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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시간'을 지나 '세상속으로'"

산골 아이들 <15> 셋째, 넷째 해 이야기

***셋째 해 잘 먹고 잘 자는 행복**

해가 바뀌어 탱이가 집에서 지낸지 3년째를 맞이했다. 그해 봄 탱이와 함께 진달래꽃을 따러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진달래 꽃대궐에서 꽃을 따는데 탱이,

"엄마, 진달래 꿀 따 드세요!"
"진달래꽃에도 꿀이 있냐?"
"그럼, 나비가 앉잖아."
"어디?"
"금방 핀 꽃, 아직 나비가 빨아먹지 않은 꽃을 따서 여기를 쪽 빨아먹으면 돼."

알 듯 말 듯 달큰함이 느껴진다.

"어디서 배웠어?"
"내가 찾았는데?"

그 순간 탱이가 '지금 여기에' 살기 시작했구나 하는 걸 알았다. 사람이 몸은 여기 있지만 머리는 딴 데 있기도 쉽고, 또 지식이 눈에 꺼풀을 씌워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탱이 삶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걸 알았다.

집에서 생활도 바뀌었다. 배고프면 밥상을 차린다. 전에는 배고프면 간식거리를 찾았는데 이제는 밥을 차려먹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하는 말, "잘 자고 잘 먹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

탱이 어디 나가려 하지 않고 하루 한두 차례 자기 밭에 가 보거나, 산에 돌아다니며 지냈다. 평화로운 하루. 평화로운 모습. 그걸 지켜보며 나도 행복했다. 이웃도 그런 탱이를 좋아했다.

탱이 학교를 그만 둔 해부터 작은 밭을 가꾸기 시작했지만, 농사 흉내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무얼 하나 가꾸어도 그 목숨을 제대로 살리기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밥을 하러 들어오면 마루 끝에 상추 한 바가지가 놓여 있곤 했다. 어떤 날은 양상추, 어떤 날은 시금치. 탱이가 아침거리로 자기 밭에서 뜯어온 푸성귀들이다. 작은 방만한 탱이 밭에서 우리 식구는 싱싱한 푸성귀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이 때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으니……. 어버이날 내가 뒷산에 솔꽃을 따러 갔다가 굴렀다. 오른손목이 부러져 깁스를 해야 했다. 그때가 어느 때냐. 한창 바쁜 모내기철이다. 내가 한 달 넘어 깁스를 하는 동안 그 빈자리를 탱이가 채웠다. 탱이는 아버지를 도와 그해 모내기를 했다. 네 다락 논마다 탱이 손길이 가서야 모내기가 끝났다. 또 엄마의 오른손이 되어 농사일, 집안일을 해야 했다. 그 뿐인가. 중간 중간 엄마의 짜증을 들어주고 달래주기까지 하면서…….

내가 이리 애물단지가 되니 식구들이 다시 보였다.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더 자라있었다. 앞장서서 끌고 가는 엄마보다 한 발 뒤에서 따라가는 엄마가 더 좋은 엄마라는 걸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 오른팔을 못 쓴 덕에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다.

탱이는 여전히 책을 많이 보고,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했지만 그해 겨울에는 나무를 베어와 숟가락을 깎는다, 주걱을 깎는다 한 방 벌려놓곤 했다.

'치유'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이즈음 귀에 쏙쏙 들어왔다. 치유는 영어 힐링(Healing)의 번역말로 나는 이 말을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탱이 학교를 그만 두고 지낸 시간들이 바로 '치유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탱이 자신과 우리 식구 모두에게. 이 때부터 식구가 일어나 각자 무언가를 하면서 지내다 밥 때 만나 함께 밥 먹고 다시 자기 하고픈 대로 지내고 난 저녁. 가슴 가득 만족감이 밀려들어오는 기분. 무어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닌데도 무척 알찬 하루. 그런 고요한 하루를 맛볼 수 있었다.

