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김근태 장관이 청와대와 재정경제부가 강행하려는 국민연금 동원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어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경부, 그림자 역할로 돌아가라"**
김근태 장관은 19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팝업창 형식으로 띄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노무현대통령과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연일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 방어 및 경기부양을 위해 증시 및 부동산투자에 국민연금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데 대해 주무장관으로서 수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글에서 "경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판 뉴딜정책, 경기종합투자계획 같은 방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재경부의 고민에 대한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하지만 국민연금은 좀 특수하다. 국민연금은 5천만 국민의 땀의 결정체다. 국민 여러분께서 땀 흘려서 알토란처럼 적금을 넣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더구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후일을 대비하여 곡식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국민 여러분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그 용처에 대해서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국민연금 동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이어 "그동안 국민연금의 운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부처간 다툼으로 비추어질 여지가 있어 참고 참았지만, 경제부처가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제부처는 국민연금의 운용에 대해 조용히 조언하는 것에서 그쳐야 한다. 경제부처가 그 용처에 대해 앞서서 주장하면 '내가 낸 돈을 정부 마음대로 하는 것 아냐, 그래서 결국 원금도 못 받는 것 아냐'하는 의구심과 불신이 증폭된다. 신뢰가 훼손된다. 결국 이러한 의구심과 불신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이제라도 경제부처는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드록 뒤에서 조언하는 그림자 역할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재경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노대통령 주장에도 정면 반박**
김 장관은 또 글에서 "적대적 M&A 막아야 한다. 새로운 투자처, 개발해야 한다. 국민경제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당연하다. 국민연금을 매월 꼬박꼬박 납부해왔던 우리 국민들에게 그만한 애국심은 당연히 있다"고 말하면서도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민연금 동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우회적으로 노무현대통령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을 가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3일 미국 LA에서 교포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1백조 정도 연금기금이 있는데 이 돈이 묶여 있으면 결국 경제법칙에 의하면 수요를 줄이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쓰자는 게 아니고 우선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거 풀지 않으면 경제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또 이날 "뉴딜적 경기 부양-투자 얘기하는데 한국이 지금 소득은 1만2천불 있지만 축적이 적다. 잘 살고 세금 많이 거둔 적이 오래되지 않아 사회간접자본이 약하다. 연기금 투자를 좀 해주면 정부가 사회간접자본을 빨리 확충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콩 볶아 먹다 가마솥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김 장관은 또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연금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보건복지부는 연금운용의 기본원칙, 즉 안정성, 수익성, 공공성의 3대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겠다. 이 3대 기본원칙의 순서를 정한다면 당연히 안정성이 최우선이다"라고 복지부 입장을 밝힌 뒤, "대형 SOC투자 등 사회적 논란이 많은 투자일수록 3대 기본원칙을 충실히 견지하겠다"고 덧붙여, 국민연금을 공공건설에 동원하려는 재경부 구상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이어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민 여러분의 염려와 고민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말해, 국민연금 운용과정에 외압이 작용하지 않도록 기금운용위원회를 적극 보호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김 장관은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어떤 경우에도 국민 여러분의 심정적 동의를 거친 다음에 집행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혹시라도 국민 여러분께서 애써서 모아주신 국민연금이 어떻게 잘못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는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도록 해낼 생각이다. 정말로 하겠다. 과격한 말이어서 주저됩니다만 하늘이 두쪽이 나도 해내겠다"는 단호한 국민연금 방어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을 깨뜨린다'는 말이 있다. (이는) 애초의 취지에 맞지 않게 잘못 사용하면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라며 "국민연금이라는 가마솥이 국민 여러분의 노후를,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안정되게 만드는 기둥이 될 수 있도록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끝맺었다.
***"막말 하면 속이 후련하고 지지자들이 열성적으로 지지할지 모르나..."**
김 장관은 이에 앞서 18일 CBS 라디오 '뉴스레이다'와의 인터뷰에서도 국민연금 동원령에 강력 반대했다.
김 장관은 "경기 좀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판 뉴딜 정책, 종합투자계획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엄밀히 말씀드리면 그건 행정부 내에서 경제부처가 해야할 일이고, 사회부처 보건 복지부입장에서는 국민의 알토란 같이 땀흘려서 적금을 넣은 국민연금 분명하게 독립적으로 안정적으로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서 경기 개선하는 방향의 대책과 국민의 노후를 위한 적금통장이 안정적으로 또 수익성 높게 지켜질 수 있고 투자될 수 있다면 그것은 검토해볼 수 있겠다"면서도 "그러나 아직까지 최종 결정을 하는 기금운영위원회 공식적인 논의를 통해서 결정한 바 없다"고 거듭 반대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최근의 정국파행과 관련, "참으로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고 탄식한 뒤 "지금이야말로 정치인들과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 지도자들이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나 드리면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사람을 살린다는 우리 선조들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상호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일단 막말을 하면 속은 후련하고 지지자들이 열성적으로 지지할지 모르지만 그 외에는 체면이나 감정 때문에 국정의 합의나 타협은 불가능해진다. 나라를 흔들게 만든다"고 덧붙여, 정부와 여야의 극한대립을 강도높게 질타했다.
