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 영리 병원 설립을 허용하고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재정경제부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에 대해서 전국의 보건의료학계 교수와 연구자들이 반대 의사를 밝혀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보건의료학계 교수ㆍ연구자 1백43명,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폐기해야"**
전국의 보건의료학계 교수와 연구자 1백43명은 15일 오전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외국 영리 병원 설립과 내국인 진료 허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은 폐기되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개정안대로 외국 영리 병원 설립과 내국인 진료를 허용할 경우 의료 이용의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의료 전반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증폭시킬 것"이라며 "특히 경제자유구역 밖에 있는 국내 병원들이 '역차별 폐기'를 요구하며 병원의 영리 법인화 등을 요구할 경우,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상업적으로 재편되는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이번 개정안은 의료비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 현재의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민간보험이 도입되는 계기가 돼 고비용-비효율의 의료체계를 구조화하고, 의료 이용의 빈부 격차를 확대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재경부, 잘못된 정보와 해석에 기초해 법안 마련"**
이들은 또 "재경부의 개정안이 잘못된 정보와 해석에 기초해 법안을 마련한 것이어서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감신 경북의대 교수는 "이번에 우리가 이렇게 공동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정부가 사례로 들고 있는 싱가포르나 중국의 현실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돼 있고,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 부각시키는 등 정책을 마련할 때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여러 가지 점들을 검토해본 후, 누구나 수긍할 만한 주장을 내놓는다면 정부 주장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잘못된 정보와 해석에 기초해 무리하게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임준 교수는 "애초 외국 병원을 유치하는 것은 '외국인 편의 시설'의 일환인데, 국내 병원 진료비의 5~7배나 내면서 외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얼마나 될지도 의심스럽다"며 "일정 기간 이상이 지나면 국내 병원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현실에서 재경부의 안은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보건의료 학계의 교수ㆍ연구자들의 공동 성명은 각 분야를 대표해 감신(경북대, 의학), 김진현(인제대, 보건학), 안규석(경희대, 한의학), 정세환(강릉대, 치의학), 최준식(조선대, 약학) 교수의 제안으로 지난 2주간 조직됐다. 1백40명이 넘는 보건의료 학계의 교수와 연구자들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해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참여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정부는 의료계와 학계, 시민ㆍ사회단체의 반대와 복지부 등 정부 내 이견에도 불구하고 16일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어서 향후 갈등이 불거질 전망이다.
다음은 보건의료학계의 공동성명서 전문.
국민 건강은 안중에 없는 재정경제부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반대한다!
9월10일,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의료기관을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경제자유구역 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로서 외국인 투자기업을 추가”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그런데, 정부가 입법 예고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인 및 외국인 투자기업의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고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그 파장이 경제자유구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의료체계 및 건강보험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보건의료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어왔다.
의료 외유의 이유를 감안할 때 외국계 영리 병원 유치로 의료 외유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인데다가, 진료비 부담 때문에 특정 계층만이 외국계 영리 병원을 주로 이용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외국계 영리 병원 설립과 내국인 진료 허용은 의료 이용의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의료 전반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증폭시킬 것이다. 또 경제자유구역 밖에 있는 의료기관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되면서, 국내 병원들이 ‘역차별 폐기’ 논리로 영리법인화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결국 경제자유구역법의 개정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상업적 방식으로 재편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며, 의료비 지출의 앙등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사보험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어 고비용-비효율의 의료체계를 구조화하고 의료 이용의 빈부 격차를 확대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부의 이번 개정 법률안은, 잘못된 정보와 해석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정책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을 상실하고 있다. 정부가 사례로 들고 있는 싱가포르나 중국의 현실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들 나라의 보건의료 환경 전반이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무시한 채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 비교하고 있다. 싱가포르 사례만 보더라도 싱가포르 병원이 동북아 허브병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 싱가포르의 외국인 환자 대부분이 의료가 취약한 인근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출신이고, 외국의 유명 병원이 실제로 진출하고 있지 않고 있음에도 광범위하게 진출해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며, 외국인 전용 클리닉에서 내국인 진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도 마치 내국인 진료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보건의료 학계의 교수와 연구자들은, 보건의료 전반에 심각한 변화와 위험을 가져올 것이 확실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참여정부의 모토인 참여의 원칙과 열린 토론이 전제되는 과정에서 논의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정부가 열린 자세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스스로 접고 참여의 공간을 마련한다면, 우리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책이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이러한 정당한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모든 활동을 통해 개정안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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