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04 한국영화계 결산, '자본전' 본격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04 한국영화계 결산, '자본전' 본격화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24> 작가정신 유지가 관건

***CJ의 명암, 싸이더스의 변화, 튜브의 소생**

미국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알란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즈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익명의 제보자 '딥 쓰로우트(Deep Throat. 린다 러블리스가 주연을 맡았던 7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포르노그라피 제목)'로부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받는다. '딥 쓰로우트'는 이들 기자에게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으면 돈의 행방을 좇으라고 충고한다.

충무로의 '딥 쓰로우트'가 있다면 아마도 같은 얘기를 할 것이다. 한국의 영화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건 곧 충무로의 돈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또 누구에게 모아지고 있는지를 추적하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CJ의 빛과 그림자**

CJ는 올 한해 유난히 사업영역을 다각화하면서 국내시장에서의 패권을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말 대차대조표를 보면 결코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니다. 영화계 표현으로 '터진' 영화보다는 '깨진' 영화들이 더 많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올 한해동안 CJ가 배급한 영화는 총 32편. 그 가운데 한국영화는 17편이다. CJ의 올 한국영화들은 <말죽거리잔혹사>로 시작해서 <어깨동무> <맹부삼천지교> <라이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인어공주> <내 남자의 로맨스> <얼굴없는 미녀> <쓰리 몬스터> <슈퍼스타 감사용> <우리형> <S다이어리> <내 머리속의 지우개> <여선생 Vs. 여제자> <발레교습소> 그리고 지금의 <역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한국영화는 제목만으로 올 한해 CJ가 기복이 심했음을 보여 준다. 최근 상황만 보더라도 <S다이어리>와 <내 머리속의 지우개>로 벌어들인 수익은 <슈퍼스타 감사용>과 <발레교습소>의 손해를 메우는데 다 들어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외화 상황도 그리 좋지 못했는데 특히 수십억원을 들여 여름에 개봉했던 빈 디젤 주연의 <리딕>은 올 CJ 매출의 난조에 결정타를 먹인 작품이다.

거기에 비한다면 작금의 CJ가 보여주고 있는 해외시장에서의 행보는 이 기업이 향후 무엇을 지향하고 또 어디서 좀더 큰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CJ는 지난 2001년 <무사>를 제작하고 할리우드 드림웍스 작품인 <치킨 런> 배급을 전후해 중국시장을 계속 다져왔다. 궁극적으로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시장에 극장설립 및 직접배급 등을 겨냥하고 있다. 전지현 주연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경우 홍콩의 메이저급 투자자이자 프로듀서인 빌 콩의 자본을 끌어 들여 국내시장보다는 철저하게 홍콩 및 중국, 동남아 시장을 먼저 고려해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일본시장 역시 그간 CJ의 주요 공략 대상이었으며 그 성과가 최근들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가가필름에 지난 10월 한국영화 최고가인 270만달러에 판매된 것이야말로 주요 성과로 꼽힌다. 최근 개봉된 <역도산>은 일본 올 로케로 촬영됐으며 대사의 98%가 일본어로 돼있어 일본에서의 반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이미 일본에 25억원에 팔린 상태다. 향후 CJ의 일본 파트너는 가가필름과 함께 신흥 메이저인 카도카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카도카와는 최근 CJ가 지분을 갖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사 드림웍스에 1억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CJ의 한 관계자는 "최근들어 CJ에 대해 영화계내 일부에서 시장을 지나치게 독점한다는 비난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우리의 승부처는 해외시장이지 국내가 아니다"라고 자신들의 사업방향을 강조했다. CJ가 해외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는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등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AWSJ는 최근 보도에서 CJ가 한국 영화사업에 있어 투자 전망이 가장 밝은 회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해외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와 함께 최근 보여지고 있는 CJ의 사업적 관심 영역은 거의 전방위적 수준이다. 함께 운영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체인망인 CGV는 전국 극장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겠다는 듯 전국적인 사업망을 대폭 확장하고 있다. 최근 첨단 설비를 자랑하는 용산CGV를 120억원을 들여 신축했는가 하면 멀티플렉스의 불모지인 광주에도 10개관짜리 극장을 만들어 호남권 시장의 선점에 나섰는가 하면 압구정동 시네플러스 등 군소 극장까지 인수해 전국 극장지도를 새롭게 작성하고 있다.

