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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징용 조선인촌 ‘우토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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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지막 징용 조선인촌 ‘우토로’를 아십니까

“고국서 쫒겨 걸레처럼 일했고 전쟁뒤에는 방치, 지금은 토지 뺏으려”

마지막 남은 '징용 조선인촌', 일본 우토로.

일제 때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로 일본 땅으로 끌려갔던 재일조선인들이 모여 만든 정착촌인 이곳은 현재 강제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한일협정은 지난 1965년 체결됐지만 이들은 국내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일본 내에서 한-일 양국의 눈치보기 속에서 외로운 섬으로 철저히 고립돼 있는 셈이다.

***마지막 징용 조선인촌 '우토로', 한일협정의 또다른 피해자**

우토로의 상황과 목소리를 듣기 위해 18일 지구촌동포청년연대(KIN)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 17일 국내외 64개 단체와 함께 ‘우토로 재일조선인의 권리찾기’ 국제연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던 KIN의 배덕호 대표집행위원은 “우토로에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 1세대들의 고통스런 삶의 궤적위에 우리 한국 사회가 있다”고 운을 뗐다.

배 위원은 “한국 정부의 청구권 협상은 크게 잘못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일본이 지불한 8억달러의 자금으로 일정 정도 혜택을 본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우토로의 재일 조선인들은 강제노역으로 시달리다 해방된 뒤에는 또다시 주거권마저 빼앗기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는 현재 한국의 발전상이 무엇 위에서 성립돼 있는지 고민해야 하며 우토로의 현실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기구한 우토로 60년 역사, 강제 퇴거 위기 **

우토로의 60년 역사는 ‘기구하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위치한 우토로는 1941년 교토군사비행장 건설에 끌려온 노동자 1천3백여명의 집합 합숙소였다. 일본 패전 후에는 규슈, 후쿠오카 등지로 광원으로 징용됐던 조선인들까지 이곳으로 모여들어 지금의 조선인 부락을 이루게 되었다.

일본 패전후 우토로 토지를 소유하던 군수업체는 이 땅을 현재 닛산의 자회사인 닛산차체에 넘겼으며, 닛산차체는 1987년 주민들 몰래 서일본 부동산회사에 우토로 토지를 매각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다. 고층맨션 건설을 짓기 위해 서일본 부동산회사는 1989년 교토지법에 주민들을 상대로 토지명도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맞서 우토로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우토로에 정착하게 된 역사적 경과와 국제인권법의 적용을 요구하는 등 10여년간 분투했다.

이 과정에 일본 고등재판부는 주민들에게 1백40억엔을 마련하면 중재할 수 있다는 안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에게는 이같이 막대한 자금은 있을 턱이 없었다. 결국 주민들은 패소했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주민의 강제퇴거를 명령했다. 현재 땅 주인은 서일본 부동산회사에서 한 일본인 개인 명의로 넘어가 있는 상태로, 우토로 재일동포 65세대 2백3명은 언제 퇴거 판결이 강제 집행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집단촌, 우토로”**

배덕호 위원에 따르면, 이 곳은 1988년까지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일본은 1980년 국제인권규약 등에 가입했으나 그후 8년간이나 이곳은 빈곤과 차별 속에서 ‘방치’돼 왔던 것이다.

배 위원은 또 이 곳이 마지막 징용 조선인촌이 된 경위와 관련, “홋카이도에도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댐 건설을 위해 끌려왔던 많은 재일 조선인들이 집단촌을 형성해 살아왔으나 일본 정부는 국내외 이미지 문제로 이들에게 임대주택 건설 등의 회유로 집단촌을 거의 모두 해체시켰다”며 "그 결과 우토로가 일본으로서는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집단촌으로 유일하게 남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역사적 배경과 인권적 문제가 응축된 이 곳에 대한 일본 사회의 대응과정을 보면 일본 시민사회에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고 일본사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 곳에 대한 문제제기에 거의 반응을 하고 있지 않으며 일본내 일부 양심적 변호사와 시민들이 모여 만든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정도만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우토로, 한-일 역사의 희생물**

현재로서는 우토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인 절차는 모두 끝난 상태여서 정치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 위원도 “가장 큰 책임은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 있다”면서도, 한국정부의 능동적인 대응을 강하게 촉구했다. 이들 우토로 주민은 바로 한-일 역사의 희생물이기 때문이다.

배 위원은“일본도 6,70년대 좌우 대립이 매우 심했으며 그 한복판에 놓여 있던 이들이 바로 재일 조선인들이었다. 당시 한국과 수교되면서 한국 정부측은 재일 조선인 가운데 친정부 입장만을 밝힌 사람들만 한국 국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나머지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며 "하지만 대다수 우토로 주민들은 한국 국적도 선택하지 않고 일본 국적도 받아들이지 않은 조선적(籍)들로, 이들은 어느 측에게도 속하지 않아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왔다”고 전했다.

그는“이들 ‘조선적’이 ‘조선적’을 선택한 이유는 정치적인 배경이 북한인 이유도 있지만, 분단된 어느 나라에 속하기 싫어서 통일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배 위원은 앞으로 우토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KIN은 2월 초에 우토로 대책회의를 조직할 계획이며 2월 말에는 우토로 현지의 사무국과 연계해서 보다 정확한 우토로 실상을 알려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정치적 해결과 일본 정부에 대한 문제 제기 이외에 모금 운동도 고려하고 있으며, 정치권 등에도 관심을 촉구할 예정이다. 일부 민주노동당 의원측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국회차원에서의 결의안이 상정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국서 쫒겨 걸레처럼 일했고 전쟁뒤에는 방치, 지금은 토지를 뺏으려”**

배 위원은 현재 우토로에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들의 글들을 소개했다. 우토로가 한국과 일본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가식없이 전달해주고 있는 글들이다.

“왜 지금에 와서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토로에 일본인이 반 정도만 살았었더라도 이런 짓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국에서 쫓겨나와 걸레처럼 일을 시켜왔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방치되어 왔고 이제는 지금 살고 있는 토지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문광자 (재일 조선인 1세)

“내 집을 빼앗으려 하는 것은 민간 부동산회사입니다. 이를 일본 법률이 재판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뒤에서 밀고 있습니다. 결국 일본사회는 재일조선인이 이 마을에서 살지 못하게 하고 재일조선인을 말살하려는 것입니다. 학대받아온 재일동포 어머니, 아버지들을 일본이 내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할 수 있는 행동입니까? 나는 끝까지 나의 집을 지켜낼 것입니다.” 유달삼 (재일조선인 2세)

“우토로의 토지문제는 재일동포사회의 본연의 자세에 극히 중요하고 결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독일은 강제노동을 시킨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는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자에게 보상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재일동포에게는 아직도 일본정부로부터의 전후보상은 없습니다. 우리 주민들은 이 토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싸워 나갈 것입니다.” 박남숙 (재일조선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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