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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만나면서 고민하고, 배우고..."

산골 아이들 <6> 서울 나들이를 다녀와서

을유년 닭의 해가 왔습니다. 여러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탱이
거시기 많이 받으세요. 상상이.
마음 편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필자.

***서울 나들이를 가다**

상상이 혼자말로, "실감이 안 나." 뭐가?, "이제부터 열 살이 아니라 열한 살이라는 게."

상상이에게는 해가 바뀌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게 뜻 깊은가 보다. 그런 아들 덕에 이제 2005년이네, 그러면 내 나이 몇이야?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상상이가 두 살 때인 1996년 서울을 떠났으니 올해면 10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 역시 변했나?

***어느 출판사 송년회**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12월27일 서울 한 출판사에서 하는 송년회에 나와 탱이가 가야 했다. 산청 사는 민성이네와 같이 가기로 해, 서울 길을 함께 나섰다. 상상이는 엄마를 따라가는 것보다 집에 남아 자기 일상을 보내다 나중에 아버지와 서울에 오기로 했다.

먼 길을 자주 다니지 않는 내게 서울 길은 참 멀다. 8살 민성이도 그런가 보다. 금산 인삼 휴게소 언저리부터, "서울 다 와 가?", 차에서 몸을 비튼다. 그러다 민성이는 도로지도책을 펴 놓고 어디만큼 왔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민성이 노래도 부르고 휘파람도 분다.

고속도로에서는 잘 달리더니, 판교 톨게이트를 지나자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가다서다 한다. 겨우 한강 다리를 건너 강변북로로 갔다. 한강변 작은 산에 닥지닥지 세워진 집들, 그 맨 꼭대기에 교회. 서울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출판사에서 여는 송년회는 합정동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이 출판사는 3월부터 어린이 잡지를 낼 예정이어서 작가, 화가 분들이 많이 오셨다.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어른이신 분이 노래를 하셨다. "~마음이 설레이네요, 열일곱 살이에요."

바로 뒤가 탱이 차례. 탱이가 일어나, "안녕하세요? 저는 진짜 열일곱 살인.......", 모두 웃는 가운데 탱이 자기 소개를 했다. 잡지에는 보통 어른이 어린이 보라고 글을 쓰는데, 탱이는 언니 누나로 동생들에게 글을 쓸 예정이다. 내용은 자기 삶을 만화로 엮는 글이다. 탱이가 농담 삼아 자기가 귀농 경력 8년, 집에서 공부하는 경력 4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줄 경력이라더니 그 경력을 인정받은 셈인가.

여덟 살 민성이도 화가 자격으로 이 자리에 왔다. 민성이는 엄마가 들꽃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자기도 해 보고 싶다 해서 엄마 곁에서 그림을 그렸다. 엄마와 아이가 같이 그렸는데 민성이 그림이 더 좋더란다. 그 뒤 민성이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해 2월 시작한 그림은 들꽃에서 자기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산골 외딴 집에서 사는 환경. 그 환경이 민성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강화도 여행 **

서울 나들이를 한 김에 29일에는 강화에 갔다. 탱이가 만화가 선생님을 만나기로 해서다. 탱이는 2002년 '우리 쌀 지키기 백인백일 걷기' 때 강화 사시는 만화가 선생님을 만났단다. 평소 그 만화를 좋아하던 탱이가 사인을 받으며, 만화에 관심이 있다니까 선생님이 '나도 혼자서 만화를 배웠고 너도 그럴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라'며 사인 밑에 연락처를 적어주셨단다. 그 뒤 몇 년 만에 전화를 했는데 기억하시더니, 강화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우리는 선생님 작업실에서 선생님 작품, 일하시는 모습, 여러 자료들을 보면서 살아있는 공부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유행하는 만화에 물들지 말고 우리 만화를 이어가라'는 말씀을 여러 번 힘주어 하셨다.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으셨다는 데도 여러 시간 열강을 하셨고 아낌없이 자신을 열어주셨다.

강화에 간 김에 부부교사인 친구네서 하룻밤을 잤다. 올해는 귀농한 뒤 처음으로 무 배추농사가 잘 되었다며 손수 담근 순무김치를 자랑한다. 귀농한 뒤 늦둥이를 낳은 그 집은 늦둥이는 학교에 보내기 싫다며 탱이에게, "네가 잘 되어야 우리가 희망을 가진다", 한다. 학교 교사도 자기 아이는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같은가 보다.

