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환율방어 과정에 발생한 외평기금 손실이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가운데 수조원은 재정경제부가 직접 파생금융상품시장에 뛰어들어 발생한 손실로, 반드시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는 국회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외평기금 손실 10조 돌파**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4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환평형기금의 운용을 통해 연중 10조2천2백5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
외평기금 손실은 지난 2002년 1조7천7백35억원, 2003년 5천2백19억원으로 줄어들다가 지난해에는 10조원을 돌파하며 전년보다 20배 가까이 급증했다.
한은 관계자는 외평기금 손실이 대폭 확대된 주된 요인과 관련, "원화강세로 대규모 환율평가손이 발생한 데다 채권발행으로 인한 조달금리와 외화자산 운용금리의 역마진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원화가 약세로 반전되면 정반대로 대규모 환율평가익이 발생하는 만큼 연 단위 실적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그러나 10조원의 손실 가운데 상당 액수가 재정경제부가 지난 2003년말 역외선물환(NDF)와 스왑 등 투기적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발생한 손실이라는 점이다. "투기로 투기를 막겠다"는 식의 재경부의 무모한 모험주의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면서 수조원대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
***재경부의 파생상품 거래 손실이 치명타**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10월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1조8천억원대 손실'을 폭로하고 이를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시인하면서 확인된 바 있다.
심 의원은 지난해 10월12일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서 "파생상품 시장을 통한 정부의 외환개입으로 1조8천억원대의 대규모 손실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나 중앙은행은 파생상품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통례인데 무엇때문에 개입했냐"고 따졌다.
심 의원의 추궁이 계속되자 이 부총리는 답변에서 "지난해 하반기 투기적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정상적 외환거래로는 환투기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일시적으로 한 것"이라고 파생상품을 통한 시장개입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이어 "이런 개입은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고 주장한 뒤, "공개적인 자리에서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으므로 별도 질의하면 필요한 자료는 다 제출하겠다"고 더이상의 질문을 제지했다.
31일 심 의원실에 따르면, 이 부총리는 그후 심의원을 별도로 만나 투기적 파생상품거래를 통해 1조8천억원대 손실을 본 사실을 재차 시인하며 "피해는 지금도 진행형(ing)이나 해결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파생상품의 성격상 원화강세가 계속될 수록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 의원실 관계자는 "한달 전 정부에 확인했을 때도 피해는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심 의원실은 따라서 "그후 원화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된 점을 감안할 때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손실 규모는 지난해 10월의 1조8천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조원대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정확한 파생상품 거래 손실액은 오는 9월 정기국회때 보고될 예정이다.
***심상정 "몇몇 수출 대기업 먹여 살리려 국민에게 피해 전가"**
통상적으로 외환운용은 외환주무부처인 재경부가 한은에 '업무대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2003~2004년의 경우는 재경부가 일부는 한은에게 위탁하고, 나머지를 자신이 직접 운영하면서 역외선물환(NDF)와 스왑 등 투기적 파생금융상품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수조원대 손실을 보기에 이르른 것이다.
박승 한은총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때 "한은은 파생상품 거래에 반대했다"고 증언, 파생상품 거래가 '재경부의 단독작품'임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파문이 일자, 재경부는 그후 외환운용을 100% 한은에 맡겼으며 한은은 세계 중앙은행들의 통례대로 파생상품 거래를 일절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경부가 참여정부 초기인 2003~2004년 이처럼 상식밖으로 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든 것은 극심한 내수침체로 경제성장률이 낮게 나올 것을 우려, 인위적 환율방어를 통한 수출 증대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IMF사태발발 직전 김영삼정부때 재경원(재경부의 전신)은 YS임기내 1인당 GDP 1만달러 달성 및 이를 토대로 한 OECD 가입을 위해 2백30여억달러의 경상적자에도 불구하고 원화를 고평가된 달러당 7백원선으로 묶다가 끝내 IMF사태를 초래한 바 있다. 이번에는 당시와 정반대로 성장률 숫자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경상흑자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원화환율을 저평가상태로 묶어두기 위해 투기판에 뛰어들었다가 국민에게 수조원대 손실을 입힌 것이다.
심상정 의원은 이와 관련, "결과적으로 몇몇 수출 대기업을 먹여살리기 위해 국민에게 10조원의 부담이 돌아오게 된 셈"이라며 "특히 재경부가 투기판에 뛰어들어 파생상품거래를 통해 원화환율을 낮게 끌어가려 한 대목은 용납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한 예로 지난해 삼성은 10조를 벌어 세금 1조를 내고 수조원을 주주배당과 임직원 보너스로 나눠가졌다"며 "결과적으로 잔치비용중 일부는 국민이 댄 셈"이라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지난해 국회에서 파생상품 거래를 폭로하며 책임자 인책을 요구하자 당시 이헌재 부총리는 국회 재경위원장에게 '알아서 조용히 처리하겠다'며 책임자 인책을 약속했었다"며 "그후 부총리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재경부가 이 약속을 지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재경부에 대해 책임자 인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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