CJ는 심지어 자신들의 잠재적 비판세력일 수 있는 독립영화계도 품안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독립영화제를 전폭 지원하는 가 하면 아예 CJ 인디영화제를 새로 개막시킴으로써 대기업과 독립영화계가 상생과 공생의 구도를 꾸려 갈 수 있음을 과시했다. 한편으로는 노골적인 수직계열화를 구상한다며 거대 독점의 폐해를 우려하고 있는 잠재적 비판세력의 목소리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싸이더스를 두고 떠도는 소문**

연말 국내 영화계를 강타한 '소문'은 오랜 기간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히트작을 연속해서 제조해 왔던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와 프로듀서인 노종윤 제작이사와 관련된 것이다. 두 사람은 가깝게는 지난 해의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그리고 최근의 <역도산>까지 자칫 침체기에 빠질 뻔한 국내 영화계에 신선한 활력소를 불어 넣어 온 주인공들이다.

현재까지 이 소문의 진위 여부는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그 같은 얘기만으로도 충무로가 술렁인다는 것은 그만큼 두 사람이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투자와 배급중심, 곧 자본중심으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줄기는 역시 어떤 컨텐츠를 만들고 또 누가 만드느냐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컨텐츠 파워는 이른바 쓰리 메이저 혹은 3룡이라 불리는 CJ와 쇼박스, 롯데시네마 모두 탐내고 있을 정도다. 영화계에서는 싸이더스는가 향후 CJ엔터테인먼트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CJ가 막강한 원군을 얻게 된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어쨌든 차승재-노종윤은 영화계내에서 사람관리와 자금투자관리에 대한 역할 분담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거론돼 왔으며 결국 이들이 소문대로 결별을 하더라도 두 사람 모두 국내 영화사업에 지속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예상되는 싸이더스와 CJ의 파트너십 구축은, 싸이더스-쇼박스 혹은 싸이더스-롯데시네마라는 모델과는 질적으로 다른 파장을 2005년의 영화계에 던져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범의 소생, 한맥의 생존전략**

3,4년전까지만 해도 국내 투자배급사 빅3 가운데 하나로 분류됐던 튜브엔터테인먼트와 김승범 대표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츄럴 시티> <튜브> 등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이은 실패로 회생불가능한 지점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하지만 파이낸싱의 귀재라는 칭호에 걸맞게 김승범 역시 자신의 회사를 바이오업체인 엔바이오테크에 매각함으로써 향후 새로운 영화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끔 크게 한숨 돌리게 됐다. 튜브엔터테인먼트는 올 한해 <가족>을 성공시켰으나 전작들의 막대한 채무문제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실미도> <시실리 2Km> 등을 만들었던 중견제작사 한맥이 통신장비업체인 케이앤컴퍼니에 팔린 것도 이제 국내 영화사업이라고 하는 것이 일군의 영화전문가들의 머리와 열정만으로는 진행될 수 없는 '리바이어던'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철저하게 합을 맞추는 경영구조 및 자본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작품 한편 한편의 성공만으로는 중장기적 플랜의 영화제작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익명조합'이라는 '영리한' 형태로 일반 개미군단의 투자금 약 20억원을 모금한 강제규명필름은 튜브와 한맥 이전에 이미 수공구업체인 버팔로와의 합병을 통해 예상된 영화제작의 자금난을 뚫고 나간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올 한해 국내 영화계는 내부적으로 심각한 조정기를 거친 셈이 됐다. 2005년, 더 나아가 향후 10년의 국내 영화계는 누가 조직적 자본을 더 확실하게 등에 업고 가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그런 상황속에서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유지해 내느냐다. 과연 그게 가능할 것이냐는 한숨이 영화계 한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ohdjin@hotmail.com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