***재경부-청와대-우리당 모두 쇼크**
이같은 김 장관의 입장 천명은 보건복지부장관에 임명된 뒤 조심스런 행보로 일관해온 종전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어서, 정가와 관료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장관의 입장 천명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쪽은 직격탄을 맞은 재경부다. 지난 7일 당정청 회의에서 국민연금 동원을 골자로 하는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했다가 그후 언론과 야당, 전문가집단,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던 재경부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공식반대 천명으로 치명타를 맞은 양상이다.
재경부는 현재 김 장관 입장표명에 대한 반응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나,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 동원 계획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충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 장관의 반대로 국민연금 동원이 백지화될 경우 이를 주창해온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거취에까지 파장이 미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청와대도 당혹스러워 하기란 마찬가지다. 김 장관이 노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국민연금 동원의 불가피성은 노대통령이 그동안 여러차례 언급해온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차기대권주자로 분류되는 김 장관의 이같은 행보를 정치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움직임까지 감지될 정도로, 내심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장관의 친정인 열린우리당도 충격을 받기란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내에 적잖은 영향력이 있는 데다가 국민연금 주무장관인 김 장관이 이처럼 국민연금 동원령에 공식 반대입장을 천명함에 따라, 국민연금 동원에 필수불가결한 기금관리기본법의 연내 개정 처리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들이 한 목소리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마당에 주무장관까지 반대하고 나선 만큼 여당 단독처리 명분이 사라졌다.
이처럼 김 장관 발언이 던진 파장은 메가톤급이어서, 앞으로 일파만파의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음은 김근태 장관이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이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국민연금 운용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들이 있어 그 책임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몇 말씀 드립니다.
연기금 활용 문제를 둘러싸고 말이 많습니다. 말은 연기금으로 되고 있지만 국민 여러분께서 다 아시다시피 연기금의 거의 대부분은 국민연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대명제에 동의하면서도 국민연금이 어떻게 쌓인 돈인지를 아는지라 주무부처의 장으로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히 지난 시절 우리 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운영을 잘못한 관계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아직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금운용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흘러나와 국민 여러분들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아 정말 송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칼에 맞은 상처보다 말에 맞은 상처가 더 크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검토 차원에서 연금운용에 대해 언급된 것은 있지만 최종적인 것은 아직 없다는 점을 국민 여러분께 분명히 보고 드립니다. 어려운 경제상황에 염려가 크실 텐데, 이 문제 때문에 또다른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간곡한 마음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경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판 뉴딜정책, 경기종합투자계획 같은 방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실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로서는 당연히 경기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미 100조가 넘어섰고 멀지않은 미래에 수백조로 불어날 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해 경제부처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경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각종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경제부처의 고민은 이해할만 합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좀 특수합니다. 국민연금은 5천만 국민의 땀의 결정체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땀 흘려서 알토란처럼 적금을 넣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후일을 대비하여 곡식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국민 여러분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그 용처에 대해서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운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부처간 다툼으로 비추어질 여지가 있어 참고 참았지만, 경제부처가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대적 M&A 막아야 합니다. 새로운 투자처, 개발해야 합니다. 국민경제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국민연금을 매월 꼬박꼬박 납부해왔던 우리 국민들에게 그만한 애국심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부처는 국민연금의 운용에 대해 조용히 조언하는 것에서 그쳐야 합니다. 경제부처가 그 용처에 대해 앞서서 주장하면 '내가 낸 돈을 정부 마음대로 하는 것 아냐, 그래서 결국 원금도 못 받는 것 아냐'하는 의구심과 불신이 증폭됩니다. 신뢰가 훼손됩니다. 결국 이러한 의구심과 불신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경제부처는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드록 뒤에서 조언하는 그림자 역할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연금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보건복지부는 연금운용의 기본원칙, 즉 안정성, 수익성, 공공성의 3대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겠습니다. 이 3대 기본원칙의 순서를 정한다면 당연히 안정성이 최우선입니다. 안정성의 토대위에 공공성과 수익성을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복지부 역시 국채에 집중되어 있는 연금의 투자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 SOC투자 등 사회적 논란이 많은 투자일수록 3대 기본원칙을 충실히 견지하겠습니다.
또한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민 여러분의 염려와 고민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 여러분의 심정적 동의를 거친 다음에 집행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혹시라도 국민 여러분께서 애써서 모아주신 국민연금이 어떻게 잘못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는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도록 해낼 생각입니다. 정말로 하겠습니다. 과격한 말이어서 주저됩니다만 하늘이 두쪽이 나도 해내겠습니다.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을 깨뜨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애초의 취지에 맞지 않게 잘못 사용하면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국민연금이라는 가마솥이 국민 여러분의 노후를,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안정되게 만드는 기둥이 될 수 있도록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다짐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4.11.19
보건복지부장관 김근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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