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 총선을 앞두고 무장저항세력의 총공세가 펼쳐지면서 '총선 연기' 주장이 임시정부 고위 각료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고 정치역학구조상 시아파 일부 지도부도 이에 동참할 가능성도 제기돼,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아울러 미국이 총선을 강행할 경우 이라크 정국이 안정되기보다는 오히려 시아-수니파간 갈등의 기폭제가 돼 수십년간 지속될 '내전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어, 이라크전의 '성공'을 서둘러 보여줄 필요가 있는 미국은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리고 있다.
***나흘간 70여명 사망, 바그다드 주지사도 암살**
신년초부터 이라크 치안과 정국은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다. 총선을 무력화하려는 무장저항세력의 총공세가 전개되면서 나흘만에 70명 이상이 사망했다.
우선 강경 저항세력인 안사르 알순나가 지난 연말 "총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한 뒤 새해 첫날인 1일(현지시간) 바그다드 북동쪽 디얄라주 의회 의장과 그의 동생이 암살당하고 미군 1명도 사망했으며, 2일에도 바그다드 북쪽 발라드에서 차량 폭탄공격으로 이라크 군 18명 등 최소 19명이 사망했다.
3일에는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민족화합(INA) 바그다드 본부 앞에서 자살차량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4명이 숨져 INA를 공포에 떨게 했다. 또 이날 이라크 전역에서 3건의 차량폭탄공격과 2건의 도로매설폭탄이 터져 이라크 군경 24명을 비롯해 26명이 죽고 40여명이 크게 다쳤다.
급기야 4일에는 알리 알하이다리 바그다드 주지사가 암살당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알하이다리 주지사는 지난해 이라크 임시정부 출범 이후 살해된 최고위급 관리로 이번 암살공격으로 경호원 6명도 사망했다. 이외에 이날 또다른 공격으로 미군 5명도 사망했고 이라크 보안군을 노린 차량폭탄공격으로 10여명이 사망했다.
***이라크 대통령, 국방장관 등 총선연기론 주장**
무장저항세력의 총공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분위기다.
치안 악화가 심각해지면서 오는 30일 치러질 총선이 과연 제대로 치러질지에 대해 의문이 확산되면서, 특히 이라크 임시정부 고위각료들이 잇따라 총선 연기론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가지 알야와르 이라크 임시정부 대통령은 4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엔은 독립적인 정통성을 가진 조직으로서 총선을 예정대로 실시해야 하는지 검토해야 한다"며 총선 연기를 주장했다. 알야와르 대통령은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상당수 수니파들이 투표하지 못한다면 선거는 실패하게 될 것"이라면서 "논리적으로 보면 총선을 실시한다는 것은 힘들다"고 거듭 선거 연기를 주장했다.
그는 또 "임시정부 내에서도 일부 각료들은 총선이 연기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밝혀 총선연기 분위기가 내각 전체의 뜻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방장관과 유엔주재 이라크 대사가 총선연기에 동참하고 나섰다.
하짐 샤알란 국방장관은 3일 이집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집트에게 이라크 수니파가 총선에 참여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수니파가 이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모든 이라크인들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총선을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미르 알수마이디 유엔주재 이라크 대사도 지난주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총선은 2,3주 연기될 수 있다"면서 수니파를 위한 의석배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알라위 총리, 선거패배 우려해 총선연기할 수도**
일각에서는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알라위 총리가 '총선패배'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선거 연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일 미국 고위 관리들의 말을 인용, "알라위 총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날 전화를 걸어 1월 30일 총선을 앞두고 남아있는 장애물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알라위 총리는 '총선 연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고위 관리들은 주장했다"면서도 "그러나 다른 미-이라크 관리들은 알라위 총리가 전화를 한 것은 총선에서 자신의 정당의 승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징표로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미국과 이라크 관리는 또 "이에 따라 알라위 총리는 총선 연기를 위한 명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수니파 '총선 보이콧' 거세, 일부 美의원도 "총선 연기 고려"**
현재 총선 보이콧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수니파다. 이라크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들의 고위 성직자들은 예외없이 '총선 보이콧'을 주장하고 있으며, 수니파 최대 정당인 '이라크 이슬람 정당'역시 이미 지난주에 치안 악화를 이유로 총선 불참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이 총선 보이콧을 주장하는 이유는 여지껏 최대 권력을 누려오던 수니파가 이번 선거 결과 소수파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 의회내 의원들중 일부도 "총선 연기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여 주목된다. 톰 란토스 민주당 하원의원은 4일 MSNBC 방송에 출연, "이라크의 새로운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미군철수를 위해서 총선을 실시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연기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의견에 공화당 하원의원들도 일부 호응하는 분위기다.
***총선 강행시 시아-수니파 내전사태 발발할 수도**
하지만 부시정부는 "총선 연기란 저항세력에의 굴복을 의미한다"며 총선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시아파를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라 시아파의 총선 강행 주장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사담 후세인 체제하에서 비주류로 억압받아온 시아파로서는 총선승리가 확실시되는 이번 총선을 하루바삐 치러 확고한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로선 수니파가 불참한 상황에서 총선이 강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이와 관련, "시아파와 수니파간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수니파의 낮은 총선 참여도는 이라크를 단합하게 하기보다는 더욱 분열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문은 "총선에서 예상대로 시아파가 승리하고 이에 따라 헌정의회가 시아파 정치인들로 구성되면 후세인 체제 하에서 억압받던 이들 정치인은 소수종파(수니파)의 권리를 희생해서 다수권리를 강조하는 헌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분파 갈등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미시간 대학에서 중동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후안 콜 교수도 "수니파가 헌정의회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는 수십년간 지속될 게릴라전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라크에서는 현재 '음모론'까지 횡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선거후 큰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음모론의 골자는 "총선 결과는 이미 미국에 의해 결정된 상태고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시아파 선거 승리를 돕기 위해 1백만명의 이란인들을 이라크에 입국, 부정 투표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문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수니파 국민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공감대를 얻고 있어, 선거 보이콧의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최근 분위기를 볼 때 이라크 총선을 계기로 이라크 안정화를 도모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은 첫걸음부터 비꺽거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2005년 새해를 맞아 사막의 늪에 미국이 점점 깊숙이 빨려들어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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