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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귀족'이 환경운동을 망치고 있다"

"때깔나는 자리만 찾아다녀" "권력인줄 착각해 폼 잡고 겉멋 부려"

최근 '환경운동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환경운동 안팎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민과 유리된 환경운동이 급속히 제도화되고 있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어 주목된다.

***"'환경 귀족'이 환경운동의 위기 부추겨"**

최근에 나온 <환경과생명> 2005년 봄호(통권43호)는 이례적으로 편집자의 글과 외부 필자의 기고글을 통해 현재 환경운동의 모습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성익 <환경과생명> 주간은 '풀뿌리와 함께, 현장으로'라는 글에서 "전국의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비장하게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했지만 시민 여론의 반향은 냉랭했고, 천성산 싸움도 지율스님 개인의 고독한 정진이 두드러졌을 뿐 환경단체들이 실질적으로 수행한 역할은 미미했다"며 "그 와중에 우리 국토를 치명적으로 망가뜨릴 각종 법제와 정책들이 쉼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대응은 무기력해 보였다"며 환경운동의 현실을 진단하며 글을 시작했다.

장 주간은 "다양한 진단과 분석이 있겠지만, '환경 귀족'의 문제를 우선 짚어보아야 한다"며 "노동운동 본연의 순수한 운동성, 진정성, 계급성을 잃어버리고 자본과 타협함으로써 변질과 오염의 길을 걸은 '노동 귀족'에 빗댄 '환경 귀족' 문제를 우리 환경운동에서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환경운동은 눈부신 초고속 압축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에 걸맞은 질적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 성장 과정에서 언론의 각광과 대중적 명성을 독과점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환경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개화시키는 소중한 공적을 일궈냈음에도 오늘날에 와서는 환경운동의 진정성, 치열성, 순수성을 훼손함으로써 환경운동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사회적 지지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환경운동의 힘이 갈수록 커지면서 운동 단체를 마치 기업체처럼 운영한다든가, 대중의 추앙과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때깔 나는' 자리만 찾아다닌다든가, 현장의 풀뿌리 대중들과 호흡을 같이 하기보다는 고위 관료·정치인·기업체 간부·기자 등과 같이 '힘깨나 쓰고 권력깨나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든가, 여기저기 행사장마다 얼굴 내밀고 사진 찍고 악수 나누는 일에 몰두한다든가, 언론에 입맛에 맞는 운동 주제와 방식을 선호함으로써 언론에 보도된 양으로 해당 운동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든가 따위의 건강하지 못한 관행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마치 무슨 큰 권력이라도 쥔 것 같고 대단한 자리라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폼 잡고 겉멋 부리는' 운동을 펼쳐 오지는 않았느냐"며 '환경 귀족'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환경운동에 대해 지지와 성원을 철회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들러리만 서는 환경운동, 아직 제도화할 단계 아니다"**

<환경과생명>에 '환경의 위기인가, 환경운동의 위기인가'를 기고한 한겨레신문사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는 '환경운동의 제도화'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조 기자는 "정부가 겉으로는 경제 성장과 환경 보전의 양립을 추구하는 듯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적 국가는 여전히 개발 이데올로기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꽃피어 환경과 경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서유럽의 어느 나라처럼 한국의 환경운동이 체제 안의 파트너십에 안주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어색하다"고 꼬집었다.

조 기자는 "아직 한국에서 환경운동은 제도화할 단계가 아니며 뒤집어 얘기하면 체제 속에 안주하는 환경운동은 대중의 불신 속에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 들어 정책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환경운동은 눈에 띄게 활력을 잃었다"며 "환경운동이 체제 안에 자리를 잡을수록 활동가들은 하는 일은 많아지면서도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활력을 잃지 않은 반핵 운동과 자연 생태 분야에는 현장과 지역 주민이 있다는 특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성익 주간도 동감을 표시했다.

장 주간 역시 "환경운동이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거나 정책 과정에 참여하면서 운동의 원칙과 기준이 훼손되는 것이 문제"라며 "특히 환경운동이 정부와 같은 일을 하는 데는 '힘의 균형'이 중요한데 여러 가지 층위에서 국가와 자본의 힘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환경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에 들러리를 서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장 주간은 또 "환경운동이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이 대개 격렬한 갈등이 불거진 다음 사후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문제"라며 "이 경우 심하게 말하면 정부가 골치 아픈 일의 '설거지'를 환경단체에게 떠넘기는 격이라고 할 수 있고, 정부가 저지른 일의 사후적·결과적 합리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은 에너지대안센터 이필렬 대표도 이미 <창작과비평> 2005년 봄호(통권127호)에 기고한 '위기의 환경운동, 이제 변해야 한다'에서 제기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이 글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 정책수립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시민들을 좋게만 보지 않는다"며 "어떤 때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극단적인 반대 운동을 벌이면 시민들은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이 좀더 원칙에 입각해 한계를 분명히 정한 상태에서 정부와 관계를 맺어나갈 것을 주문한 것이다.

***"입맛 따라 골라먹는 언론 의존도 피해야"**

한편 10여년 이상 환경운동의 목소리를 정확히 보도해온 조홍섭 기자가 환경단체의 지나친 언론 의존을 꼬집은 것도 눈길을 끈다.

조 기자는 "언론 기관은 아무리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운동 단체가 아니며, 대중 매체가 생산하는 담론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소비자이지 세상을 바꾸려는 시민들이 아니라"며 "환경단체로서는 언론을 상대로 한 활동이 효과적으로 보이겠지만 언론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 골라 먹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을 활용하는 기술이 특출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린피스조차도 언론을 경계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며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은 필연적으로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소홀하게 만들고 대중이나 현장과 직접 맞부닥치는 것을 꺼리는 운동가는 이미 활동가보다는 기업체 홍보 담당자에 가깝다"고 일침을 놓았다.

장성익 주간은 "환경운동의 위기는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그리고 제대로 이겨내야 한다"며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환경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풀뿌리 대(민)중 속으로, 현장 속으로, 지역과 생활 속으로 환경 운동의 뿌리와 더듬이가 뻗어 나가는 것이다. 환경운동이 끝내 지켜야 할 자리는 현장이며, 온 정성을 다해 만나야 할 사람은 풀뿌리들이다. '높은 곳'에 서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자. '높은 자'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낮은 자'들과 어깨동무하자. '부안'의 경험에서 여실히 보았듯이, 국가와 자본에 가장 강력하고도 끈질기게 맞설 수 있는 참된 저항의 동력은 바로 현장의 풀뿌리들에서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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