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이 지난 1966년 일본에 징용.징병으로 끌려갔다 사망한 한국인 무연고 유골에 대해 남-북 출신 유골 구분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일본 정부에 일괄적으로 영구 매장하도록 요청했다가 거절된 사실이 외교문서 공개결과 밝혀졌다.
반면에 유가족 등 시민단체들은 일본 정부에 우선적으로 전국 실태조사와 보상을 요구하며 봉환 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역시 우선적으로 일본측에 일본 전국에 걸친 유해 공동실태조사를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희 정권, 66년 日에 한인 유골 영구매장 요청했다가 거절 당해**
지난 20일 공개된 ‘재일본 한국인 유골봉환, 1974’ 문서 가운데 ‘제2차대전 중 전몰 한국인 유골봉환’에 따르면, 1966년 2월 21일 우리 정부는 남-북 출신 유골 구분이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무연고자 유골을 항구적으로 일본내에 매장하길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1974년 2월 26일 작성된 면담록 문서에서도 외무부 조원일 사무관은 가와시마 주한일본대사관 1등서기관과 만나 “한국정부는 1966년 본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족이 있는 유골만을 아국정부가 인수하고 잔여 유골을 일본정부가 매장함으로써 본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의했다”고 이같은 제안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감정상 문제와 연고자가 나타나 이장하겠다고 할 경우를 들며 무연고자 유골의 일본내 항구적 매장에 반대하고, 대신 연고자 유무에 관계없이 한국 정부가 일괄 인수해 무연고자 유골도 한국에 매장할 것으로 제의했다.
이후 일본은 유족이 북한에 있으면 추후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이같은 제안을 수정, 유족주의에 근거해 연고 관계가 확실한 유골에 대해서만 인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북한 평양방송은 1974년 5월 22일 “유골 중 수백위는 북한 거주가족의 유골이므로 북한과 교섭해야 한다”고 밝혔고, 이에 일본 외무성은 “북측방송으로 말미암아 이에 대해서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일 양국은 1969년 제3차 한일정기각료회의에서 연고 관계가 분명한 유골에 대해서는 연고자 요청에 따라 개별 봉환하기로 상호 양해, 문제를 매듭지었다.
***日에 유골 1천1백36위 그대로 남아있어, 일본 전역에 많은 유골 산재 상태**
이같은 방침에 따라 1970년에서 1998년 사이에 1천1백92위의 일본 정부 보관 유골이 봉환됐으나, 일본 도쿄 유텐지(佑天寺)에는 남한출신 7백5위를 포함해 유골 1천1백36위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다.
문서에 따르면 2차 대전 중 일본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한국인은 24만2천명 규모로 이 가운데 2만2천여명이 사망했으며 이 가운데 종전 직후 회수된 유골은 3분의 1인 약 8천3백위에 불과했다.
회수된 유골 중에서 약 6천위는 1948년 2월과 5월 두 차례 연합군총사령부(GHQ)에 의해 봉환되고 북한출신 4백32위를 포함한 2천3백28위는 일본 후생성으로 이관됐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유골 이외에 회수되지 않은 유골 1만3천7백여명은 일본 전역에 흩어져 발굴도 되지 않고 있어,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일본측으로서는 군인, 군속으로 끌려왔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한국인 유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책임을 느껴 절에 보관하고 있으나 더 나아간 조사 움직임은 전혀 보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정부, 유골 문제로 북-일 직접 접촉할까 크게 경계”**
한편 한국 정부가 60년대 한반도 출신 무연고 유골을 모두 영구 매장하도록 일본 정부에 요청한 것과 관련, 한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 시각으로 그 당시 상황을 보는 것은 곤란한 부분이 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 당국자는 “남북대결이 치열하던 당시 한국의 대일 외교는 극심한 안보투쟁을 겪고 있던 일본의 대북 직접 접촉을 막는 데 온 신경이 가해 있던 상황”이라며 “유골 문제가 일본의 대북 접촉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어 이를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정식으로 매장을 하면 봉환 얘기가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자는 그러나 “이러한 매장 요청 입장도 65년 한일 협정 체결 이후 일시적인 입장이었으며 문서를 통해서도 그 이후에는 가능한 모든 무연고 유골을 봉환하려는 입장으로 정리됐다”고 덧붙였다.
***유가족, 日전역 유골 조사 및 보상 문제로 봉환 문제 신중 **
유골 봉환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는 지난해 10월까지 일본내 무연고 남한출신 유골을 봉환키로 했으나, 유족단체의 반대 등으로 보류된 상태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반도 출신으로 확인되고 개별성이 인정된 유골은 모두 봉환한다는 입장이나 지난해까지 모두 봉환한다는 계획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가족으로서는 유골이 봉환되면 일본 전국에 산재해 있는 한국인 유골들을 일본 정부가 발굴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봉환이 이뤄지면 일본 정부가 면책 수단으로만 삼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2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정부는 유골 봉환 문제에서 유가족들의 이해를 얻은 다음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공동대표는 “유골을 모두 봉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자칫 일본 국내에 있는 유골을 봉환함으로써 일본 정부에 면책을 부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보내려는 유골은 확인된 유골로 절에 보관중인 것들만으로 1만3천7백여명의 유골들은 여전히 일본 전역에 산재돼 있는 상태이며 보관중인 유골이 봉환되면 가뜩이나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가 더욱 비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아울러 피해 당사자에 대한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가 유골을 모두 봉환하게 되면 보상책임이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개진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일제치하 피해자 단체들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가족과 일본 정부간 접점을 찾기 위해 의견을 조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규명위, “일본내 유해 실태조사 계획” **
하지만 일본내 유해 발굴문제는 보다 활기를 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족돼 다음달 1일부터 본격적인 피해 접수를 받을 예정인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유해 발굴 문제도 본격 다룰 예정이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기존 한일 당국 차원에서 추진됐던 것들을 연계해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듣고 종합계획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것이 수립된 뒤 일본 정부에 재협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규명위에서 현단계에서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일본내 실태조사로 알려졌다. 규명위 관계자도 “일본 전역에 걸쳐 1차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내 실태조사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일본 정부 태도로, 이 관계자도 “우리 단독으로는 하기 어렵고 일본 정부가 확보하고 있는 명단 등이 필요해 일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면서 “한일간 유해발굴을 위해 한-일, 정부-민간 공동으로 일을 추진할 것이며 이러한 입장을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측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민간에서는 기존의 피해자 단체 대표 등이 참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지난해 12월 일본 규슈 가고시마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할 수 있는게 뭔지 검토해서 협의해나가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내달 1일부터 시작되는 피해 접수에서는 유해 피해신고와 진상조사도 포함돼 있어 일본 정부에의 협조 요구와 국내 조사가 병행될 계획이다.
한편 이 관계자도 봉환 추진과 관련해서는 “1차적으로 실태조사가 끝난 다음에 추진할 계획”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연고가 있는 유골의 경우 유족들의 의사를 확인해야 하며 무연고일 경우 피해자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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