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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현장을 찾아

[신간] "한국은 甲의 사회" "부정부패 아직도 곳곳에"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실제 주가가 비교대상이 되는 해외의 유수 기업들보다 30% 정도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통념이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 사례라는 게 많은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세계적 컨설팅사인 베인 & 컴퍼니의 한국대표 이성용씨가 1백여개의 한국기업과 정부기관의 컨설팅 업무를 진행하면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현황을 분석한 <한국을 버려라>(청림출판 간)을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교포 출신으로, 미 육군사관학교 우주공학과 졸업후 남가주대 USC에서 정보기술 석사를, 하버드대학에서 MBA과정을 마친 뒤 한국에서 10년간 일해왔다.

그는 "최근 '카드대란'을 불렀던 신용카드 정책이 나온 2001년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가 문제가 커진 뒤에야 비난을 쏟아내는 이 땅의 전문가들처럼 '뒷북치기' 비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지금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를 전략, 조직구조, 리더십, 프로세스, 인적 자원, 문화로 ‘한국 주식회사’를 컨설팅한 결과 7등급 중 3등급(1백점 만점에 42.8점)이라는 평가결과가 나왔다"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이민이라도 가야 할 정도로 나쁘진 않지만 우리가 이미 가입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준에는 미달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 주식회사'가 2만 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기반의 지식경제를 확립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앞으로 한국 산업구조의 성장 동인은 고 지식집약형 서비스업과 제조업 분야 육성에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저자는 서비스 경제를 위한 준비를 갖추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빨리 제거해서 사회 전체가 변화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역설한다.

다음은 그가 책에서 한국에서 경험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소들이다. 편집자주

***한국에서 '을'로 살아가는 법**

며칠 전 사업상 알게 된 어떤 지인이 새 공장을 건설하면서 겪은 불만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페인트 도색을 하는 회사의 CEO다. 이 회사에서는 자동차에서부터 소규모 부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에 색을 입힌다. 산업용 도색은 단순히 칠만 하는 게 아니라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외제 자동차들이 동일한 마모도와 손상 조건 하에서도 국산차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반짝이는데, 그 이유가 도색 기술의 차이 때문이다. 그는 이 도색 기술을 한국의 한 대기업에 공급하고 있었는데, 그 대기업이 주요 공장 한 곳을 중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도색 공장은 총수입의 40% 이상을 이 대기업에 의존해 왔으므로, 고객을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 대기업의 구매 책임자로부터 호출이 왔다. 자신들이 세운 중국 공장 바로 옆에 도색 작업소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이전을 할 경우 처음 2~3년간 30% 정도 비용상승이 초래되는 요구였다. 게다가 이 구매 책임자는 운영비용을 25% 삭감하지 않을 경우, 도색 작업을 중국기업에 넘기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결국 이 제안을 수용할 경우 이 CEO는 하루아침에 55%의 추가 비용을 떠안게 되는 꼴이었다. 이 사례는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는 비즈니스 관행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거래에서 '공정성'이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한쪽은 단지 지시를 듣는 '을'의 입장이고, 권력은 온전히 '갑'에게 있다.

물론 비즈니스 세계는 냉혹한 것이지만, 냉혹한 것과 불공정한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어쩌면 거래 상대를 학대하는 관행이라고 할 수 있는 '갑과 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세계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들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악명을 얻게 될 것이다.

비즈니스 거래 속에 뇌물과 부패의 관행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떡값' 관행이 그것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떡값'이 곧 뇌물 아니겠는가? 떡값 관행이 우리의 가치관을 파괴하고 한국 현대화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개선해야 할 우리의 잘못된 문화일 뿐이다.

