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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기상황 불러올 뻔한 '홍혜걸 해프닝'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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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기상황 불러올 뻔한 '홍혜걸 해프닝'을 보며

[안종주의 안전사회] 가짜 뉴스, 확증 편향의 위험성

코로나19 사태로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이 많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주무부처 장관이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과 시민들의 감시 대상이다. 이 때문에 그는 "코로나 확산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 때문” "병원 마스크 부족은 사실이 아니라 의사들이 더 확보해두고 싶은 욕심 때문” 등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의료계와 언론한테서 '장관 사퇴' 등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공직자여서 그렇다 치자. 한데 공직자도 아닌 사람이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출신의 홍혜걸 박사다. 그는 기자 시절부터 여러 텔레비전·라디오방송의 건강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와 대중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졌다. 황우석 스캔들로 기자를 그만두고 난 뒤에도 광고모델, 방송 건강 프로그램과 심지어는 가요경연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까지 출연해 맹활약을 펼치면서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홍 박사가 코로나19와 관련해 구설에 휘말렸다. 세계에서 찬사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코로나 진단검사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부터다. 특히 이와 관련해 최근 여야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매서운 비판을 가하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나서서 "의학적 조언도 야메(엉터리) 말고 정품으로 하라.”며 홍혜걸 박사를 저격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증폭됐다.

진중권, 홍혜걸 저격 "의학적 조언, 야메 말고 정품으로”

홍 박사는 즉각 "사실관계를 확인하자는 차원에서 한 말을 '가짜뉴스' 생산자로 몰아 마녀사냥을 당했다.”며 진 교수의 지적에 반발하고 나섰다. 과연 그는 억울한 걸까. 진 교수가 헛다리짚고 과한 비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홍 박사의 행태에 실제로 문제가 있었던 걸까? 사건의 경위와 실체적 진실에 대해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길 부분을 중심으로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 등을 취재해 그 전말을 해부해본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에서 시작했다. 마크 그린 미국 공화당 의원이 코로나19와 관련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우리나라 코로나 진단법이 미국 FDA로부터 'not adequate(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발언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홍 박사가 이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하며 '국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진단키트가 미국 식품의약처(FDA) 기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미 의회에서 나온)이런 충격적 발언이 생중계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으니 진위 파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안 그래도 (우리나라 검사키트의) 위음성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 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나의 편견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이 분야 전문가에게도 물어봤는데 그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는 말도 했다. 자기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전문가도 우리 검사키트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했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홍 박사의 이런 행동이 전문가로서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코로나19 진단검사법이 신속유전자검사법이라고 부르는 RT(역전사효소)-PCR(중합효소연쇄반응)진단법이라는 사실은 그가 모를 리 없다. 이제는 일반인들 가운데에도 이 검사가 어떤 원리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 홍혜걸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홍혜걸 "사실관계 확인해보자는 것일 뿐, 마녀사냥 당해” 주장

사건이 불거지자 홍 박사는 "(우리나라가 하지 않는)혈청검사 갖고 FDA가 부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해 사실관계를 확인해보자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우리 키트가 엉터리, 열심히 일하는 정부만 비판하느냐고 황당하게 덧씌우기를 하고 있다.”며 자신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마녀사냥일까. 먼저 미 하원의원이 이른바 효소면역측정법(EIA, Enzyme-linked Immunosorbent Assay, 혈청 속에 있는 항원이나 항체를 공유결합시킨 효소를 표지자로 사용해 분석하는 방법)을 문제 삼았다면 이를 근거로 우리 유전자검사법의 흠결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특히 전문가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말마따나 PCR 검사키트의 위음성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 왔다면 경우에 따라 지금까지의 감염자·환자 판정 결과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나중에 그가 변명하면서 한 이 말은 실제로 그가 문제 삼고 싶었던 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PCR 검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우리) PCR이 잘못 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왜 그런 글을 올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홍 박사의 글에 대해 '엘리스'라는 필명의 누리꾼은 "말은 많은데 다 변명. 팩트는 우리 검사에 문제가 없는데 당신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흘린 거다. 의학전문기자라면서 그런 의혹이 있다면 질본에 팩트체크부터 했어야지. 그런 기본적인 직업윤리도 없다니...”라고 꼬집었다.

