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전국 명산과 국립공원에서는 등산객들의 소지품을 검사해 발화 가능성이 있는 물품의 소지를 금지하거나, 아예 입산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들이 행해지곤 합니다. 이는 건조한 날씨 속에 산불이 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지요. 우리나라는 날씨의 특성상 여름 장마철에 강수량이 집중되어 있어서, 날이 건조한 봄철(3~5월)과 11월에 전체 산불의 50% 이상이 집중되기에 이 때는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올해는 평년보다 강수량이 적은데다가(기상청 보고로 지난 10월의 전국 강수량의 평균은 7mm로 평년 이맘때의 12% 수준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낙엽도 평년보다 1주일 이상 빨리 떨어져 어느때보다 대형 산불의 발생 위협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산림청에서는 지난 11월 1일부터 홈페이지(www.foa.go.kr)의 '산불정보' 코너를 통해 산불위험지수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지수는 숫자가 높을수록 산불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나타내는데, 지수가 81이상이면 위험 수준, 61~80이면 경계 수준, 60이하는 위험 낮음 수준으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이 밖에도 국립산림과학원의 산불위험예보시스템(http://forestfire.kfri.go.kr)과 기상청의 산업기상정보허브(http://industry.kma.go.kr)의 생활기상정보란에서도 산불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해마다 예방하려고 하는데도 해마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산불, 그 정체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기로 하지요.
***산불, 너는 도대체 무엇이더냐**
산불(forest fire)이란 용어는 원래 좁은 의미로는 삼림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화재를 뜻하는 말로,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화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그 특징에 따라 forest fire, wildfire, field fire, bushfire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답니다. 산불은 자연적으로는 벼락이 떨어지거나(원시인들이 최초로 불을 얻게 된 원인이기도 하죠), 화산 폭발이 있거나 해서도 날 수 있지만, 화산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실화(失火, 실수로 일어난 불)로 일어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강수량이 일정 시기에만 집중되는 기후상의 특징으로 11월과 3~5월에 산불의 절반 이상이 집중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산불을 가만히 살펴보면 생명체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산불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나무나 풀과 같은 '탈 것(fuel source)'이 있어야 하며, 여기에 산소가 더해져야 합니다. 마치 생명체가 영양분을 섭취하고 호흡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게다가 산불은 한 곳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불똥이 튀어 옆 나무에 옮겨 붙는 방식으로 점점 커지고, 산불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을씨년스러운 찌꺼기(타다 남은 부스러기, 재, 먼지, 수증기 등)를 남겨놓습니다. 새끼를 낳아 번식하고, 찌꺼기를 배설해야 살 수 있는 것은 생명체의 특징이 아니던가요? 거기다가 주변의 상황(습도, 바람의 속도나 방향, 초목의 종류와 서식 위치 등)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며, 이리저리 이동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산불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런 산불의 특징을 파악하고, 생명체를 대하듯 그때그때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그럼 이렇게 무서운 산불이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볼까요?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불씨가 원인이 됩니다. 벼락이나 화산 폭발 같은 규모가 큰 원인보다는 제대로 끄지 않고 던져버린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태우다가 튄 작은 불똥, 산에 가서 음식을 해먹기 위해 피운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경우 등 아주 사소한 원인이 산불의 주된 원인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불씨가 튀게 되면 처음에는 불이 붙기 쉬운 마른 낙엽이나 잡초, 키 작은 관목 등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됩니다. 이때 주변 습도가 50% 이상이면 불씨는 사그라지거나 불이 붙더라도 초기에 잘 대처하면 크게 번지지는 않지만, 습도가 40% 이하인 경우에는 불씨는 말 그대로 불행의 씨앗이 되어 주변으로 널리 퍼져 나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만약 습도가 25% 이하로 매우 낮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불씨가 퍼져 땅 주변에 있는 것들을 태우는 것을 지표화(地表火)라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불이 사그라지면 다행이지만, 불길이 바람과 건조함을 타고 더욱더 세를 얻으면 주변의 키 큰 나무로 옮겨가 나무의 가지와 줄기를 태우는 수간화(樹幹火, 樹幹은 나무줄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줄기세포(stem cell)를 한자로는 간세포(幹細胞)라고 하지요)로 번졌다가, 결국에는 토양의 부식층까지 태워 뿌리까지 피해를 입히는 지중화(地中火)까지 진화(?)하게 됩니다. 수간화, 지중화까지 산불이 번진다면 주변은 초토화된다고 봐야겠지요.
***산불의 두 얼굴**
불은 화마(火魔)라는 말에 걸맞게 한 번 일어나면 모든 것을 태우기에, 산불 역시 생태계에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주게 됩니다. 일단 직접 피해로는 동식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삼림이 주는 좋은 효과(산소 발생 기능,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는 기능, 쉼터와 휴양지 기능)를 순식간에 잃는 것이지요. 이와 더불어 간접효과로 생태계의 급작스런 파괴로 인한 토지 잠재력 혼란과 황폐화, 토양 및 흙 속의 영양염류가 씻겨나가고 이로 인해 주변 하천이 오염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합니다.
