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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조선일보 '전향 왜곡보도' 맹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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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조선일보 '전향 왜곡보도' 맹성토

"조선일보여, 취재나 하고 써라" "뉴욕은 용광로 아닌 악의 꽃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8일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이 "과거에는 모스크바가 진보의 표상이었다면 지금은 뉴욕"이라며 "내게 뉴욕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이 없고 다수와 소수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라며 사실상 전향 선언을 한 것처럼 대서특필한 데 대해, 박노해 시인이 강력항의하자 9일 박시인의 반론문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2면 하단에 '반론 보도문'을 통해 박노해 시인이 "내 진보(進步)의 표상은 모스크바 아닌 뉴욕", "내게 뉴욕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이 없고 다수와 소수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라고 보도된 것은 공식 인터뷰가 아니며 발언의 취지도 "뉴욕이 누리는 진보적 상상력과 창조력, 자유의 공기는 인류가 창출한 부의 독점과 유일제국의 특권 위에서 피어나는 악의 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밝혀왔다고 짧막하게 1단기사로 처리했다.

그러나 박노해 시인이 문제 기사를 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에게 보낸 글은 훨씬 상세하고 신랄했다.

***박노해 "조선일보여, 나는 4년째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본지가 10일 입수한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께'라는 글에 따르면, 박 시인은 4년째 '사회적 묵언(默言)' 중이기에 어느 언론과 인터뷰하거나 기고나 대담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조선일보 기사는 인터뷰나 정식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언론의 상식을 깨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이다.

박 시인은 구체적으로 글 말미의 <정정보도요청>을 통해 "박노해 시인이나 나눔문화에 아무런 사실확인이나 취재도 없이 기사를 작성하여 박 시인의 명예를 손상한 점에 대해 사과하여 이에 정정보도한다"라고 정정보도를 낼 것을 조선일보에 요청했으나, 조선일보에 의해 묵살당했다.

***"조선일보여, 뉴욕은 용광로가 아니라 악의 꽃이다"**

박 시인은 또 조선일보가 "과거에는 모스크바가 진보의 표상이었다면 지금은 뉴욕"이라고 자신이 말했다고 보도해 마치 자신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향한 것처럼 보도한 것과 관련해서도, 악의적 사실 왜곡이라고 신랄히 비판했다.

박 시인은 글에서 "뉴욕이 누리는 진보적 상상력과 창조력, 자유의 공기는 실상 인류가 창출한 부의 독점과 유일제국의 특권 위에서 피어나는 '악의 꽃'일 수밖에 없다"고 미국의 제국주의성을 비판한 뒤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타자의 그것을 딛고 서 있다면, 설령 천국일지라도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나에게 뉴욕은 거대한 도전이자 극복의 대상이지 (조선일보가 보도했듯) 연금술을 부리는 '용광로'가 아닌 것"이라며 "9.11 사태후 뉴욕은 더욱더 그러하다"고 못박았다.

한마디로 말해, 박노해 시인은 최근 <뉴 라이트> 시리즈 등을 통해 과거 진보진영의 다수가 우익으로 '전향'하고 있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사실을 왜곡보도하고 있는 조선일보에 대해 따가운 일침을 가한 것이다. 요컨대 '좌' 아니면 '우'라는 식의 냉전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조선일보의 구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다름아니다.

한편 박노해 시인측은 본지의 취재요청에 대해 "내년 1월까지 사회적 묵언을 계속할 것"이라며, 사회적 묵언이 끝난 뒤 자신의 생각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9일자 박노해 시인이 조선일보에 보낸 '원문' 전문과, 조선일보 8일자 보도 전문이다. 편집자주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께**

안녕하세요. 박노해 시인입니다. 이한우 기자께서 쓴 기사중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있어 정정보도를 요청합니다. 조선일보 2004년 12월8일 수요일 A5면, '갈라서는 386운동권 특집<下>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386' 기사의 굵은 표제가 <"내 진보의 표상은 모스크바 아닌 뉴욕" 박노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박노해 시인은 주위에 "나는 변함없이 진보를 지향한다. 다만 진보의 내용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모스크바가 진보의 표상이었다면 지금은 뉴욕"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씨는 "내게 뉴욕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이 없고 다수와 소수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저는 위의 기사에 나온 말을 어디에서도 한 적이 없고 그런 글을 어디에도 쓴 적이 없습니다. 이 기사는 제 기본철학과 생각과도 다릅니다. 따라서 이 사실(fact)을 정정보도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4년째 사회적 묵언 중이기에 어느 언론과 인터뷰하거나 기고나 대담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04년 미-이라크 전쟁 직전에 '전쟁을 막지 못한다면 폭격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라크 아이들 곁에라도 함께 있어 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2달간 전쟁의 바그다드를 헤밀 때, 그곳에 온 국내 TV와 언론에 뜻하지 않게 잠시 비춘 적이 있고, 최근 <노동의 새벽> 20주년을 맞아 불가피하게 그 사안에 한정해서 카메라에 찍힌 적이 있을 뿐입니다.

이한우 기자의 기사는 오랜 묵언속에 힘들게 '새로운 진보의 길찾기'를 하고 있는 저의 진정을 왜곡하는 것이며 제가 조용히 참여하고 있는 나눔문화의 철학과도 크게 달라 신뢰와 명예를 떨어뜨린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지난시대 군사독재 하에서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폭압상황이었지요. 노동자들은 무권리와 사회적 천대 속에 인간의 존엄을 훼손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인간다운 삶을 몸부림하던 우리는 '노동해방'과 '사회주의'라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확고히 서는 것이 진보의 내용 거의 전부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구속된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노동운동의 자유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동시에 노동자계급 내부가 '빈곤과 차별'로 분화되고, 시민사회와 세계화, 정보화 물결과 지식경제시대가 도래하면서 진보의 내용도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해방, 노동해방은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면서도 생태문제와 여성문제, 전지구적 빈곤과 문화다양성, 그리고 소수자의 고통과 영성의 문제, 한정된 생명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경영마인드까지를 포괄한 '삶의 총체적 진보'로 구성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4가지 위기인 <생태위기><전쟁과 테러위기><새로운 빈부격차><영혼의 불안>이라는 우리시대 삶의 핵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 수 있는 대안 삶의 창출이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그 길은 '모스크바'도 아니고 '귀농공동체'도 아니고 '뉴욕'도 '파리'도 아닙니다.

