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미국 콜럼비아대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 HHMI)의 리처드 액설(Richard Axel) 박사와 워싱턴대학 부설 프레드허친슨암연구센터(Fred Hutchinson Cancer Research Center)의 린다 벅(Linda B. Buck) 박사를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인간의 후각의 매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후각, 가장 원시적인 감각**
이들의 수상은 여러모로 흥미를 끕니다. 근래 들어 노벨 생리의학상이 의학이나 생물학 분야의 획기적인 발견이나 새로운 발명에 주로 무게를 두었던 것과는 달리,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생체 시스템을 밝힌 이에게 돌아갔으니까요. 게다가 후각이라는 것은 다른 감각보다 더 원시적이고도 매력적인 존재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거든요.
우리는 흔히 후각을 가장 원시적인 감각이라고 부릅니다. 이 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 가장 발달해 있는 감각이며, 가장 하등한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 감각이라는 뜻에서지요. '냄새를 맡는다'라는 행위는, 어떤 물질의 분자가 확산되었을 때 이를 인식하고 구별하는 반응입니다. 인간의 신생아는 시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데다가 심한 근시여서, 30cm 이상 떨어진 물체는 구별하지 못한다고 해요. 흔히 아기가 태어난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눈을 맞춘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 것은 그 시기가 되어서야 눈의 초점을 제대로 맞춰서 사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생후 6개월은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장님에 가깝게 태어나는 아기도 후각만큼은 매우 예민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아기는 냄새를 통해 엄마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낯선 이를 알아챌 수 있답니다. 쥐를 이용한 실험 결과, 임신한 쥐의 양수에 주사기로 사과주스를 섞어 주었을 경우, 태어난 쥐는 사과주스 냄새를 매우 좋아한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로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냄새를 구별하는 능력은 발달해 있답니다.
또한 가장 하등한 생물체인 박테리아조차도 특정한 화학물질을 구별하여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짚신벌레는 진한 식염수를 떨어뜨리면 피하고, 묽은 아세트산 쪽으로는 몰려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짚신벌레가 식염수와 아세트산 용액 속에 든 분자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후각기관을 사용해 냄새를 구별하는 고등동물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띄지만, 기본적으로 화학분자를 인식해 구별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미생물의 화학물질에 대한 이런 반응을 주화성(chemotaxis)라고 하는데, 세포 하나에 불과한 단세포 생물조차도 냄새를 맡을 수 있기에-화학물질을 구별할 수 있어- 후각은 가장 원시적인 감각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 오랜 세월의 베일을 벗기다**
액설 박사와 벅 박사는 오랫동안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감성과 정서의 영역에 있던 후각이라는 감각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낸 사람들입니다. 냄새란 앞에서도 말했듯이 휘발성이 있는 화학 분자들이 공기를 타고 떠다니다가 호흡기로 들어오면, 코 안쪽의 점막에 있는 후각 수용기들을 자극해서, 이 자극들을 인식한 후각 수용체들이 뇌의 후각영역에 있는 후각 망울에 신호를 전달해 그 종류를 구별하는 과정입니다.
