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주민들의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이 한국 사회에 던진 의미는 무엇인가? 1년5개월에 걸친 촛불집회, 2ㆍ14 자치 주민투표, 등교거부와 대안학교, 삼보일배, 5천명이 넘는 주민들의 상경집회 등 1년 6개월 동안 끊임없이 주목을 받으며 마침내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핵폐기물처리장 정책에 쐐기를 박은 부안 주민의 투쟁이 갖는 의미를 짚는 자리가 마련됐다.
***"'자치'가 뭔지 보여준 2ㆍ14 주민투표,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건"**
부안독립신문은 30일 오후 부안성당에서 1년6개월에 걸친 부안 주민의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을 정리하고 이후 전망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하승수 변호사는 '한국 사회에서 부안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발표문에서 "부안은 민주주의와 생명, 인권을 지향하는 전국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며 "지난 1년6개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쓴' 사건"이라고 역사적 의의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또 "특히 전체 주민의 72.04%가 참여해 91.83%가 핵폐기물처리장을 반대한 2ㆍ14 주민투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라며 "일본의 니아가타현 마키정의 경우에도 인구 규모가 부안에 비해 2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데도 2주일 동안 투표해 과반수에 못 미치는 투표율을 기록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민투표 과정에서 이루어진 주민들의 참여의 폭과 강도 역시 경이로운 수준이었다"며 "주민투표 과정은 '주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는 말 그대로의 '주민 자치'의 현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전환기 처한 시민운동에 새로운 충격이 된 부안"**
하승수 변호사는 "부안의 운동은 또 전환기에 처한 시민운동에 새로운 충격이 됐다"며 "현재 내ㆍ외부적으로 여러 가지 비판에 직면하고 있고, 새로운 방향 모색이 필요한 시민사회운동에 부안 주민이 보여준 모습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부안 주민들은 생명ㆍ평화ㆍ인권이라는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운동을 진행해 왔다"며 "이것은 지금까지 아래로부터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시민운동에게 큰 자극이 된다"고 짚었다.
그는 또 "부안 주민들은 운동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대안을 창출해 왔다"며 "현재 추진중인 태양광 발전소나, 부안독립신문, 영화제 등이 그 예"라고 지적했다. 운동 과정에서 에너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고, 언론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 대안 언론운동에 직접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부안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도 시민ㆍ사회단체가 자극 받아야 할 대목으로 지적됐다. 하 변호사는 "많은 시민ㆍ사회단체가 명망가, 전문가, 활동가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시민들의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반해, 부안에서는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운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안, 한국사회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길..."**
하승수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부안 주민들에게 세 가지 당부를 했다.
하 변호사는 "부안 주민들은 이번 일로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민주주의를 어느 누구에게 맡겨 버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부안 주민들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대표자가 되어도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자치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안 주민들은 핵폐기물처리장과 같은 국책 사업 유치를 거부했다"며 "이제 부안이 가진 농업, 어업, 문화, 관광 자원을 통해 부안만의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돌아오는 부안, 청소년들이 미래에 남고 싶은 부안을 만드는 것이 주민들의 책임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지금 대안언론, 대안문화 운동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지역운동, 지역 활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특히 그 과정에서 여성, 청소년, 장애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참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청소년들이 직접 부안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한다면 부안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안 에너지 독립운동으로 나아갈 기회"**
에너지대안센터 이필렬 대표도 "앞으로 부안에서는 어떤 운동이든 주목받을 만한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그 중에서도 에너지 전환 운동이 기대된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 대표는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을 하는 동안 부안에서는 원자력 발전, 더 나아가 현재의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며 "이제 부안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실천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에너지 전환 운동은 곧 '부안 에너지 독립운동'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며 "부안이 독일의 셰나우처럼 에너지 독립을 일궈내면 우리도 여기저기 자랑하고 알릴 만한 곳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셰나우는 인구 3천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10년쯤 전부터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셰나우 주민들이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받아다 판매하는 전기회사를 몰아내고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전기회사를 설립해 원자력이 섞이지 않는 전기를 마을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셰나우의 '에너지 독립운동'을 배우기 위해 독일 전역에서 이 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에너지 독립은 단순히 풍력이나 태양 에너지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한국전력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에너지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부안이 중앙의 에너지 권력에 종속돼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핵폐기물처리장을 부안에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당장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데 드는 2천만원이 부담이 된다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에너지 독립 지원기금'을 마련해 사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에너지 독립운동을 부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펼쳐나가 성공한다면 부안의 사례를 본받는 지역이 여기저기 퍼져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부안의 에너지 독립운동은 곧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부안이야말로 이러한 모범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알맞은 곳"이라고 전망했다.
***"김종규 군수에게 책임 물을 것" "'새로운 부안' 만들기 이미 시작됐다"**
이같은 당부에 대해 부안주민들은 강한 실천의지를 보였다.
김종성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부안 항쟁의 향후 진로'라는 발표문을 통해 "김종규 군수 등에게 부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묻고, 그 동안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와 함께 부안의 대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역 발전의 밑그림을 그리고, 대안 에너지 운동과 자치 운동의 실현을 위해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를 위해 현재의 대책위 구조를 읍ㆍ면 단위 지역에 힘을 실릴 수 있는 조직 형태로 전환하고 지역에서 일상적 생활 속에서 자치 운동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부안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의 모임과 조직을 활성화하고, 그 동안 부안 주민들과 함께 한 수많은 시민ㆍ사회단체와 함께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운동들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승수 변호사는 "부안이 한국 시민들의 희망으로 떠올라, 핵폐기물처리장으로 부안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던 권력자들에게 부안 주민들의 진정한 힘을 다시 보여주길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2005년 부안 주민들이 어떤 힘 있는 모습을 보여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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