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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째 아카데미전쟁, 누가 이길까

오동진의 영화갤러리<30> <애비에이터> vs <밀리언달러 베이비>

우리시간으로 28일 오전에 열리는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유례없이 화제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극장가도 예년과 달리 시상식 결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영화제 혹은 영화상 수상작들의 경우 <반지의 제왕> 등 일부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제외하고 국내시장에서 특히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을 넘어 아예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해왔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 시상식에 쏠리는 관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이제 국내 관객들은, 칸이나 베를린이나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이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전세계 TV를 통해 생중계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당 영화에 대한 홍보가 이루어지는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든, 철저하게 외면하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어서 5,60%를 넘나들면서 더욱더 심화돼 왔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우리관객들 사이에서도 자막 영화를 기피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이는 또 영화문화가 대중상업영화로 획일화 되고 그에 따라 관객수준이 하향평준화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아카데미가 국내시장에서조차 크게 붐업되고 있는 현상은 수상후보작들이 대거 시상식을 1,2주 앞두고 일제히 개봉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현재 아카데미의 강력한 후보로는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애비에이터>를 비롯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달러 베이비>, 테일러 헥포드 감독의 <레이>, 마크 포스터 감독의 <네버랜드를 찾아서> 그리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 등 다섯편이다. 여기에 아네트 베닝 주연의 <비잉 줄리아>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클로저> 등이 가세하고 있다. 현재 이들 영화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와 <비잉 줄리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작품이 개봉된 상태다. 아카데미 후보작들이 시상식 전에 이렇게 대부분 상영을 시작하기는 최근 몇 년간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이는 그만큼 해당 작품의 영화수입사 및 배급사들이 일정 정도의 흥행을 예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시상식 전에 일찍 개봉을 서둘렀어야 했을 것이다.

1998년 <타이타닉>으로 전세계 레오매니아 열풍을 일으켰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7년만에 자신의 스타성을 부활시킨 <애비에이터>는 지난 주(2월 18일) 개봉돼 첫주말 3일간 전국 약 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 물론 이들 작품 가운데서는 이미 시장에서 퇴출 분위기인 작품도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급의 작품 <사이드웨이>가 바로 그것으로 한 영어 고등학교 교사와 그의 친구가 캘리포니아주 산타 바바라의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를 중심으로 와인 시음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숙성된 와인의 맛처럼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이 돋보이는 내용이지만 국내 극장가에서는 일찌감치 ‘재미없는’ 영화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가 희곡 '피터팬'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드라마 <네버랜드를 찾아서>와,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블루스 음악가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레이>는 이번 주말 개봉돼 한창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중 <레이>의 경우 주연을 맡은 제이미 폭스가 생전의 레이 찰스 모습 그대로를 연기함으로써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이 확실시 되는 만큼 시상식 이후의 흥행에 더 큰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대체로 <애비에이터>와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는 분위기다. <애비에이터>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모두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으며 <밀리언달러 베이비> 역시 비슷한 부문으로 모두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애비에이터>의 마틴 스콜세즈는 올해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이 7번째다. 감독상 부문에만도 5번이나 지명됐다. 그러나 그렇게 잦은 후보 물망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감독상은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해다. 지난 80년에는 <성난 황소>로 감독상에 올랐지만, <보통사람들>의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양보해야 했다. 88년에도 <예수 최후의 유혹>으로 후보에 올랐으나 <레인맨>의 배리 레빈슨에게 뺐겼고, 90년 <좋은 친구들> 때에는 <늑대와 춤을>을 만든 케빈 코스트너에게 밀렸다. 또 지난 2002년에도 <갱스 오브 뉴욕>으로 각 부문 후보를 휩쓸었지만 뮤지컬 영화 <시카고>의 롭 마샬 때문에 감독상을 양보해야 했다. 따라서 이제는 마틴 스콜세즈가 감독상을 탈 때가 됐다는 것이 그의 수상을 예상하는 사람들의 예측이자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 <애비에이터>는 할리우드 전성기를 시대배경으로 전설적인 영화제작자이자 비행광이고 억만장자였던 하워드 휴즈의 일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냄으로써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대세론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만만치않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미국감독협회상의 수상자가 대부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아왔다는 관례 때문이다. 올해 감독협회상의 감독상은 이스트우드가 받았다. LA타임스의 영화평론가로서 미국 영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케네스 튜란은 이스트우드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스콜세즈가 존경받는 감독이라면 이스트우드는 영화인들로부터 거의 숭배대상의 경지에 오른 감독"이란 점과 "아카데미의 막강군단인 배우 회원들이 동료출신 감독을 지지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왔다는 점을 꼽았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각종 외지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매스터피이스」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지난 1990년 스코세즈가 케빈 코스트너에게 감독상을 뺐긴 것도 배우 회원들이 동료배우인 코스트너에게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란 것이 케네스 튜란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트우드의 수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문가들은 <밀리언달러 베이비>가 현재 미국에서 뜨거운 논쟁에 휘말려 있으며, 아카데미는 비교적, 정치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작품의 경우 수상작으로 선정하기를 꺼려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마틴 스콜세즈가 무대에 오를지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환호하는 시상식 청중들에게 답례를 하게 될지 이제 얼마 안있으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가운데 누가 타게 되더라도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 결과가 국내 영화시장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시기적으로 3월은 각급 학교의 개학과 맞물려 비수기 가운데서도 비수기로 꼽혀 왔다. 이들 영화의 흥행 파괴력에 따라 전통적인 비수기라는 3월 한달이 예상외 활황 국면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1년 가운데 최고의 비수기에 관객들로 극장이 꽉꽉 채워지게 된다는 것은 올 한해 전체 흥행성적 역시 그만큼 크게 오를 공산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관심사는 이들 영화가 인기를 모음으로 해서 그동안 지나치게 한국영화, 특히 10대후반과 20대 초반의 여성관객들 대상의 상업영화에만 쏠려있는 우리 영화 문화에 모처럼 자극을 줌으로써, 그 내부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이제 그 같은 역할을 할리우드의 수준작에게 기대하는 시대가 됐다.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고 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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