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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잘 나간다는 한국영화 매출, 도리어 쪼그라들었다"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21> 논객 강한섭의 '극한 위기론'

***논객 강한섭, 영화계에 비장의 칼을 던지다**

서울예술대학의 강한섭 교수가 최근 국내 영화산업의 현황을 비관적으로 분석한 소논문을 발표, 관계자들의 큰 주목을 끌고 있다. 그의 이번 논문은 향후,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논의에 있어 새롭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그 파문과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한섭 교수의 이번 소논문은 지난 10월22일 CJ CGV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주최의 세미나 <한국 영화문화의 다양성 증진 방안>에서 발제문의 하나로 채택, 발표된 것이다. 강 교수의 발제문은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과 스크린쿼터의 효용성:한국영화의 붐, 착시현상,쿼터 그리고 신화의 붕괴>라는 비교적 긴 제목의 글이었다.

강 교수의 이번 글이 당시 세미나장에 모인 사람들의 깊은 관심을 끈 것을 넘어서서 영화계 전체에 차츰 그 영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논란을 모아온 한국영화의 위기론에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영화산업에 대해 영화계안에서는 그동안 '새로운 르네상스기를 맞고 있다'는 낙관론과 '빙하의 시대가 곧 닥칠 것'이라는 비관론이 교차해 왔으며 강한섭 교수는 이번 글에서 각종의 수치와 자료를 근거로 한국영화계가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역설했다.

지금까지 평단 활동과 저술 활동처럼 이번의 그의 글 역시 매우 대중적이며 알기 쉽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상당 부분 지나치게 단정적이거나 직설적인 부분도 없지 않아 향후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강 교수의 글을 소주제별로 분류해 요약,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영화는 현재 절대적 위기를 맞고 있다**

강한섭 교수는 "90년대 중반에서 현재까지 관객수가 5천만명에서 1억2천만명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수치의 환상에 우리가 지나치게 얽매여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진단하면서 "90년대 중반 국내 영화시장의 매출규모는 극장과 비디오를 합쳐 1조5천억원 정도였으나 2003년 지난해 현재는 1조3천억원으로 도리어‘쪼그라 들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비디오 시장은 국내에서 급격하게 퇴조돼 1조2천억원에서 5천억 수준으로 격감했다. 소매상 수치도 전국 2만여점까지 호황을 누리던 것이 현재는 6~7천점 아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가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4~5년 전만 해도 비디오에 관한 한 흔히들‘슬리퍼 문화’라고 해서 슬리퍼를 신고 가까운 동네에서 얼마든지 빌려 볼 수 있는 구조였으나 현재는 집 근처에서 영업점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비디오 시장의 위축에 대해서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일찌감치 계속되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할리우드 메이저 컬럼비아 코리아의 구창모 상무는 “비디오 시장은 박살나고 DVD시장은 걸음마 수준이며 공중파,케이블,위성,온라인 등등의 판권은 아직 매출로 잡을 만한 단계도 아니다”라며 “다양한 윈도우의 개발과 확대없이 그 국가의 영화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분석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한국영화 붐은 정부의 과잉투자가 빚어낸 인위적 현상일 뿐이다**

강교수는 따라서 "지난 4~5년간 한국영화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인터넷과 이동통신 등 다양한 영상매체의 급격한 재편과정에 필요한 전략적 마인드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DJ정부는 이를 거꾸로 읽고 근 4천억원에 이르는 과잉투자를 함으로써 거품경제 현상을 만들어 냈다"고 비판한다.

당시 정부의 방향은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바탕으로 1,700억원 상당의 영화진흥기금에다 중소기업청기금을 시드 머니로 창투사 자본으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을 끌어들이는 이른바 '자본 드라이브' 방향이었다. 강 교수의 분석으로는 이 같은 ‘돈의 홍수’는 제작비의 수직상승에 영향을 미쳤고 영화권 안에 블록버스터 전략, 곧 크게 쓰고 크게 먹는 전략을 초래했지만 결국 비용이 수익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를 악순환시킴으로써 산업적인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의 비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같은 과잉 자본은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영화계의 몰락은 국민 1인당 부담이 가중되는 책임론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붐은 국가 신용카드 정책과 연동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강 교수가 발표한 이번 발제문의 가장 독특한 ‘통찰’은 한국영화의 허구적 붐현상이 신용카드 정책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극장의 주소비층으로 분류되는 20대 초반의 관객들이 신용카드회사와 이동통신회사의 ‘지원’으로 극장가격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연령대의 관객층들은 신용카드나 이동통신회사들이 대납해 주는 할인제도에 따라 심하게는 0원에 영화를 보거나 최소한 40~50%의 할인 요금으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강 교수는 이러한 가격파괴 시스템이 인위적으로 극장의 매출구조를 극대화시키고 있으며 반대로는 비디오나 DVD의 시청층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신용카드회사의 할인제도는 DJ정부 시절의 영업규제 완화 정책에 따른 것으로, 현재는 이에 대한 재조정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할인제도가 전면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강 교수는 이에 따라 극장 관객수는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금은 한가로이 스크린쿼터 논쟁 할 때가 아니다**

따라서 강한섭 교수는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 한가하게 스크린쿼터 제도가 있어야 하느냐 없어냐 하느냐는 소모적인 논쟁은 불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보다는 영화시장의 왜곡되고 붕괴된 가격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나는 스크린쿼터제 축소주의자도, 사수주의자도 아니며 좌파 민족주의자도 우파 시장주의자도 아닌 진실과 생존을 추구하는 철학자일 뿐이다”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 국면에 스크린쿼터 제도를 축소하는 것은 매우 미련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강한섭 교수의 이번 발표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일단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1~2개월동안 벌어진 소모적인 쿼터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강 교수의 이번 국내 영화산업 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 및 비판이 "지나치게 경제주의적 도그마에 입각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그간 진행해 온 영상산업지원책이 부작용을 초래하긴 했어도 산업의 규모를 확대시키는 데 있어서는 일정 정도 기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선의를 가진 깨끗하고 예쁜 손인지, 악의를 지닌 털이 부숭부숭 난 시커먼 손인지는 구분하고 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든, 영화 투자제작배급자든, 관객이든, 영화산업의 중심을 끌고 가는 것은 사람이지 강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의 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신용카드의 할인제도가 폐지된다고 해서, 3천원으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7천원을 내고는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적 예측은 관객들의 영화관람에 대한 행동 동기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우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강한섭 교수는 본인 스스로를 ‘진실과 생존을 추구하는 철학자’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번 글을 통해서는 철학자라기보다는 날카로운 분석과 공격성이 돋보이는 저널리스트의 면모를 더 앞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번 글은 국내 영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효용성 측면에서 추후 매우 중요한 이론틀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의 비판이 바로 현 시점에서 환영을 받는 이유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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