인간의 경우 코 점막에는 약 1천 종류의 유전자에 의해 형성된 후각수용체들이 5백만 개 정도 존재합니다. 액설 박사와 벅 박사는 인간에게 1천 가지 종류의 후각수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1종류의 후각수용체각 각각 2-3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어 1991년 저명한 과학잡지 '셀(Cell)'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논문 원제: A Novel Multigene Family May Encode Odorant Receptors: A Molecular Basis for Odor Recognition, Linda Buck and Richard Axel, Cell, Vol 65, 175-187, 5 April 1991, http://www.cell.com/content/article/fulltext?uid=PIIS0092867491020019)
생명체에게 있어서 냄새를 인지한다는 것은 결국 각종 화학물질들은 인식하고 구별할 줄 안다는 것으로 이는 생존, 특히 섭취 가능한 먹이를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점에서 후각과 미각은 기본적으로는 같은 개념입니다. 미각은 고등동물들에게 나타나는 감각이기 때문에, 하등동물의 경우 화학물질을 인식하는 능력을 후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래 그림을 참조해서 인간의 후각 매커니즘을 살펴보면, 인간의 코 안쪽 점막에는 1천 가지 종류의 후각 수용체가 약 5백만 개 정도 퍼져 있습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던 화학물질들이 인간의 들숨을 타고 코 안으로 들어오면 후각 수용체에 달라붙게 됩니다. 이때 화학물질과 수용체 사이는 마치 열쇠와 자물쇠 구조와 같아서 어떤 화학물질이 어떤 수용체에 달라붙을지는 그 화학물질과 수용체의 구조(예를 들어 ★ 모양의 화학물질은 ☆모양의 구멍이 뚫린 수용체에만 달라붙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에 달려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화학물질이 특정한 수용체에 달라붙게 되면, 후각수용체는 활성화되어 후구(olfactory bulb)에 신호를 전달하게 됩니다. 후기는 대뇌의 앞쪽 아랫부분에 위치하는 납작한 타원체 모양의 기관입니다. 인간의 경우 길이 약 11mm 정도로 전체 뇌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적지만, 쥐 등의 하등동물의 경우 이 후구 부분이 상당히 발달해 있답니다. 이 후구는 여러 개의 층상구조로 되어 있는데, 후각 수용체에서 온 신호는 후구의 사구체(glomerulus)부분으로 모여서 다시 대뇌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대뇌에서 이 신호를 받아 냄새를 인식하고 어떤 냄새인지 구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위의 두 박사는 이 과정의 매커니즘을 규명하고, 인간의 유전자를 조사해 인간에게는 약 1천여 개의 후각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1천 가지 종류의 후각 수용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약 3천~1만 가지) 종류의 냄새를 인식할 수 있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후각 유전자는 1개가 2~3가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예를 들면 □ 모양의 구멍 안에, ■ 모양 뿐 아니라, ▤, ▥, ▨ 모양도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2~3개의 후각 유전자가 연합한 것은 또다른 냄새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에 유전자의 종류보다 훨씬 더 많은 냄새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리차드 액설 박사와 린다 벅 박사는 평생을 이 연구를 위해 바쳤으며, 삶의 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후각의 매커니즘을 밝혀 취맹(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노벨상 위원회는 그들에게 기꺼이 노벨상의 영예를 안긴 것입니다.
인간이 두 발로 서서 걷게 되면서, 코가 땅 위에서 떨어진 만큼 인간의 후각도 쇠퇴했습니다. 이후에 연구된 바에 따르면, 이 1천개의 후각 유전자 중 실제로 기능하는 것은 3백75개 정도이며, 나머지는 기능이 퇴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은 시각이 매우 발달하면서 많은 정보를 시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후각의 기능이 퇴화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후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뭔가 좋지 않은 냄새-음식물 쓰레기나 곰팡내 등-가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고 집중할 수 없는 경험들은 해보았을 거예요. 그리고 요즘 들어 후각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뿐, 우리 삶의 많은 것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답니다.
***잊었던 감각을 찾아서**
지난 2002년 초, 과학 전문 저널 '네이처 지네틱스(Nature Genetics)'에 실린 마사 매클린톡(Matha K. McClintock)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사람들이 이성에게 끌리는 데는 후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동물의 경우에는 서로의 냄새에 취해서 짝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죠.
대부분의 동물들이 짝짓기 철이 되면 암컷들에게서는 독특한 냄새가 나서 수컷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애걸하게 만들곤 합니다. 숫나방의 경우, 수㎞밖에서도 암컷이 내뿜는 페로몬 (pheromone)인 봄비콜(bombykol)의 냄새를 맡고는 암컷을 찾아낼 정도로 냄새의 효과는 강력합니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사향(머스크향)을 쓴 것도 이에 착안한 것인데, 좀더 근본적으로 인간에게도 일종의 페로몬이 방출되어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매클린톡 박사의 연구는 이런 가설을 증명한 셈이지요.
사람에게는 개인마다 독특한 체취가 있답니다. 우리가 흔히 '살 냄새'라고 부르는 묘한 냄새 인데요, 이 냄새는 우리 몸의 면역 세포에 존재하는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라는 물질 때문에 나는 것으로 개인마다 다른 냄새를 내게 한답니다. (물론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서 냄새만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만 말입니다.)
