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1953~4년 한-일 독도전쟁' 영화로 만든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1953~4년 한-일 독도전쟁' 영화로 만든다

'홍순칠 대장과 33인' 영화화, 7월 남북 공동 독도횡단수영대회

***독도 화두, 영화계까지 확산
-중견 이민용 감독 <독도수비대> 제작 착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날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해 가고 있는 가운데 독도 사수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화가 기획중이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개 같은 날의 오후>와 <인샬라> <보리울의 여름>등을 만들었으며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한국감독협회 부회장 등 영화권 악팎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중견 이민용 감독이 새영화 <독도수비대>의 제작을 준비중인 것.

<독도수비대>는 1953년 한국전쟁 직후 국군 편제가 채 정비되기도 전 에 의용군 33인을 조직, 독도에 수비대를 창설했던 홍순칠 대장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이민용 감독은 현재 홍순칠 대장의 부인인 박영희 여사를 비롯, 당시 수비대에서 활동했던 의용대 유가족들과 판권계약을 맺고 제작에 본격 착수한 상태다.

***2년전부터 기획**

영화 <독도수비대>가 기획된 것은 지난 2003년말, 약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독도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던 길벗영화사의 김길남 대표는 이와 관련한 영화적 모티프를 찾아 사료를 찾던 중 홍순칠 대장의 드라마틱한 인생유전을 알게 된다. 당초 김길남씨가 찾았던 독도관련 역사적 인물은 홍순칠 대장외에도 안용복 씨 등 독도영유권에 대한 확답을 얻기 위해 단신으로 일본 정부와 싸웠던 인물들.

그러나 김 대표는 홍순칠 대장 유가족들인 박영희 여사 등을 직접 만나 당시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확보한 데 이어, 영화제작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판권 협의 등의 이유로 홍순칠 대장 일대기로 제작방향을 급선회하게 된다.

이후 김길남 대표는 이민용 감독을 만나 연출을 의뢰하게 되는데 이민용 감독은 당시 <보리울의 여름> 이후 차기작으로 자신의 데뷔작이었던 <개 같은 날의 오후>를 다시 속편으로 만들 계획을 한창 진행중이었다. 이민용 감독은 영화에 대한 제안을 받은 자리에서 곧바로 자신이 기획중인 영화를 보류하고 <독도수비대> 제작 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민용 감독측은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일각의 추측처럼 독도 문제가 첨예화되자 사회 분위기에 편승, 영화화를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민용 감독의 경우 전작인 <보리울의 여름>이 당시 월드컵 열기와 더불어 축구영화로 기획됐다는 오해를 받아 작품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었던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은 따라서 이번 영화가 단순한 사회적 이슈용의 작품이 아니며, 무엇보다 독도 문제는 과거 50년전부터 계속돼온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홍순칠과 33인의 독도사수 투쟁기**

홍순칠 대장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게 되지만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홍순칠과 그의 33인의 의용대와 일본 시네마현 해경 소속인 아키모토 이치로 해위 간에 벌어지는 대결구도가 기둥 줄거리가 된다.

이치로 해위 역시 독도를 장차 일본 열도로 편입시키기 위해 현지에 경비초소를 지어야겠다고 판단, 정부에 건의를 하지만 결국 부결된다. 이같은 상황은 홍순칠 대장측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홍순칠은 이승만 내각이 있던 부산 임시청사를 다니며 독도수 비대 창설을 건의하지만 역시 철저하게 묵살된다. 이에 따라 홍순칠 대장측과 이치로 해위 측은 독도를 선점하기 위한 입도(入島) 절차를 서두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일촉즉발 무력충돌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독도에 먼저 입도한 홍순칠과 이치로의 단독 회동이 이루어지게 되고 협상은 결렬된다. 이치로는 이에 따라 일본 정부의 명령없이 대규모의 독도침공을 감행하고 이에 홍순칠 부대가 가차없이 반격을 가해 이들을 퇴치함으로써, 이 사건으로 미국과 한국 일본 정부간에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게 된다.

홍순칠 대장의 '독도 지키기'는 그의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정신이자 유업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일합방전 섬에 들어온 울릉도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그는 한일합방전 이따금 독도에 배를 타고 오는 왜인들을 죽창으로 내쫓기도 한 열혈인이었다.

1950년 6·25가 터지자 홍순칠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채병덕 장군의 당번병으로 입대했다가 1953년 전투도중 부상을 입고 상이군인으로 제대해 울릉도로 돌아온다. 일본해경의 독도 침공 움직임을 감지한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논밭을 처분해 울릉도 출신 제대병들을 모아 ''독도수비대'란 사설부대를 만들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니 절대 왜놈들이 얼씬 못하게 지켜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1950년대초 독도수비대를 이끌고 독도에 상주하기 시작한 그는 큰나무를 베어 가짜 대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독도를 맴도는 일본배들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에 그는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던 당시 경북 경찰국장 김종원을 찾아가 담판을 짓고 기관총 1자루, 탄약, M1 소총 10여 자루와 집을 지을 판자를 얻어왔다. 독도에 돌아온 홍순칠은 판자로 집을 짓고 지금의 '한국령(韓國領)'이란 글자를 동도 바위에 크게 새겼으며, 그후 1953~4년 일본이 독도에 침공을 감행하자 가차없이 반격을 가해 그들을 퇴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정부는 1956년 경찰로 하여금 독도수비대를 정식으로 발족시켰으며, 홍순칠 대장이 만든 사설 독도수비대는 해체된다.

***남북 오는 7월 독도수영횡단**

이민용 감독은 "기본적으로 요즘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알게되고 또 배우게 된다"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기본 축으로 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관객들이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구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독도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의지를 보다 고양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해상에서의 전투 씬 등을 통해 영화로서의 볼거리도 충분히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 영화는 감독을 포함해 촬영과 음악 등 거의 전 스탭의 구성을 완료하고 오는 7월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간다. 7월을 제작 기점으로 삼은 이유는 경기도 고양시 시의회가 추진하는 울릉도-독도간 92Km 수영 횡단대회를 영화의 오프닝과 에필로그로 촬영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현재 북한 여자 수영선수를 포함해 남북한 참가자 33인이 개별적으로 3Km씩 릴레이로 횡단하는 것이 계획돼 있다. 이는 광복 60주년 기념사업회의 추진 사업 가운데 하나로, 일본의 독도 침공 시도에 대한 남북한의 단호한 공동대응 의지를 밝히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독도수비대>는 아직 제작비 전액에 대한 투자유치를 성사시키지 못한 상태이나, 이달 말까지 이를 완료하고 주연급 연기자에 대한 캐스팅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ohdjin@hotmail.com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