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입원하거나 격리되는 이들에게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를 지원한다는 방침이 발표되었다.(☞ 관련 기사 : <라포르시안> 2월 8일 자 '신종 코로나 입원·격리자에 생활지원비 지급...17일부터 신청') 하지만 여전히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기업보다는 무급휴가를 제공하는 기업이 더 많고, 게다가 무급휴가의 복귀 시점이 정해지지 않은 기업도 많다는 조사 결과도 보도되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3월 9일 자 '코로나19에 얇아진 월급봉투…"기업 8%, 무급휴가·급여삭감"') 특히 여행과 숙박 업종의 무급휴가와 급여삭감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무급휴가나 급여삭감은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더 큰 문제가 된다. 노동자가 임금을 잃거나, 아예 일자리를 잃게 될 위험이 큰 상황에 처하면 오히려 병을 숨기고 일하러 갈 가능성이 높다. 아프거나 전염 가능성으로 인한 위협보다 당장 직면하게 될 경제적 위기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 '서리풀 연구痛'에서는 미국 노동통계국에서 출판하는 <월간 노동 리뷰>에 실린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팀의 인종과 민족에 따른 유급 휴가 접근성과 사용 차이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가기 : '유급 가족휴가와 유급병가 접근성에서의 인종/민족적 격차')
국가 보상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7년 미국 노동자의 15%만이 유급 가족 휴가를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와 소규모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유급휴가를 사용할 가능성이 더 낮았다. 이에 연구팀은 인종/민족에 따른 유급휴가 접근성과 사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백인, 흑인, 히스패닉, 기타 인종 그룹에 대한 다양한 유형의 유급 휴가에 대한 접근성과 사용을 네 가지 국가 통계 자료(미국 인구 조사국의 미국인 시간 활용 조사, 인구 통계 조사, 국가 노동력 변화 조사, 수입과 프로그램 참여 조사)를 활용하여 분석하였다. 분석 1단계에서는 인종/민족에 따른 유급 휴가의 차이를 살펴보고, 분석 2단계에서 성별, 연령, 교육 수준, 결혼 유무, 자녀의 수와 나이, 이민자 신분 같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인종/민족에 따른 차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분석 3단계에서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정규직/비정규직 상태, 산업, 직업, 노조 상태, 고용 부문과 지역 같은 고용 특성 변수를 추가하여 이러한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서 인종/민족에 따른 차이를 확인하였다.
분석 결과, 유급 출산 휴가 접근성과 사용, 아픈 가족 돌봄을 위한 유급 휴가 접근성, 유급 병가 접근성, 유급 육아 휴직 접근성, 노인 돌봄을 위한 유급 휴직 접근성, 어떤 종류의 가족 혹은 건강 관련 유급 휴직 접근성에서 백인에 비해 히스패닉의 보고가 유의미하게 낮았다. 추가 분석에 의하면, 백인과 히스패닉의 이러한 유급 휴가 격차는 정규직/비정규직 상태 같은 고용 특성, 자녀의 수와 연령, 노동자의 연령이 주요한 영향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지만, 재택 근무, 유급 휴가 같은 것들이 모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사회구조적으로 취약한 조건에 처해 있던 이들에게는 바람직한 대응책마저 종종 '그림의 떡'이 되거나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소가 되고는 한다. 접근성의 차이 탓이다.
이번 코로나19 유행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약한 고리들을 하나씩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휴가 불평등 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불평등이 어려움에 처한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우리는 지금 몸소 학습하고 있다. 공중보건 위기를 이러한 오래된 문제를 바로잡는 정치적 기회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 서지정보
- Ann P. Bartel, Soohyun Kim, Jaehyun Nam, Maya Rossin-Slater, Christopher Ruhm, & Jane Waldfogel. Racial and ethnic disparities in access to and use of paid family and medical leave: evidence from four nationally representative datasets. Monthly labor review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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