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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상환자'란 말은 모순, 감염자와 환자는 구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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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상환자'란 말은 모순, 감염자와 환자는 구분해야

[안종주의 안전사회] 정부 감염병예방법 무시, 감염자가 환자로 둔갑

코로나19 무증상 환자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무증상과 환자는 서로 모순된, 형용모순 용어이기 때문이다. 세모난 네모, 둥근 사각형 따위가 형용모순이다. 다시 말해 증상이 있을 경우에만 환자란 표현을 써야 하는데 증상이 없는 사람을 환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무증상 환자 있다.’ ‘무증상 환자 2% 미만 추정’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에이즈와는 달리 증상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 환자 또는 확진환자로 분류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홈페이지(ncov.mohw.go.kr)에 들어가면 3월15일 0시 현재 환자현황에서 확진환자 8,162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시도별 확진환자 현황, 주간환자동향도 공개하고 있다. 이 숫자에는 환자가 아닌 감염자도 들어 있다. RT(역전사효소)-PCR(중합효소연쇄반응)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면 무조건 환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정례 발표 때 감염자, 환자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싸잡아 확진환자라고 말하고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정부와 언론이 지금이라도 코로나19와 관련해 감염자와 환자를 구별해 발표·보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천병철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검사에서 바이러스 양성이 나왔다고 해서 모두 환자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됐다. 무증상환자는 무증상감염자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서울신문> <국민일보> <한국경제> <SBS> 등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지난 13일 ‘방역당국 “격리해제까지 무증상 유지 환자 있어…전염사례 조사"’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은 14일에는 중국 사례를 보도하며 ‘무증상 환자’라고 보도했다. <MBN> <연합뉴스> <KBS> <SBS> <YTN> 등 거의 모든 언론사는 ‘중, 코로나19 무증상 환자 5명 발생’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정부가 애초부터 ‘감염자’와 ‘환자’를 구별하지 않고 발표해왔기 때문에 빚어진 오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감염병환자’와 ‘감염병의사환자’ ‘병원체보유자’ ‘감염병의심자’로 나눠 각각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감염병 예방법 제2조(정의)를 무시한 채 이런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감염병예방법에는 ‘무증상환자’가 아니라 ‘병원체보유자’

감염병 예방법은 ‘감염병환자’를 (바이러스 등)감염병의 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하여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으로서 의사의 진단이나 실험실 검사를 통해 확인된 사람이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있다. 또 감염병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한 것으로 의심이 되나 감염병환자로 확인되기 전 단계에 있는 사람은 ‘감염병의사환자’라고 정의했다.

반면 임상적인 증상은 없으나 감염병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병원체보유자’라고 분명하게 규정해놓았다. 감염병환자, 감염병의사환자 및 병원체보유자와 접촉하거나 접촉이 의심되는 접촉자와 감염병병원체 등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감염병의심자’로 분류하고 있다.

감염병 예방법을 근거로 하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양성이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는 ‘병원체보유자’, 즉 ‘코로나19 바이러스 보유자’를 정부와 언론이 ‘무증상환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정부 스스로 법을 무시한 셈이다.

앞으로 방역 당국이 감염자와 환자를 확실히 구별해 발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감염자와 환자 통계를 따로 내는 것이다. 가벼운 증상이든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코로나19 환자로, 전혀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바이러스만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코로나19 감염자로 말이다. 모든 환자는 감염자이지만 모든 감염자가 환자는 아니지 않은가.

질본, 에이즈는 감염자와 환자 확실히 구분 사용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의 경우는 정부가 감염자와 환자를 구분해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국가는 에이즈 감염자와 에이즈 환자를 구분해 통계를 내고 있다. 각 회원국은 세계보건기구(WHO)에 환자만 의무적으로 보고하게 돼 있다. 에이즈 감염자 가운데는 바이러스 감염 뒤 20~30년이 지나도록 발병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보건기구와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HIV/AIDS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HIV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즉 에이즈바이러스를 보유한 감염자를, AIDS는 면역결핍에 따른 각종 증상이 나타난 에이즈 환자를 뜻한다.

질병관리본부도 홈페이지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에이즈 환자란 HIV에 감염된 모든 사람이 아니라 HIV에 감염된 후 질병이 진행하여 면역결핍이 심해져 기회감염 또는 종양 등 합병증이 생긴 환자상태의 사람을 말한다. 이에 반해 HIV 감염인은 체내에 HIV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총칭한다. 에이즈 환자나 증상이 없는 HIV 감염인 모두 타인에게 전파를 시킬 수 있다.”고 감염자와 환자를 구별해 설명하고 있다.

에이즈는 방역 측면에서 감염자와 환자를 거의 똑같이 취급한다. 질본의 설명대로 감염자 또한 타인에게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 등을 통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말하는 ‘코로나19 무증상 환자’는 에이즈 측면에서 볼 때는 ‘감염자’가 되고 감염병 예방법 측면에서 보자면 ‘병원체보유자’, 즉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보유자’가 되는 셈이다.

병원성바이러스 등 병원 미생물이 특정 경로로 우리 몸에 들어오더라도 모든 사람이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극미량이 들어오거나 우리 몸이 잘 견뎌내면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들어온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불현성(不顯性) 감염으로 끝날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한 뛰어난 바이러스 진단기술을 지니고 있다. 아주 약간의 바이러스가 몸에 있어도 이를 식별해낼 수 있다. 환자로 발전하기 전인 감염 초기에 이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격리나 선제적 예방치료 등을 통해 감염자의 몸에서 바이러스를 없애거나 약화시킬 수도 있고 감염자의 올바른 건강행동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도 있다.

정부·전문가, 코로나19 관련 용어부터 정립을

현재 에이즈의 경우에도 감염자를 조기에 찾아내는 검사에 힘을 쏟고 있다. 감염자 확진을 통해 그들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을 최대한 막겠다는 전략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이런 전략을 가장 강력하게 펼치고 있는 대표적 국가나 대한민국이다. 현재 8천명이 넘는 우리나라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환자가 아니라 실은 감염자인 것이다. 정확한 수치는 정부가 밝히지 않아 모르고 있다. 감염자가 얼마 후 바로 환자로 발전할 수 있고 증상이 매우 경미한 상태에서도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어 조기 검사와 감염자 발견을 통해 전파 확산을 막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반면 일본은 증상이 나타난 환자 위주의 검사 정책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사망률이 1%에 채 못 미치는 반면 환자 위주의 검사를 하는 중국, 이탈리아, 이란, 홍콩, 일본 등에서는 3~7%에 이른다. 이들 나라와 미국(2%)보다도 우리의 사망률이 낮은 까닭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19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자 보건당국이 불필요한 공포를 줄이기 위해 무증상 감염자를 확진자 집계에서 배제하되 별도 리스트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반인들로서는 이런 정확한 용어 사용 등에 잘 모르거나 관심이 낮을 수 있겠지만 감염병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다른 용어 정의와 정확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할 경우 나중에 사회적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감염자와 (획진)환자 구별은 물론이고 자가격리와 자가검역, 코호트 격리 등에 대해서도 언론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위험소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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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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