매클린톡 박사는 서로 다른 MHC 타입을 가진 남성 6명에게 48시간 동안 같은 셔츠를 입혀서 그들의 체취가 셔츠에 흠뻑 배게 하고는 미혼 여성들에게 이 셔츠의 냄새를 맡게 하여 가장 끌리는 냄새가 어떤 것인지 점수를 매기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여성들은 유전적 특성, 즉 MHC 타입에 따라서 서로 다른 냄새를 좋아했다고 해요. 재미있게도 여성 자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냄새는 자신의 아버지의 MHC 타입과 비슷한 남성이었답니다.
매클린톡 박사는 논문에서 여성들은 처음 만난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체취를 가졌을 때 가장 강하게 끌린다고 조심스레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우리가 어떤 이를 처음 만났음에도 낯설지 않게 인식하고, 그에게 끌리는 이유가 우리의 유전자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후각이 아직도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 셈이지요.
***냄새의 현대적 변신, 전자코**
이런 다소 로맨틱한 실험 외에도 현대과학에서 후각은 나름대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답니다. 고전 탐정 소설을 보면, 개에게 범인이 범죄 현장에 떨어뜨린 유류품의 냄새를 맡게 하여 범인을 추적하게 하는 장면이 나오곤 하지요. 위에서 얘기했듯이 개의 후각은 매우 민감해서 지금도 많은 개들이 마약 탐지, 인명 구조, 지뢰 정찰, 질병 진단 등의 임무에 그 훌륭한 코를 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들의 뛰어난 후각을 모방하여 개발되고 있는 분야가 전자코 (electronic nose)에 대한 연구랍니다.
전자코는 특정 냄새를 갖는 화학물질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센서입니다. 전자코는 원래 군사적인 목적에서 개발이 진행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난 2001년 개발된 미국 노매딕스 (Nomadics)社의 지뢰 탐지용 전자 코 피도(Fido)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피도는 1997년부터 미국 국방부가 25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하여 만들어낸 전자코로써, 지뢰를 구성하는 화약의 냄새를 인식하여 지뢰탐지에 뛰어난 효과를 보입니다. 즉 지뢰를 제거하기 위한 활동 중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희생을 덜어주는데 냄새가 단단히 한 몫 하는 셈이지요.
또한 요즘 들어 전자코는 군사 영역 뿐 아니라 의학 쪽으로도 발을 넓혀, 진단 의학 분야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만으로 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숨결 속에 묻어나오는 냄새만 맡아도 무슨 질병인지 진단할 수 있다고 충고합니다. 예를 들어 만성 축농증 환자는 치즈 냄새, 당뇨병 환자는 연한 아세톤 냄새나 과일 냄새, 신장병이 있는 사람은 소변 냄새, 간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썩은 달걀 냄새가 나는 등 나름대로의 독특한 냄새가 나서 병을 진단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해요.
이보다 조금 업그레이드된 진단의학용 전자코는 이보다 훨씬 더 민감한 것으로 보통 사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냄새를 맡아서 질병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영국 과학 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www.newscientist.com)'에 실린 카라도 디 나탈레(Carrado Di Natale)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소리 없는 살인자 암의 진단에도 전자코가 유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디 나탈레 박사는 폐암환자의 숨결에 섞여 나오는 독특한 알케인과 벤젠 유도체를 인식할 수 있어 복잡하고 번거로운 폐조직 생검(조직 샘플을 직접 채취하여 검사하는 것)을 하지 않고도 폐암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전자코의 효용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세계, 그러나 다시 찾아가는 세계**
후각은 지금껏 원시적인 감각, 관능적이고 감정적인 감각으로 치부되어 이성적이고 정돈된 현대 과학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경우 오랜 세울 진화하는 과정을 거쳐 후각이 많이 퇴화되었기에 더욱 그랬었죠. 그러나 후각은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 결코 잃어버린 감각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들어 웰빙 문화의 확산과 함께 유행하는 온갖 종류의 아로마 요법들을 보면, 이제 우리는 잊고 있었던 냄새와 후각의 파워를 다시금 실감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첨단의학과 군사학 분야에서 활용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고요.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숨어 있는 존재가 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뭐냐고요? 글쎄요, 모든 가능성은 찾는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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