를 물었다. 그런데 두산그룹 관계자가 경찰서에 찾아와 '건조물 침입'이 아니라 '영업 방해'라고 신고하더라. 영업 방해가 건조물 침입죄보다 형량과 벌금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더라.

"취업 위한 '직업인 양성소'가 된 대학…돌아가서 싸우겠다"

프레시안 : 구조 조정에 대한 학생들의 여론은 어떤가. 찬성하는 쪽도 많은 것 같던데.

노영수 : 합리적인 구조 조정이고, 그것이 정말 중앙대를 올바른 방식으로 개혁하는 길이라면 일부 학생들이 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반대하는 학생들도 구조 조정 자체를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식이 완벽하게 일방적으로, 이사장 개인의 잣대로만 진행되고 있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회계학을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한 것만 봐도 그렇다. 회계학과 상관이 없는 예체능, 인문 계열 학생들이 왜 이 수업을 들어야 하나. 대학이라는 공간의 철학이 사라지고, 점차 취업을 위한 직업인 양성소로 바꾸려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얼마 전 고려대 학생 김예슬 씨가 '대기업의 하청 업체로 전락한 대학을 거부한다'며 자퇴를 했다. 본인은 기업식 구조 조정에 항의하다가 퇴학을 당했는데.

노영수 : 정의도 진리도 실종된 대학을 떠나겠다는 선언이었는데, 나는 대학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학교 생활에 상당히 만족했다. 과 교수님들은 항상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고, 수업 외적으로도 많은 것을 공부하고 고민할 수 있었던 대학 생활이었다. 철학과 진리가 실종된 대학의 현주소에 대한 김예슬 씨의 비판과 자퇴 선언엔 공감하지만, 나는 반드시 학교로 돌아가서 싸우고 싶다.

프레시안 :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것에 후회는 없는가.

노영수 : 퇴학 받고 고개를 숙일 것이었다면 애초부터 싸움을 시작도 안했을 것이다. 어쨌든 타워크레인에 올랐던 것은 극단적인 선택이었고, 불법적인 행동이었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사과드리고 싶다.

징계위원회는 내가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퇴학을 강행했는데, 그 판단은 옳다. 법정에서도 그 이후에도 생각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미 정당성을 상실한 학교 당국과 징계 위원에게는 고개를 숙일 수 없다. 내게 반복적인 학칙 위반과 범법 행위를 따지는 대학 당국은 교지와 학생 활동에 대한 검열 시도에 대해 먼저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프레시안 : 향후 계획은 어떤가.

노영수 : 퇴학 무효 소송을 진행하려고 한다. 소송에서 이겨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동문회에서 소송을 도와준다고 한다.

지금 대학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잠식하고 있다. 과거 유신 독재 시기엔 학교가 그나마 학생들을 보호해주고, 서로 함께하는 기쁨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더 힘들어진 것 같다.

그만큼 학교와 자본이 학생들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고 있다. 구조 조정에 대해 목소리를 내던 학생들도, 교수님들도 많이 지치고 동력이 떨어졌다. 어쨌든 학교에서 내쳐진 이상, 학교 바깥에서도 중앙대 문제로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다.

▲ 자난 2월 중앙대 학생들이 교지 <중앙문화>, <녹지>에 대한 학교의 예산 전액 삭감 방침에 항의하며 '대학 언론 장례식'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학생들과 대화를 해보면 두산을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의 논리가 어디를 가서나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사장 취임 직후의 박용성 회장이 2008년 11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노영수 씨를 비롯해 퇴학, 정학 등의 중징계를 받은 4명의 학생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며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어디를 가나 통하는' 자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에게 내려진 중징계는, 그들이 우려했던 '대학 기업화'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노영수 씨가 중앙대 정문에서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퇴학은 부당하다'라고 쓰인 그의 팻말 뒤로,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문구가 쓰인 비석이 보였다. 이제는 '두산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학, 중앙대학교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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