이불 밑에 발을 묻고 앉아 귤을 까먹으며 탱이가 어찌 지내는지 이야기가 나왔다. 탱이가 일해주면서 배우러 다닌다고 했더니, 자기 집에 와 있으면서 일해주고 배우면 어떻겠냐 한다. 탱이가 "무얼 가르쳐 주실 수 있는데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울 생각은 없냐?",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지금 탱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흥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탱이에게 자기 집에 와 있으라는 분이 몇 분 된다. 이것저것 아낌없이 가르쳐 주려는 분도 만난다. 며칠 탱이를 따라 다니다 보니, 탱이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만 해도 탱이 1년이 꽉 차겠다.

***대학입시 공부에 지장은 없냐?**

친정집에도 갔다. 탱이 외할아버지는 탱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에 앞서 물으신다. "대학 입시 공부에 지장은 없겠냐?", 잡지에 글을 쓰느라 대학 입시 공부에 지장을 줄까봐 걱정이신가 보다. 대학 입시는 그만큼 절대적인 존재다.

탱이가 학교를 그만 두었을 때 집안 어른들은 걱정이 많으셨다. 그러나 한번 엎질러진 물. 중·고등학교 안 다니는 건 받아들인 대신 대학은 꼭 가라고, 볼 때마다 이야기하셨다. 중·고등학교는 시골서 사니 못 다녀도, 대학은 다녀서 중·고등학교 못 다닌 걸 만회했으면 싶으신가 보다. 우리 사회는 최종학력이 중요하고, 대학을 못 나온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우니까.

팔순이신 탱이 외할머니는, "내가 자랄 때 공부를 못해 평생을 못 나게 살았어. 그래서 남들 공부할 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니 탱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 남들처럼 대학은 가라."

우리도 처음에는 그 말씀에 동의했다. 그때만 해도 한 참 뒤 일이니 별 생각 없이 대학에 가면 되지 하고. 거기에는 내가 대학에 대해 가진 좋은 생각도 한 몫 했다. 대학에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만남이 지금까지 사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생각한다. 오랜만에 대학 동창을 만나면 사촌오라비를 만난 듯 반갑고, 대학 때를 아름답게 추억하고 있다. 그러니 내 자식도 그런 대학에 가면 좋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대학 분위기는 우리 때와는 많이 달라진 듯하다. 그믐날 만두를 빚으며 대학생인 조카와 이야기를 했다. 조카는 날마다 학원을 다닌단다. 대학생이 웬 학원? 교원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서는 학원을 다녀야 하고, 안 그러면 재수 삼수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단다. 조카는 자기가 임용고시에 합격을 하면 탱이에게 유럽 배낭여행을 함께 다녀오자고 한다. 그러자 사회생활을 하는 조카들이 벌 떼처럼 반대다.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떠나라. 그러지 않으면 영영 못 간다'고. 조카를 보며, 요즘 대학 분위기 이야기를 들으며 대학이 무언지, 꼭 가야 하는지 생각을 해본다.

우리 친정은 신정을 샌다. 지방에 사는 딸네도,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손자들도 한자리에 모일 수 있어서다. 상상이 제 아버지와 올라와 우리 네 식구는 모두 참석했다. 올해도 신정 아침에 친정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팔순이 넘도록 육십여 년 해로하시는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었다. 지난해 조카며느리, 조카사위를 보았으니 올해는 식구가 더욱 늘려니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신혼에 외국에 발령이 난 조카가 오지 못하고, 조카사위만 외로이 왔고, 탱이와 동갑인 조카는 학원에 가느라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해 아침에 웬 학원? 새해 아침이라도 예외 없이 학원 수업은 계속되고, 네 시간짜리라 한번 빠지면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단다.

이렇게 연말 연초에는 서울과 강화로 나들이 다녀오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그리고 돌아오니 어찌나 피곤한지 자고 또 자도 잠이 온다. 아른 목은 따뜻하고 집 안팎은 고요해 잠자기 좋았다. 이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이 글을 쓴다.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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