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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北에서 온 영화감독 정성산을 아십니까?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25> 정성산 감독 인터뷰

***북한에서 온 영화감독 정성산을 아십니까?**

영화감독 정성산(35)의 인생유전을 듣고 있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95년 북한을 탈출, 남한 땅에서 보낸 지난 9년은 그에겐 또 다른 지옥의 체험기였다. 비교적 당성이 철저했던 북한의 영화학도가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 그는 이념의 장벽이 아니라 갖가지의 편견과 자본이라는 높디 높은 장벽을 넘어야 했다. 그는 북한에서 평양 연극영화대학을 나왔으며 구 소련 체제하였던 90년대 초반에는 모스크바 영화국립 대학에서 2년간 수학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영화 인텔리였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 홍콩을 전전하며 간신히 남한으로 넘어온 그를 기다리는 일이라곤 수원 미인촌에서의 호객꾼 노릇 같은 것이었다. 그 와중에 수능시험을 치러내고 동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해 드라마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를 거쳐 영화감독이 된 것은 차라리 한편의 드라마처럼 보일 정도다. 그는 최근 순제작비 15억원 규모의 휴먼 드라마 <빨간 산타>의 촬영을 끝마치고 현재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국가보 안법 개폐 논란,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 간첩혐의 덧씌우기 등으로 극단적인 이념 대립에 휩싸여 있는 지금, 한 탈북자 영화감독이 그려낸 우리의 영화세상은 그래 서 매우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 정성산 감독을 만나 그가 만든 영화, 또 그 영화 를 통해 궁극적으로 그가 꿈꾸고 있는 세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탈북, 그리고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문: 북한을 탈출했던 직접적인 동기는 무엇이었나?

정감독: 남한방송을 들었다는 이유로 체포됐던 일이 계기가 됐다. 정치범수용소로 가던 도중에 호송차가 사고로 구르는 바람에 탈출하게 됐다. 하지만 그 전부터 조짐은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학교를 다닐 때, 별다른 이유없이 보위부에 의해 평양으로 끌려왔다. 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소련 역시 붕괴 직전이었다. 당시 모스크바에서 유학중이던 북한 대학생들 10여명은 무조건 평양으로 압송됐다. 끌려 돌아와서는 조사를 받으면서 엄청 맞았다. 그때 일은 생각하기도 싫다. 아마도 그때부터 계속 요주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결국 탈출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문: 남한에 들어오기까지 경로는 어땠나?

정감독: 처음엔 중국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이후 약 6개월동안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홍콩을 오갔다. 밀입국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최종적으로는 홍콩을 거쳐 여기로 왔다. 그 기간에도 고생이 참 많았다. 한마디로 거지생활을 했다는 얘기다. 남한측 정보부 직원들에게 조금씩이나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남한으로 가는 것을 직접 도와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문: 남한으로 와서는 어떤 일들을 했나?

정감독: 탈북자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일정기간의 적응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정착금으로 천7백만원을 받고. 영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정부로부터 처음 알선받은 직장은 머리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센터에 서 일했고 결국은 수원 아리랑 미인촌이라는 곳에서 건달 형들과 일을 하기도 했다.

문: 미인촌에서?

정감독" 그래도 그때가 제일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때 만났던 건달 형들과의 인연 때문에 나중에 학교를 다닐 때는 서울 북창동에서 포장마차를 하기도 했다.

문: 그리고 학교를 갔군.

정감독: 그렇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도저히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영화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쉬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한마디로 별볼일 없었다. 남한에서 충분히 영화로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학과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수능이 문제였다. 가고싶었던 중앙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동국대도 떨어졌다. 하지만 북한에서 왔다는 것이 이때는 도움이 됐다. 동국대에 특례 입학을 했고 꿈에도 그리던 영화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한에서 영화감독이 된다는 건, 환상과도 같은 일이란 것을 곧 알게 됐다.

문: 데뷔작 <빨간 산타>를 만들기까지 어려웠던 시절 얘기는 그만하자. 이번에 만든 영화얘기를 듣고 싶다.

정감독: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이젠 정말 탈북자라는 소리를 듣는 게 지겹다. 그보다는 영화감독 소리를 듣고 싶다.

문: <빨간 산타>는 어떤 내용의 영화인가?

정감독: 북한에는 크리스마스가 없다는 것에 착안한 영화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요즘은 그런지 안그런지 모르겠지만, 남한에서 선물꾸러미가 매달린 애드벌룬을 띄운다. 휴전선 이북에서는 그 애드벌룬을 모두 총으로 쏴서 떨어뜨리고. 근데 하나가 남아서 백두산 기슭의 마을까지 간다. 양강도 보천보리마을이란 곳. 그곳 아이들이 선물꾸러미 안에 들어있는 산타 옷을 발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문: 그렇게도 탈북자 소리를 듣기 싫다고 하면서 북한의 실상 을 소재로 얘기를 만들었다. 이해가 안된다 .

정감독: 원래 난 자본주의적인 영화장르를 좋아한다. 스릴러 같은 거. 소위 할리우드 장르라고 하는 거, 얼마든지 만들 자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는 웬지 가슴에 울림 같은 걸 줬다. 원래 시작은 이번 영화의 제작자가 어느 날 전화를 해서 ‘북한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어요?’라는 질문을 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불현듯 크리스마스가 없는 북한의 아이들을 얘기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신 얘기도 일리가 있다. 어쩌면 내겐 지긋지긋한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이쪽에서 새로운 영화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번은 털고 가야 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가 꼭 넘어야 할 산이다.

문: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뭔가?

정감독: 산타란 건, 여기나 저기나, 사람들 마음 속에 있다는 것, 주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뭔가의 희망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문: 북한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 양쪽 모두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정감독: 오히려 난 그랬으면 좋겠다.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저것 봐라, 저기는 저런 동네다, 사람들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로 북한을 동정하는 사람들, 개방화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얘기할 것이다. 내 영화는 그 경계에 서있다.

문: 그런 당신이 서있는 위치는?

정감독: 나 역시 경계 인간이다. 다만 북한의 문제를 이념적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문: 이번 영화를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감독: 맞다. 그동안 영화판에서 나름대로 생존하려고 애썼다.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는 각색작업에 참여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제작 한달 전까지 내가 감독을 하기로 돼 있었던 영화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건 정말 편견이자 오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소재나 장르를 선택했어야 했다.

이 영화야말로 상업적인 영화다. 스타가 나오지 않고 메이저가 제작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즐길 만한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 그 자체야말로 남한식이다. 난 나대로, 정성산식의 영화를 만들 것이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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