조선일보의 기사중 뉴욕에 대해 제가 말했다고 쓴 내용은 그런 사실 자체도 없을뿐만 아니라 제생각과도 전혀 다릅니다. 제가 2차례 취재한 바 있는 뉴욕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가장 발달한 세계 최첨단의 도시로서, 극명한 빛과 그늘을 동시에 가진 모순의 도시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와 극빈자가 공존하고, 졸부와 예술이 공존하고, 이민자와 다인종이 무지개처럼 다양하게 공존하는가 하면, '할렘가'로 나타나는 인종차별과 빈부격차가 확연한 도시입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고 네 멋대로 하라'는 뉴요커의 금언처럼 개인성과 자기 정체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자유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단, 영어가 되고 건강이 되고 돈만 있다면!이라는 냉혹한 법칙이 작동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뉴욕이 누리는 진보적 상상력과 창조력, 자유의 공기는 실상 인류가 창출한 부의 독점과 유일제국의 특권 위에서 피어나는 '악의 꽃'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타자의 그것을 딛고 서 있다면, 설령 천국일지라도 지옥으로 가는 길이겠지요.

그럼에도 뉴욕은 현대인의 욕망의 정점이자 물질문명의 첨단이고 문화예술의 전위이기에, 그것을 정면으로 넘어서고 인간화시켜 나가지 못하는 '대안'은 실효성이 약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뉴욕이 가진 문화다양성과 진취적 역동성을 품고 동시에 뉴욕을 뚫고 나가는 내공력(內功力)이 없는 대안 삶이란 진정한 대안일 수 없기에, 저는 온갖 오해와 논란을 무릅쓰고 나눔문화와 함께 '삶의 총체적 진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혁명이라는 전혀 낯선 진리실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뉴욕은 거대한 도전이자 극복의 대상이지 연금술을 부리는 '용광로'가 아닌 것입니다. 9.11 사태후 뉴욕은 더욱더 그러합니다.

따라서 저의 진정성과 나눔문화의 신뢰와 명예에 손상을 준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기사에 대해 사실을 바로잡는 정정보도를 실어줄 것을 요청 드립니다.

<정정보도요청>

1. 2004년 12월8일자 조선일보는 박노해 "내 진보(進步)의 표상은 모스크바 아닌 뉴욕", "과거에는 모스크바가 진보의 표상이었다면 지금은 뉴욕", 박씨는"내게 뉴욕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이 없고 다수와 소수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2. 그러나 박노해 시인은 그런 말을 하거나 글을 쓴 적이 없고, 더욱이 박시인은 뉴욕을 물질문명의 정점에 서있는 '악의 꽃'이자 강자와 약자의 차별이 확연한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기에 정정보도를 요청해 왔습니다. 본지는 박노해 시인이나 나눔문화에 아무런 사실확인이나 취재도 없이 기사를 작성하여 박 시인의 명예를 손상한 점에 대해 사과하여 이에 정정보도합니다.

***[갈라서는 386 운동권];<下>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386;박노해"내 進步의 표상은 모스크바 아닌 뉴욕"**

386운동권의 주류는 상당수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시민운동권으로 갔다. 당시의 지하 비주류들은 여전히 좌파를 자처하며 제도권 소수파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 중 어디에도 동의하지 않는 386운동권 출신들도 많다. 이들은 각자 자기 분야를 개척하며 과거 생각을 정리해왔지만 기존 정당이나 뉴라이트 운동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사람들 중 한 명이 198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정우(李政祐) 변호사다. 그는 386세대엔 널리 알려진 80년대 당시 운동권 스타 출신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변호사는 지금 20대에서 50대를 아우르는 통(通)세대 결사체 '국민원탁회의'(가칭)를 내년 봄까지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200여명으로 구상하고 있는 '국민원탁회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80년대 세대(나이로는 30~40대)가 늘어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과 경제·통상 등에 경험과 안목을 갖고 있는 40대 초반의 인물들이 주축을 이룰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뛰어들 가능성도 굳이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우리도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됐는데, 출발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사노맹(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연맹)'의 양대 축인 박노해 시인과 백태웅(白泰雄) 교수(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국제인권법)는 이 변호사와는 다른 방향을 모색 중이다. '노동의 새벽'의 시인 박씨는 '나눔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변호사가 '좌우를 뛰어넘는' 한국판 제3의 길을 모색 중이라면 박 시인은 좌우를 아우르는 일종의 새문명운동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나눔문화' 이사진에는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박래군 전 행자부 정책보좌관, 이승재 엘제이필름 대표, 이윤호 초암 C&C대표, 아트디렉터 홍동원씨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386세대이긴 하지만 운동권과 거리가 멀다.

박노해 시인은 주위에 "나는 변함없이 진보를 지향한다. 다만 진보의 내용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모스크바가 진보의 표상이었다면 지금은 뉴욕"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씨는 "내게 뉴욕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이 없고 다수와 소수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7년 가까운 수감생활을 마치고 1999년 석방된 후 미국 유학을 거쳐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백태웅 교수는 지난 6월 일시 귀국했을 때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외국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할 경우 시민운동이나 정치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많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이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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