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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언론, "독도는 명백한 한국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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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언론, "독도는 명백한 한국땅"

영토분쟁서 한국과의 연대전선 의지 드러내

일본과 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이 27일 역사문헌에 기초해 "독도는 분명한 한국땅"이라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신문만보(新聞晩報)>의 '독도는 누구 땅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제, 이같은 지원사격을 때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먼저 23만여㎡에 불과한 독도 주변에 풍부한 어장이 형성돼 있고 해저에 가스와 석유가 매장돼 있다고 소개,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이 이들 자원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을 했다.

신문은 본격적으로 역사문헌에 기초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역사적 유래를 밝히며,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도 함께 복속시켰고 조선 성종 때인 1471∼1481년에는 우산도라 칭하며 울릉도 관할에 두었다고 밝혔다. 신문은 특히 일본이 1667년 당시 문서를 통해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점을 인정했고 1896년 일본 외무성의 '조선국교시말내심서'(朝鮮國交始末內深書)에 독도가 조선 영토라고 명확히 표시했다는 점을 적시했다. 신문은 이어 조선 말기인 1900년 고종은 제41호 법령을 반포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강원도 삼척현 관할로 선포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반면에 일본이 역사상 독도를 처음 인지한 것은 1618년으로, 한 어부가 표류하다 처음 발견한 이 섬을 다케시마라고 불렀고 그후 일본 어선들의 임시 정박지로 이용됐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1692년 독도 부근 해상에서 조선 어민들과 부딪치면서 양국간에 외교분쟁이 발생했고 조선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일본은 자국 어선들의 활동범위를 축소하는 선에서 분쟁을 매듭지었지만 일본 어선들의 독도 출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신문은 일본이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조선에 대해 울릉도와 독도의 개방을 요구하다 1905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명명하며 일방적으로 자기 영토로 간주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정부는 현재 이런 박약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신문은 일축했다.

신문은 이처럼 독도가 역사문헌을 보더라도 "분명한 한국땅"이라고 주장한 뒤, 일본이 패전후 해양면적을 지속적으로 확대했고 댜오위다오와 독도 등을 무단으로 일본지도에 편입시켜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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