경상대 농어촌개발연구소에서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산불이 난 지역에서는 토양 유기물과 질소 화합물, 칼륨이온(K+)과 구리이온(Cu++) 등 각종 양이온의 함량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일시적으로 토양을 알칼리화시키기 때문에 언뜻 보면 토양 pH의 산성화를 해소시켜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산성화된 토양은 영양염류의 유출로 지력이 떨어져 생물체가 살기 힘든 척박한 환경이 되기 때문에 토양의 산성화를 중화시키는 것은 토양 오염 해소의 주요 대응이 됩니다. 그러나 이 영양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적인 생태계의 순환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초목의 재가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에 쉽게 씻겨 내려가기에 금세 사라집니다. 그렇게 쌓인 재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 그 자리는 이미 산불로 생물들이 죽어서 더 이상 유입되는 영양분이 없기 때문에 산불이 나기 전보다 토양의 영양분의 감소 폭이 훨씬 커져 산성화가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빗물에 의해 씻겨 내려간 영양분은 주변 하천으로 흘러들게 되고, 특히 바닷가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난 경우, 장마철 후에 백화현상(白化現象
, whitening)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흔히 우리는 바닷물로 영양 염류가 다량 유입되면 '적조(赤潮, red tide) 현상'을 떠올립니다. 적조현상이란 바닷물에 질소(N)나 인(P) 등의 영양염류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해수의 온도가 21~26도 정도로 따뜻한 경우에 해수 중에 붉은색 색소를 가진 조류가 폭발적으로 증식하여 바닷물이 붉게 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적조현상은 바닷물이 어느 정도 따뜻해야 일어나므로, 6월에서 9월에 사이에 주로 일어납니다. 적조가 생기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용존 산소를 이 조류들이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어패류들이 숨 쉴 산소는 모자라게 되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붉게 변한 바닷물에 흰 배를 드러내고 떼죽음 당한 물고기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소름끼치는 장면입니다.
백화 현상도 바닷물에 일시적으로 영양염류가 다량 유입될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때 바닷물은 희뿌옇게 우윳빛으로 보이기에 백화현상이라는 말이 붙었지요. 바닷물이 뿌옇게 보이는 것은 해수 중에 용해되어 있던 탄산칼슘(CaCO3)이 응결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탄산칼슘은 조개껍데기나 석회석의 주성분이니까, 물에다 석고 가루를 섞은 상태를 생각하면 됩니다. 원래 바닷물 중에는 칼슘 이온이 녹아 있는데, 지나치게 많아서 칼슘 이온이 과포화 상태가 되면 이렇게 탄산칼슘의 형태로 굳어져 하얀색을 띠고 바닷물을 하얗게 만들게 됩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는 큰 위험은 없습니다. 문제는 석회조류에 의해 발생되는 백화현상이지요. H. Emiliania라는 플랑크톤은 표면이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비늘 구조로 덮여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과다 증식하면 적조와 마찬가지로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불이 단지 산과 들만을 황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변 바닷속 생태계까지 녹다운시켜버리다니, 산에서 불장난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제 상상이 가시나요?
이렇게 한순간에 일어나 모든 것을 초토화시켜버리는 산불이지만, 반드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애팔래치안 산맥에 있는 국립공원에서는 지난 2002년 멸종 위기에 놓였던 터키비어드(turkeybeard)라는 꽃이 갑자기 일대를 뒤덮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멋진 그림을 연출했습니다. (참조:http://news.nationalgeographic.com/news/2002/06/0625_020701_fireecology.html)
원래 이 꽃은 개화가 힘들어 멸종을 염려했었는데, 갑자기 수천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나자 사람들은 기뻐하는 동시에 이 꽃들이 갑자기 피게 된 원인 조사에 나섰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터키비어드의 멸종을 막은 것은 얼마 전 그 곳에서 일어난 산불이었습니다. 산불로 인해 땅 위에 두껍게 쌓여있던 죽은 나뭇가지와 썩은 낙엽들이 없어지면서, 그 속에 묻혔던 터키비어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흔히 산불은 무섭고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한적인 산불은 오히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중에 쥐불놀이라는 것이 있지요? 겨우내 말라붙은 논두렁의 풀들에 일부러 불을 놓아 풀을 태우고 거기에 사는 쥐나 기타 곡식에 해로운 벌레들의 죽이는 것이죠. 이것도 일종의 산불-들불-이지만, 오히려 농사에 이득이 되기에 해로운 불은 아닙니다.
***글을 마치며**
모든 것을 한꺼번에 태워버리는 대형 산불은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해서 도저히 회복할 수 없게끔 초토화시키지만, 적당한 불은 생태계를 적절하게 자극하여 삼림의 성장주기를 도우며, 죽은 나뭇가지와 마른 풀 등이 위험할 정도로 두껍게 쌓이는 것을 막아서 오히려 큰 피해를 예방한다고 합니다. 즉, 생태계 전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본다면, 산불은 이를 침범하는 병원균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병원균이 너무 강력하면 생명체는 죽게 되지만, 적당히 면역계를 자극하면 오히려 면역력이 더 좋아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삼림에 불을 붙이는 것은 금물, 제한적인 산불은 말 그대로 엄격한 관리하에 제한된 곳에서만 시범적으로 실시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따라하면 큰일난다구요. 특히나 4월의 진달래철과 10-11월의 단풍철이 되면 전국의 산야 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사람들도 바짝 긴장을 하게 됩니다. 적당한 기온과 그림같은 풍광을 즐기러 놀러온 행락객이나, 식목일과 추석 등의 행사가 많은 달이어서 그만큼 산불이 날 위험성이 높아지거든요. 이들이 모두 불조심을 철저히 해주면 좋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문제입니다. 지난 3월에 일어났던 강원도의 대규모 산불도 동네 주민이 봄맞이 청소를 하고 나온 쓰레기를 태우다 강한 바람에 불티가 튀어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번진 것이거든요.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와 성냥, 잃어버린 일회용 라이터, 덜 꺼진 캠프파이어 모닥불, 부주의하게 사용한 버너 등등 이런 것들은 아주 하찮아 보이지만 엄청난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산불은 마치 블랙홀과 같아서 일단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끝은 파멸 밖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만 유용한 말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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