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을 가고 있는 지율스님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을 애태우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이다.
서초구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지율스님이 거처를 옮긴 지난달 29일 이후 법륜스님은 잠 한숨 제대로 청하지 못하고 지율스님을 살리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율스님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을 호소하고, 기자들에게도 지율스님을 살리기 위해서 언론이 이 문제에 적극성을 보일 것을 여러 차례 호소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1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두 번째 호소문도 보냈다. "제발 지율스님을 살려 달라. 지율스님이 살아나는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분은 노무현 대통령, 오직 당신뿐이다"라고.
하지만 그는 이 호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지율스님을 구명하기 위한 노력을 접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았다. "이제 지율스님이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거기에만 신경을 쓰겠다. 정토회에 쏟아질 모든 비판도 각오하겠다." 메아리 없는 몰인정한 권력의 벽이 그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법륜스님은 외부인들을 피해 청와대앞 단식장을 떠났던 지율스님을 설득해 정토회관으로 모셔올 정도로 평소 지율스님과 남다른 '신뢰의 연'을 맺어왔다. 지율스님이 지난해 부산역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할 때도 여러 차례 단식장을 찾아 그와 뜻을 함께 했었다.
법륜스님이 이처럼 지율스님 문제에 열심인 것은 지율스님 단식의 '순결한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법륜스님은 지율스님이 지난해 3월 펴낸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펴냄)라는 책의 서두에 자신이 지율스님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 '천성산의 생명' 이야기를 담백하게 기록한 바 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 이름 붙여진 이 글이 지율스님이 단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지금 지율스님과 함께하는 법륜스님과 정토회 수행자들의 마음을 잘 드러낸다고 판단돼 전문을 싣는다.
***고향으로 가는 길**
지율스님은 천성산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지요.
어느 골짜기에 어떤 도롱뇽이 사는지도 꽃이며, 나무며, 바위며, 늪이며, 오솔길이며, 풀벌레들이며 화엄벌에 얽힌 사연까지도. 그래서 지율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덧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고향 산천을 달리고 있지요.
가재는 어느 골짜기에 많고 어느 바위 및에 큰 놈이 사는지도 더덕은 앞산 응달진 곳에, 도라지는 뒷산 양지바른 쪽에 진달래며, 산딸기며, 버섯이며, 나물이며, 칡이며 심지어는 가시나무 덩굴까지도 어디에서 사는지 다 알지요. 많은 밤 중에서 어느 밤나무의 밤이 가장 일찍 익는지 어느 밤이 고소한지 어느 감나무의 감이 맛있는지도 다 알지요.
그것뿐인가요. 바위, 돌이며, 붉은 흙이며, 나무며 심지어 산에 사는 토끼며, 새까지도 어디 깃들이는지 알지요. 타지 사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대해 잘 안다고 하면 저는 웃지요. 웃을 수밖에요.
고향 방문을 했을 때 새 길을 낸다며 길가에 고목나무가 없어진 것을 볼 때 나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을 맛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우리 앞에 사라져 갈 때 나는 고향을 잃어 가고 있고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집에 들렀을 때 반겨 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 텅 빈 가슴을 안고 뒷마루에 멍하니 앉아 먼 산을 바라보듯이 내 고향 산천의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 고향 산천을 파괴하고 어떻게 돈으로 보상 받을 수 있을까요?
지율스님을 통하여 스님의 자연 사랑, 천성산 사랑, 도롱뇽 사랑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다 보면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 어린 시절, 소년 소녀 적 꿈을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물신주의, 속도주의에 물든 우리의 불쌍한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 21세기라는 숫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율스님의 맑은 눈으로 본 천성산의 이야기로부터 새로이 시작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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