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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거짓말 역사', 꼭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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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정희의 '거짓말 역사',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직격 인터뷰] <그때 그사람들>의 임상수감독, "이번 검열은 보수신문 작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낸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이 1월31일 오후 일부 장면을 삭제하고 상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MK픽쳐스(대표 이은)는 이날 긴급회의를 갖고 법원이 지적한 세가지 장면을 삭제하되 검은 화면으로 처리해 총 1백2분의 러닝 타임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정은, 2월3일 개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투자자와 극장측과의 계약을 고려해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속에서 영화사가 내린 나름의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이 있기 이틀 전, <프레시안>은 임상수 감독과의 단독이자 직격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당시 임상수 감독은 자칫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대부분의 인터뷰를 자제하고 있던 상태였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속마음을 다 털어놓기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곧 입장을 바꿔 이번 영화에 관한 논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속시원하게 밝히겠다고 했으며, 다만 그 조건으로 "기사 게재를 법원 판결 이후로 미뤄달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월29일, 판결 이틀 전에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으며 인터뷰 현장에는 사설 경호원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고 있는 상태였다. 이번 영화를 제작한 MK픽쳐스의 이은 대표가 과거 <공동경비구역 JSA>때의 경험을 살려 '있을 수도 있는' 불상사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날 임상수 감독은 법원판결을 예상한 듯 자신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상영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예측하는 이유에 대해, 일부 보수신문이 <그때 그사람들>의 상영을 막기 위해 마치 총대를 메고 나선듯 여론을 조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신문은 연일 <그때 그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으며 매주 한번씩 제작되는 영화 지면에서조차 그의 영화를 두고 "버릇없고 무책임하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음은 임상수 감독과의 29일 인터뷰 전문 및 법원 판결직후인 31일 밤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임상수 감독 전격 인터뷰**

오동진 : 버릇없고 무책임하다?

임상수 : 영화 리뷰에 쓰이는 어휘로서는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무지하게 봉건적인 단어들이기도 하고. 만약에 거기서 임상수의 이번 영화는 '예술적으로 후지다'라든가 '역사적인 팩트가 틀렸다'라든가, 아니면 인간적으로 다소 오만했다' 정도로 얘기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릇없고 무책임하다 '는 얘기는 정말로 정말로 영화 리뷰로서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오동진 : 법원이 무리수를 둘 것이라고 보이진 않는데.

임상수 : 우리사회를 너무 쉽게 보는군. 그렇지 않다. 몇몇 신문들이 대표하는 우리 사회의 보수계층들이 얼마나 변하기 힘든 존재들이라는 걸 당신이 잘 모른다는 얘기다.

오동진 : 소송을 낸 박지만씨에 대한 당신 생각은?

임상수 : 박지만씨 입장에서는...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이해를 바라고 싶은 마음이다. 음...뭐냐면...나나 우리 모두는 박지만씨를 포함해 박정희씨의 세 자녀에 대해 뭔가 빚진 것이 있는 사람들이거든. 박근혜씨 같은 경우는 72년 육영수씨가 총탄에 맞아 숨진 이후 79년 사건이 벌어질 때까지 영부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매일 저녁 9시 뉴스에 나왔었다 . 그런데 어느날 시해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신군부는 이들 세 자녀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고 또 유폐시켰다. 전두환 등 신군부가 이들에 게 쏠리는 동정적인 여론을 극력 차단하려고 했던 거지. 언론이 거기에 적극 동조했고. 박정희씨의 세 자녀는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 세 자녀를 오랫동안 방치해 놨다. 그 점에서 보면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입장에 대해 정치적으로도 동의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박근혜씨에 대한 동정이 정치적인 표로 연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동진 :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 특히 마지막에 박정희 전대통령의 장례식 장면에서 다큐 필름을 그대로 썼다. 이번 영화는 블랙 코미디를 표방해 왔는데 다큐 필름을 그대로 쓴 이유는 뭔가?(법원의 이번 판결은 특히 이 다큐 장면들에 모아졌고, 영화사는 결국 법원 판결대로 이들 장면을 빼기로 했다.)