***넷째 해 젊어 고생은 공짜로**

탱이 이제 '중딩' 나이를 지나 '고딩' 나이가 되었지만 우리 집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탱이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말도 없었고, 우리 부부 역시 탱이와 이렇게 함께 지내는 게 좋았으니까.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니 교과서라도 사야겠다 싶어 도시 서점에 갔다. 교과서가 어찌나 복잡하고 많은지. 그 곁에 참고서는 또 어떻고. 그걸 한참 구경하면서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이 배워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할 게 이리 많아서야……. 싶었다. 우리도 교과서를 몇 가지 사 가지고 왔고 탱이 그걸 한동안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나 이런 게 있구나 하는 정도에서 하나하나 옆으로 치워지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등 뒤에서 함께 미련을 버렸다.

공부. 공부란 게 뭘까? 영어 공부, 수학 공부. 이런 지식 공부 말이다. 그런 공부를 왜 하나? 좋아서? 거기 있는 지식이 지금 필요해서? 솔직히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한다. 그럼 대학은 왜 가는가? 대학이란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그거 하나 놓아버리면 지금 행복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속 편히 행복하자. 앞날을 미리 걱정하며 초초해 할 게 뭐 있겠나. 자기 인생 자기가 자는데……. 그러고 나서 휘 둘러본다. 귀농하는 젊은이를 보면, 몸 건강하고 마음이 평화로우면 살아갈 길이 열리는 걸 본다.

봄에 이웃이 이사를 갔다. 그 집에 놀러가 두 집 식구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탱이가, "왜 사람들은 모여 남의 이야기를 할까요?", 그 말에 모두 뜨끔했다. 그 기회에 함께 생각을 해 보았다. 서로 공감대를 나누기 위해서, 남 이야기를 하면 내가 그 사람보다 잘 나 보여서, 너와 내가 친하다는 표시로……. 이 이야기를 나누며 탱이 이제 사람 사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짐승을 키워 보면 짐승은 아프면 구석에 웅크리고 스스로 치유한다. 그러다 다 나으면 몸을 풀고 천천히 무리 속으로 나아간다. 탱이 이제 스스로 치유하는 고비를 넘기고 한 발 한 발 사회로 나아가려는가.

봄에 재미나게 농사를 시작했는데 여름부터 탱이를 부르는 곳이 이어졌다. 여기서 저기서. 그러면 가볍게 날듯 갔다가 돌아와서는 '집이 제일 좋다'며 한동안 지낸다. 그러다 보면 다시 나갈 일이 생긴다. 배울 기회가 이어지고, 비슷한 아이들이 놀러오고 놀러가고,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한번 나갔다 오면 돈 주고 배우기 힘든 걸 배워 돌아온다. 몇 년 전 '우리쌀 지키기 백인 백일 걷기 운동'을 하고 돌아온 뒤 밥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와 밥이다!' 전에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듯 먹었다면 그 뒤부터 푹푹 먹었다. 지난 가을에는 일해주면서 배우고 돌아온 일이 있다. 그 뒤 일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전에는 엄마 일 도와주는 거라면 이제는 일꾼으로 한 몫을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기타를 배워오고, 몸 단련을 하겠다고 나갔다 와서는 우리 집에 운동 지도자가 되었다.

탱이는 어디 가면서 가는 차비와 비상금 1만원 정도를 받아나간다. 그리고 대부분 그 비상금을 돌려주었다. 간 곳에서 일해주고 지내고, 돌아올 때는 차비를 얻기도 하고, 그곳 식구들과 함께 돌아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설에 시댁에서 하룻밤 잘 때 한쪽엔 탱이와 나란히 누워 잤다. 오랜만에 탱이와 함께 자니 탱이 숨결과 몸에서 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탱이는 한창 기운 찬 젊은이. 나보다 몸집도 크고, 기운도 센 젊은이다.

이제 내가 탱이한테 이래라 말아라 할 때가 지났음을 알았다. 오히려 내가 탱이를 따라가야겠지. 상상이를 낳기 잘 했지. 낳을 때는 애고고 했지만 탱이만 있었으면 나는 벌써 늙은이가 될 뻔 했네.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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