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그렇다. 우리는 불법도청공화국의 전복세력이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그렇다. 우리는 불법도청공화국의 전복세력이었다"

<기고> 10년전 한국통신 노조가 탄압받은 진짜 이유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1995년.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월급 8만 원 인상을 요구하며 회사와 임금교섭을 진행 중이었다.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지극히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임금교섭이 파행으로 치닫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청와대 때문이었다. 5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조찬모임 중 "한통 노조는 국가전복세력"이라는 폭탄 발언을 했던 것이다.

*** YS의 말 한 마디에 '국가전복세력'으로 지목된 한국통신 노조**

최고 통치권자의 그 한 마디는 한국통신 노조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회사는 불법세력과는 교섭할 수 없다며 일체의 대화를 거부했다. 노조 전임 간부 64명에 대한 검거령이 떨어졌다. 경찰은 노조 사무실의 출입구에 못질을 해서 막았고 인터넷 CUG 마저 강제 폐쇄했다. 검찰총장은 한통 사태는 노사관계 차원이 아닌 국가안위 차원에서 대처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고, 공안몰이의 단골손님 박홍신부는 "한통 노조는 북한 공산집단의 배후조종을 받고 있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국가전복세력'이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조탄압에 내몰린 노조 간부들은 명동성당과 조계사로 몸을 숨겨야 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어마어마한 '국가전복세력' 한국통신 노조의 요구는 너무도 소박하게 '대화 재개'였다. 딱하게 여긴 종교계가 적극 나서서 힘겹게 중재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 중재안조차 거부했고 급기야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경찰병력이 투입되었다. 이렇듯 청와대는 수미일관 한국통신 노조에 대해 비타협적이었다. 당시 한국통신 경영진조차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그 원인에 대해 지난 10년간 몇 가지 설이 있었다.

첫째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방자치 선거를 앞둔 정략적 공안몰이 설이다. 문민개혁의 실패로 민심이 이반하는 가운데 지방자치선거가 다가오자 김영삼 대통령이 강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공안몰이를 했다는 얘기다.

둘째는 노사관계 안정설이다. 민주노총 출범을 앞두고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뇌관 격인 임금가이드라인에 한통 노조가 정면으로 도전하자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강경 탄압이었다는 설이다.

마지막으로 통신개방 및 한국통신 민영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설이다. 미국은 88년부터 한국의 통신시장 개방을 집요하게 요구했으며 그 핵심으로 한국통신의 민영화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른바 뜻하지 않게 한국통신에 민주노조가 들어서서 이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사전 예방 격으로 강경탄압을 했다는 주장이다.

***10년 만에 확인된 '한통 노조 탄압'의 진짜 이유**

그런데 필자는 이 세 가지 설 모두가 어딘가 모르게 부족함을 느꼈다. 김영삼 대통령이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민심이 악화될 것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선거에서의 정략적 목표를 위해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했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한 임금가이드라인 문제도 그렇다. 종교계의 중재안은 정부의 임금통제 정책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를 거부하고 강경 진압한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았다. 통신개방설도 마찬가지다. 통신개방과 민영화가 일거에 무 자르듯 되는 게 아닐진대 그런 강경책이 그 당시 꼭 필요할 이유가 있었을까?

지난 10년 늘 필자의 가슴 한 구석에는 '왜 우리는 국가전복세력으로 내몰렸을까?'라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답이 10년 만에 나타났다. 바로 안기부 도청팀인 미림팀의 부활이었다.

미림팀을 운영하며 온갖 불법도청을 일삼고 있던 김영삼 정부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등장한 한국통신 민주노조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민주노조 출범을 계기로 한국통신 노동자들이 사내 비리에 대한 양심적 내부 고발은 물론 안기부의 불법도청 등에 대한 구체적 제보가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미림팀이 재가동된 94년 6월은 시기적으로 한국통신 노조에 민주집행부가 출범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미림팀이 불법도청팀을 재가동하기 시작할 때, 한국통신 내에서는 새롭게 출범한 민주노조가 통신 주권과 공공성을 강조하며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하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로서는 핵심 지도부들의 '통신 공공성'에 대한 강조는 불법도청 공화국에 대한 전복의지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적 일치야말로 바로 YS가 한국통신 노조를 터무니 없게 국가전복세력으로 몰아붙인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불법도청공화국의 전복세력이었다"**

검찰 수사로 넘어간 삼성 X파일 사건은 엉뚱하게도 'KT의 불법도청 협력사건'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질의 희생자는 불법도청의 협력자로 둔갑되어 있는 KT 노동자들이다. 제2의 한통사태라는 느낌마저 든다.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던 검찰이 삼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만한 KT 노동자들의 떡값을 문제 삼고 있는 셈이다.

10년 전, 검찰은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면서 "법 앞에 성역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0년 전 당신들이 우리 한국통신 노동자들을 구속시키며 했던 그 말을 이제는 삼성 관계자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10년 '국가전복세력'이라는 말만 생각하면 커다란 바위가 가슴을 내리 누르는 듯 답답했다. 그 의문은 이제 10년 만에 풀렸다. 그러나 10년째 지속되는 해고 생활은 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억울해 하지 않기로 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련다. 그렇다. 우리 한국통신 노조는 국가전복세력이다. 불법도청공화국의 전복세력이었다.

검찰이여, 이제는 그대들이 국가전복세력이 되어다오. 삼성공화국의 전복세력 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