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40원이 급락한 1천78.00원으로 개장해 1천80원이 깨진 데 이어 이날 오전 1천70원선까지 깨졌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시장 개입'을 구두경고했으나 별무효과였다. 가공스런 '달러 쇼크'의 도래다.
문제는 이같은 '달러 쇼크'가 이제 시작일뿐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 2년간 달러가치 40% 추가하락,세계경제 쇼크"**
뉴욕타임즈(NYT)는 16일(현지시간)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맞아 최악의 경제 악몽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며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들은 '달러가 다른 세계 주요통화에 대해 20%가 추가하락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달러 매도 러시로 인해 4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 경우 미국의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위시한 아시아 및 유럽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교수는 '달러 쇼크'의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지난 90년만 하더라도 '제로'에 가까웠으나 올해는 6천억 달러에 달하며 이에 따른 경상수지 누적적자는 현재 2조6천억 달러로 미국의 국내 총생산(GDP)의 23%에 달한다.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서부터 독일에 이르기까지 달러 순보유국들의 달러 자산 중 4분의 3를 빨아들여 간신히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도성장 등으로 무역적자가 심화되면서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 환율 불균형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달러에 사실상 고정돼온 국제통화체제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로고프는 "현재 미국은 거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매년 수백억 달러를 퍼붓고 있는 전쟁의 늪에 빠져있다"면서 "1974년에도 달러화가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에 대해 폭락하면서 유가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과 지난 70년대초의 상황이 너무 유사해 충격적"이라면서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체제가 무너지면서 인플레이션이 촉발됐던 70년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성장 침체기"며 동일한 위기가 도래할 것을 우려했다.
그는 "향후 2년에 걸쳐 달러화가 폭락할 경우 미국정부는 달러 유입을 위해 미 국채에 대해 더 높은 금리를 줘야 하기 때문에 금리인상 압박이 심화될 것이며, 달러 가치하락으로 원유수입가격이 높아져 무역적자가 도리어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가 높아지면 미국의 금융기관들과 헤지펀드들도 큰 타격을 받게 되고 대출을 받은 소비자들도 채무상환에 몰리게 되면서 미국 경제가 파탄이 나면서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게 된다는 게 그의 '악몽 시나리오'다.
***부시 행정부, "완만한 달러 하락으로 경상수지 적자 개선"**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반론도 있다.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캐더린 만은 달러 하락 추세는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달러가치 하락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상당량의 달러를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포함한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은 더욱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에는 미국이 빌려쓸 수 있는 돈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으며 완만한 속도로 달러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출이 증대되고 수입은 줄어들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존 테일러 미 재무차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지난 몇년 동안 미국의 생산성은 뚜렷하게 향상됐다"면서 "미국의 안고 있는 막대한 부채는 외국인들이 미국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열망을 나타내는 지표일뿐"이라고 주장했다.
***'제2 플라자 합의설' 나돌기도**
하지만 미정부 당국자들의 이같은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금융계에는 '제2의 플라자합의설'이 나도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플라자 합의'란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체결된 미국 등 서방선진5개국(G5) 재무장관간 '달러화 가치 대폭하락' 합의를 가리킨다. 당시 G5는 레이거노믹스하에서 과도하게 진행된 달러고와 이에 따른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을 시정하기 위해 자국 통화환율을 인위적으로 재조정하는 한편, 미국의 재정적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달러채권을 대량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당시 플라자합의는 미국과의 거래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던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일본은 이에 달러당 2백40엔대에 머무르던 엔화를 2년후인 1987년 달러당 1백20엔으로 평가절상해야 했다.
이같은 대미무역국에게는 치명적인 '제2의 플라자합의설'이 지금 국내외금융계에 나돌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현대경제연구원이 17일 내년에 원화환율이 9백원선까지 급락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제2의 플라자합의 가능성'을 공식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달러화가 폭락하며 원화가 초강세를 보일 경우 한국 수출에는 일대 충격이 가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본이 1985년 플라자합의 쇼크를 치열한 기술-제품 개발을 통해 극복했다는 사실을 우리기업들이 곱씹어 생각해볼 때다.
***원화 초강세, 금값 연일 사상최고치**
한편 '달러 쇼크'는 18일에도 한국 환율시장을 강타해, 원.달러 환율이 연일 폭락장을 연출하며 1천70원선마저 무너졌다. 18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11시 현재 전날보다 13.00원이나 폭락한 1천68.4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환율은 개장하자마자 전날보다 3.40원이 하락한 1천78.00원으로 1천80원선이 깨지면서 10시40분께 1천70원마저 곧바로 붕괴되는 폭락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5일 1천1백원선이 붕괴된 이후 나흘만에 40원이나 하락했다.
시장전문가들은 특히 이날 환율하락에는 오전 11시 현재 1백3.99엔까지 내려간 엔화 강세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이 미국의 달러약세를 용인하는 발언을 하면서 달러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 당국도 외환시장 개입에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 엔.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있어 원.달러 환율도 동반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금값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 산하 상품거래소(CO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날에 비해 온스당 4.60 달러가 오른 4백45.10 달러에 마감됐다. 이같은 금 가격은 16년전인 지난 1988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이며 지난 3개월간 9.4%나 급등한 것이다.
금 시장 전문가들은 달러화 약세현상이 계속될 경우 금 가격이 연말엔 온스당 4백50달러를 넘어서고 금 값 상승 전망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까지 가세할 경우 내년엔 온스당 5백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초만에도 금값은 온스당 3백20~3백30달러 선이었다.
세계경제가 부시 미정권의 일방주의 산물인 재정적자-경상적자 확대로 인해 동반 위기국면으로 빨려들어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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