임상수 : 사람들이 그러더라. 왜 의도적으로 당시의 박근혜씨를 보여주려고 했느냐고. 난 사실, 그날 모습에서 박정희씨의 관을 보여주려고 했다. 굳이 왜 이 장면이 필요하냐고들 했지만 난 바로 이 장면 때문에 이번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 그때의 영결식 모습은 한마디로 조작된 이미지였거든. 몽땅 거짓말이었다. 박정희씨의 실제 삶은 그날의 분위기처럼 그렇게 엄숙하고 장엄한 게 아니었다. 여자와 술과 독선과 아집이 점철됐던 삶이고 그때까지 국민들한테 보여준 이미지와는 정말로 다른 모습이다. 우리 역사가 사실은 그런 사람에 의해서 18년동안 좌지우지됐고, 떠나는 그날까지 조작된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 거짓말과 아이러니의 역사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이 영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한 심리적 동기 같은 장면이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그 장면들을 넣었다. 결코 뺄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오동진 : 당신이 얘기하는 박정희의 진면목이 그랬다면, 송재호씨가 맡은 박정희 캐릭터는 매우 나이스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그린 이유는 뭔가?

임상수 : 박정희씨에 대한 이미지에도 많은 고정관념이 작용한다. 송재호 선생을 캐스팅하고 나서 계속 그렇게 요구했다. 우아하면서도 나이스하게 보여달라, 마치 그래서 박정희가 천상의 인물이었던 것처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니 더욱더 어떤 사람들 얘기대로 이 영화에서 박정희씨를 모욕했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 만약 이번 영화가 그를 그렇게 그렸다면 그건 정말 하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박정희를 우아하게 그리려고 했는데!

오동진 : 국군지구병원에서 알몸의 박정희에게 모자를 덮는 장면같은 건 사람에 따라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다.

임상수 :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영화가 그 정도도 못해? 난 그게 그렇게 심각한 모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장면은 사실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날 그 병원에서 박정희의 주검앞에 있던 사람들을 봐라. 그 사람들의 당시 직위나 직책을 보면 국가 자체를 대변하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들이 허둥지둥,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우리가 18년을 그런 사람들, 그런 국가를 믿고 살았다는 자괴감 같은 게 그 장면에는 들어 있다. 모욕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런 느낌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오동진 : 김계원씨를 묘사한 것은 아무래도 좀 너무했다는 반응도 있다.

임상수 : 이봐요. 래리 플린트 같은 사람 생각해 봐요. 세상에, 공적인 인물을 조금 희화시켰다는 것이 뭐가 그리 큰 문젠가. 물론 김계원씨한테도 약간의 미안한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 미안한 마음은, 그 사람이 다소 약자에 해당하는 인물이니까 내가 마음대로 휘두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반성때문이지 딴 게 아니다. 그리고 김계원씨는 그 역사의 소용돌이 현장에서나 그 이후에서나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인물이다.

오동진 : 영화가 딱 한번밖에 공개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반응들이 엇갈리더라. 영화를 좀 어렵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했고.

임상수 : 아마도 그건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지 못해서이겠지. 영화계의 어떤 후배가 그러더라. 영화를 보고나니까 쪽팔려서 못살겠더라구. 왜 그러냐니까. 자기가 이런 나라에서 살아왔다는 게 쪽팔려서 못살겠다는 거다. 이번 영화는 어쩌면 그런 친구들같은 사람들에겐 어떤 분노 같은 걸 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한테는 모멸감을 주기도 했을 거다. 모멸감을 느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빨고 싶어하는' 박정희를 내가 대놓고 욕했다고 생각하는 걸 거다. 그런 사람들은 솔직히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러나 저러나 영화가 기분나쁘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그러니까 영화시사 직후 반응들이 그랬겠지. 아 이 기분나쁜 영화같으니라구 하는, 시큰둥해 하는 느낌 같았다. 근데 우리가 잘 새겨서 생각해야 하는 건 기분나쁘게 한 건 영화가 아니라 박정희와 박정희 시대 그 자체라는 거다. 난 거기서 매개체 역할을 한 것밖에 없다.

오동진 : 이번 영화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태도가 뭐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게 될 거다.

임상수 :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사회는 여전히 실어증에 걸린 사회고 실어증에 걸리지 않는 나로서는 이런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게 아무리 잔인하고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인간적으로 배신감을 준다 해도 그것이야말로 한국을 실어증에서 치유하게 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나온 직후인 31일 저녁 임상수 감독과 통화를 갖고 소감을 물었다)

오동진 : 판결에 대한 소감은.

임상수 : 서울중앙지법의 결정으로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미학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채 일반에게 공개되게 됐다. 따라서 오히려 영화개봉후 창작표현의 자유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역설적으로 한국의 표현의 자유를 더욱 신장시키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대부분의 영화계 반응처럼 국내 영화문화를 10년이상 후퇴시킬지 그 결과는 미지수다. 이제 공은 일반관객들에게로 넘어갔다. 관객들, 국민들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때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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