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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담화'와 '김정은 친서'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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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담화'와 '김정은 친서'의 수수께끼

[창비 주간 논평] "코로나19 때문에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지난 3월 3일 야심한 시각,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느닷없이 담화를 발표했다.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 아래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하는 등 북한의 합동타격 훈련이 진행된 것에 대해 청와대가 강한 우려를 표명하자 이에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라는 제하의 이 담화에서 김 부부장은 "남쪽 청와대에서 "강한 유감"이니, "중단 요구"니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우리로서는 실로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날 선 논조로 청와대를 비판했다.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꼴 보기 싫은 놀음, 적반하장, 강도적인 억지 주장, 저능한 사고, 세 살 난 아이, 겁을 먹은 개 등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한 논평에 그야말로 '남쪽 청와대' 사람들이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김여정은 이른바 '백두혈통'이면서 동시에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특사로 방문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태도 변화가 준 충격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김여정 부부장 역할론과 기대

담화 다음 날,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그때 또 다른 반전이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친서를 보내온 것이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겠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이 와중에 미사일을 발사했다"며 북한의 군사훈련을 맹비난하던 국내 언론들이 두 백두혈통의 엇갈린 말과 글을 두고 제대로 된 해석을 내놓지 못하는 난독증에 빠지고 나서야 상황은 조용해졌다. 심지어 그로부터 5일 뒤인 3월 9일, 북한은 또다시 초대형 방사포 실험 사격에 나섰지만 한국 사회에는 면역력이 생긴 듯했다.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한 배신감과는 별개로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백두혈통이라는 특별한 지위와 더불어 평소 그가 보여준 성정이 앞으로의 사태를 다른 국면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해석이었다. 권부 실세이면서도 온건파인 김 부부장이 남북관계의 메신저로 돌아왔고 따라서 그가 공식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남북관계가 긍정적으로 반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전해진 김정은 위원장의 '코로나 친서'는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하는 매우 중대한, 그리고 예정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쌍중단 붕괴론과 5월 위기론

그러나 친서 이후 김 위원장이 연발사격 능력과 실전배치 능력을 검증한 것으로 보이는 초대형 방사포 발사(9일)와 포병 포사격 대항 경기(12일) 등을 직접 지도함으로써 잇달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상황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여전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연말 7기 5차 당중앙위 확대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며 "지켜주는 대방도 없는 공약에 더이상 일방적으로 매여 있을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싱가포르 합의체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강경한 어조로 "멀지 않아 새로운 전략 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 대가를 깨끗이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고 따라서 "핵 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를 유지한다는 공세를 폈다. 북한은 장담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보이진 않았지만 강경조치를 폐기했다는 어떤 신호도 없다. 오히려 최근 연이은 군사훈련은 쌍중단의 붕괴를 의미하는 듯 긴장을 확대할 징후를 보이고 있다.

"협상 중에는 상호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쌍중단 체제는 북미협상의 전제 조건이었다. 그러나 하노이 노딜 이후 쌍중단 체제는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올해 3월 예정된 한미군사훈련은 중단되었지만 그것이 쌍중단 체제에서 비롯되었는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는 불분명했다. 한미 정부의 공식입장은 후자였고,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에서 이를 콕 집어 공격했다. "3월에 강행하려던 합동군사연습도 남조선에 창궐하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가 연기시킨 것"이지 "청와대 주인들의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며 '자기들은 군사적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우리는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는 강도적인 억지 주장은 미국을 꼭 빼닮았다'며 비난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를 쌍중단 붕괴론으로 본다면, 김 위원장의 친서는 '코로나 신사협정론'으로 읽힌다. 김여정 담화는 한미가 쌍중단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한, 북한 역시 이에 구애받을 의무가 없으므로 자신들의 정치-기술적 요구에 따른 군사 건설은 계속될 것이라는 논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김정은 친서에 따르면 남북 정상 간 정치적 신의는 지켜질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코로나 휴전기 동안, 그것도 남북의 시간에만 유효한 신사협정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휴전기가 끝나는 시점이 4월 중순이라면 그때 이후의 상황은 남북의 시간이 아니라 북미(대립)의 시간이 될 것이다. 5~6월 위기론의 근거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아웃소싱2.0

'공포 과잉' 사회이자 '리스크 회피' 사회인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이 널뛰기를 거듭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 널뛰기가 극단을 오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승부욕도 한도가 없어지는 양상이다. 코로나19·유가·무역전쟁이라는 3대 파고를 헤쳐가야 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직접 풀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가를 깨끗이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을 운운하며 모험주의에 나설 태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5월 위기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대북 협상에 대한 최대한의 '아웃소싱'을 받아내야 한다. 사상 초유의 재량을 발휘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의 예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양보를 이끌어내어 남북의 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이 옵션이 코로나19 때문에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코로나19의 끝이 남북의 시작이 되게 할 수 있는 그 기회의 창에 모든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바로 이때 김 부부장 역할론도 현실이 될 것이다. 두 백두혈통의 말과 글이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게 하는 것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노력이 잉태할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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