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외교 전면전 선언'에 일본 정부는 23일 "일본은 냉정하다"면서 한국측에 냉정한 대응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부 일본언론도 이번 담화가 '직접 발표' 형식이 아닌 '홈페이지 게재'라는 점을 들어 또다시 '국내용'이 아니냐고 보도했다.
***일본정부, "우리는 냉정...한국 냉정해져야"**
일본 <교도(共同)통신> 등에 따르면 스기우라 세이켄 일본 관방부장관은 이날 저녁 노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있은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서로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한국 국민의 감정 문제를 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냉정한 대응이 바람직하다"며 "일본측은 냉정하다"고 말해, 노대통령 선언을 감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카시마 하쓰히사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번 담화를)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들었다"면서 "당국자들이 정밀 분석하고 있으며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어 "미래를 향해 화해의 정신으로 마음속의 맺힌 것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2차 대전 중 한국인 징용자 유골을 조사해 돌려달라는 한국측의 요구에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피력했다.
이날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노대통령 선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는 단지 한-일 관계 등 전반적인 외교 현안에 대해서만 "대립하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를 극복한 실적과 지혜가 일본 정부와 일본인에게 있음을 상대국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말해, 한국측이 더이상 강경 대응을 하지 않기를 우회적으로 주문했다. 그는 아울러 "일시적 대립과 이견에 얽매이거나 정체상태에 빠졌다는 느낌은 없다"면서 "미래지향적으로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켜간다는 데 서로 흔들림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 담화 형식 두고 또다시 '국내용'으로 몰아가기도**
일본 언론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 위주로 보도하면서, 지난 17일 한국정부의 '대일 신독트린' 발표 직후 일제히 사설을 게재하던 모습과는 일단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국의 대통령이 직접 나선만큼 일단 신중한 대응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격렬한 비판에 당황해 하고 있다"고 전하며 "노 대통령 자신이 대일 비판 담화를 발표해 향후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은 이어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려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지적하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지(時事)통신>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의 날' 제정 이후 노 대통령이 일본을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담화 발표에 대해 "대통령 자신이 한층 더 일본에 강한 자세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향후 대일 강경 정책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마이니치신문>은 그러나"담화는 노 대통령이 내외에 직접 발표한 것이 아니고 청와대의 홈페이지에 게재됐다"면서 "직접적인 일본 비판이 아니고 대일 강경 자세를 국민에게 알린다는 이유가 더 크다는 견해도 있다"고 분석해, 은연중 노대통령 담화를 '국내용'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공영방송 NHK도 "노 대통령의 담화가 국민들을 상대로 인터넷상에서 공표된 만큼 어디까지나 국내용 메시지이며 따라서 즉각 반응하지 말고 진의를 살펴야한다"는 의견이 일본 정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도 노 대통령 담화가 취임 이래 2년여에 걸친 "조용한 미래지향적 외교와의 결별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노 대통령의 발언 배경과 관련 "다음달로 예정된 한국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역사 바로세우기' 등의 정치일정을 앞두고 여론이 납득하기 쉬운 역사마찰을 거론, 선수를 쳤다고 할 수 있다"고 국내용으로 분석했다.
***日공산당 "식민지배 반성해야", 우익들은 불만 표출**
한편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던 일본 정치권도 이번 노 대통령의 담화 발표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를 개진하기 시작했다.
우선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대표는 "한일 양국 사이에 일상적인 대화가 부족했다"면서 "외교적인 노력이 결여돼 있다"고 '양비론'을 폈다.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그러나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이) 한국과 진정한 우호 관계를 쌓아 올려 가기 위해서는 식민지 지배에의 반성의 마음을 곳곳에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일본의 대응을 비판했다. 그는 또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냉정한 대화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익들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대일 비판을 한 데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집권 자민당과 민주당내 일부 우익인사들은 비공식적인 발언을 통해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비판 등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일본 정부 일각에서도 "감정적인 표현이 많은 것이 북한과 똑같다"면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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