***결과가 좋다면 과정은 묻지 않는다**

한국에서 10년을 살면서 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를 실감했다. 한국에서 원칙 없이 살면 체면을 잃는 선에서 그치지만, 눈치가 없으면 아예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과정이 옳지 못했다 해도 한번쯤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가 계속 반복되지는 않는다. 과정이 잘못되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원칙을 준수했느냐, 아니냐이다. 결국 이것은 '투명성'이라는 개념과 직결되는데, 이는 한국에서 가장 문제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외국의 애널리스트들이 언급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투명성 문제이다. 불투명한 시스템하에서도 조직이 수년간 유지될 수 있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조직에 불과하다. 투명성이라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과정을 문제 삼는 것이며, 처벌의 대상 역시 결과가 아닌 과정인 것이다.

일례로 아주 투명한 조직을 가진 구매 부서가 있는 반면 한 사람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구매를 결정하고 상품 판매원의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는 조직이 있다. 그는 회사를 대표해 가격 협상에 임하고 따로는 자기 멋대로 상품 판매원을 바꾸기도 한다. 어쨋든 그는 조직에서 구매의 제왕으로 알려지고 회사 내의 아주 중요한 위치에 오른다.

만일 후자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더 효율적인 비용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하자. 당신이 투자자라면 지속적인 파트너로서, 둘 중 어느쪽을 선택하겠는가.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두번째 회사가 프로젝트를 연속해서 맡는다면 똑같이 계속 성공하리라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프로젝트 매니저가 어떤 기준으로 업무를 처리하는지 파악하기가 힘들고, 때문에 그가 조직을 떠나기라도 하면 적절한 후임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게 뻔하다.

우리는 한시적인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주식회사라 불리는 일종의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류를 내지 않고도 동일한 기능을 반복해서 수행할 수 있는 매끄러운 시스템을 제작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투명성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다. 투명성 문제는 예비 투자자들에게서 듣는 가장 큰 불만거리 중 하나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은 다르다", "한국적인 상황에선 이게 맞아"라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한국에서 전문가란?**

피터 드러커는 우리가 건설할 미래 사회가 전문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시대가 도래하면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별하지도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특히 기업경영 면에서 우리는 전문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 "20년 이상을 한 직장에서 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승급이 되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한국의 고위 임원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자임하며 만족스러워 한다.

한국의 지난 비즈니스 환경을 생각해 볼 때, 고위직 임원들이 전문가로 대우받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국 임원들의 지식과 능력은 너무나 뒤떨어져 있으며, 때문에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우리의 '전문가'라는 지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형편이다.

한국의 임원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유동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 직장에서만 수십년을 보냈기 때문에 관련 업계나 다른 기업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많은 기업들이 서구식 기준은 한국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구의 임원들은 다양한 조직에서 얻은 학습 경험을 통합함으로써 능력을 개선할 기회를 가지는 반면, 한국의 임원들은 어느 게 더 나은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1년 경험, 20년 되풀이' 현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금융 분야만 20년을 했다는 한 대기업 최고 금융책임자(CFO)가 알고 보니 현금 유통과 신용대부 관리에만 전문가였다는 사실에 놀랐던 경험이 있다.

사모 펀드 기업을 상대로 오랫동안 일해 온 나와 동료들은 한국의 각 분야에서 경영 능력과 전문 기술이 입증된 임원 후보들을 선발하느라 매우 애를 먹고 있다. 어느 헤드헌터는 그런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실무 이행자나 소위 '머슴'은 많이 볼 수 있지만 정작 스스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경영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직원들의 경쟁력에 관해서도 '전문성 반감기' 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어떤 기술자가 입사 당시 지니고 있던 기술의 50%를 상실하는데 몇 년 또는 몇 달 걸리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지표다.

컴퓨터 분야는 전문성 반감기 현상의 완벽한 사례다. 박사 학위와 그 이상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2.8년이 채 안되는 반감기를 지닌다. 10년이면 그 컴퓨터 전문가는 최초 능력의 10% 정도밖에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최근 들어, 반감기 현상이 기술 이외의 분야에까지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기업이 계속하여 직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교육 기회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들은 점점 뒤쳐지게 되고 결국 경쟁력을 상실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졸업 이후의 '제도적인 학습'은, 대다수 경영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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