이 누리꾼의 지적에 공감이 갔다. 그래서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맡고 있는 실무책임자에게 물었다. 그는 "홍 박사로부터 어떤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자기가 아는 한 사전에 연락을 받은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질본 "홍 박사 전화 없었고 학계의 위음성 문제 제기 없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중요한 증언을 했다. 홍 박사가 "검사키트의 위음성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 왔다.”라고 한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전문가나 관련 학회 등에서도 코로나19 검사키트의 위음성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홍 박사는 위음성 문제가 계속 지적돼왔다는 주장과 관련해 확실한 물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말이 된다.

진단검사에서는 정확도가 매우 중요하다. 정확도는 민감도와 특이도로 이루어진다. 민감도는 성을 성으로 잡아내는 정도이고 특이도는 그 반대로 성을 성으로 잡아내는 정도다. 민감도가 낮으면 위음성이 많이 생기고 특이도가 낮으면 위양성이 많이 생긴다. 이런 검사키트는 정밀검사법으로 쓰기 곤란하다.

위음성이 많이 생긴다는 주장은 다시 말해 실제로 감염자나 환자임에도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는 감염자(환자)인 사람들이 대거 부실한 검사 때문에 음성 판정을 받은 뒤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바이러스를 마구 퍼트리고 다닌다는 이야기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대한민국 뒤흔들 사안으로 여겨 신중보다는 '아니면 말고'
그는 아마 여기에 '필'이 꽂힌 것 같다. 기자라면 엄청난 특종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는 나중에 엉터리 사기 논문으로 드러난 황우석 줄기세포 성공 사례를 <중앙일보> 의학기자 시절 가장 먼저 보도를 한 적이 있다(이와 관련해서는 그가 엠바고 파기라는 기자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는 논란이 빚어져 곤욕을 치렀음).

기자가 아니라 전문가라 하더라도 만약에 검사키트의 정확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므로 누구보다 빨리 관련 사실을 알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벌어진 것은 실은 효소면역측정법인데 홍 박사는 앞뒤 재지 않고 현재 시행하고 있는 유전자검사법의 부정확 문제가 아닌가 하고 '오버'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추론을 제기해본다. 이런 추론 말고는 질본에 사실 관계를 물어보는 등 신중한 행동을 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은 까닭을 모르겠다.

홍 박사는 "내가 가짜뉴스 생산자? 억울하다. 나는 한 번도 우리 키트가 엉터리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엉터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페이스북을 보거나 이를 퍼 나른 페친이나 일반 시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고 올렸어야 한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도 여러 방송 활동을 통해 전문가로서 영향력 있는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홍 박사는 "가짜뉴스는 기자만 만드는 게 아니다. 순수한 의도를 엉뚱하게 각색해 보기 싫은 기자를 마녀 사냥하는 독자도 만들 수 있다”며 자신은 어디까지나 순수했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해 차분하게 생각해보고 경솔한 행동이었음을 사과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인문학자 김경집이 최근 한 신문에 기고한 글 가운데 일부를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독자들에게도 함께.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정보에 목말라한다. 그러나 정작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 틈을 비집고 온갖 거짓 뉴스가 횡행한다. 거짓 뉴스일수록 그럴 듯하고 선동적이다. 노골적인 목적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 살피면 걸러낼 수 있는데도 인지 부조화를 넘어 확증 편향에 빠진 상태에서는 가뭄의 단비 같기만 하다. 그걸 좋다고 사방팔방 퍼뜨린다. 심지어 '사명감'에 불타서.” 가짜뉴스는 악마가 되어 늘 우리에게 속삭인다는 사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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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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