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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잠입 취재기...그곳은 '양계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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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잠입 취재기...그곳은 '양계장' 같았다

[기자의 눈] 콜센터는 "옛날의 공장"...얇은 곳이 가장 먼저 찢어진다

대구 지역에서의 '코로나19‘ 발병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또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전국 곳곳에서 '집단감염'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대구 한마음아파트를 비롯해 세종, 충남 등에서도 집단감염 사례가 연이어 발견되고 있다.

서울도 이를 피해가진 못했다. 지난 10일,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11일 0시 기준으로 총 90명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제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중 절대적인 수치다. 이 숫자는 콜센터 건물 11층에 근무했던 콜센터 직원 207명과 그 가족들 중에서 나온 숫자다.

콜센터 상담사라는 직종 자체가 집단 감염에 취약한 사무환경을 가지고 있다. 환기도 잘 안 되는 사무실에서 다수가 밀집해서 근무하는 구조다. 하루 종일 이야기하는 업무이기에 마스크 착용을 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한마디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이야기다. 90명의 집단감염자가 발생한 이유다.

▲ 마스크 구입을 위해 줄 선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양계장 연상케 하는 콜센터 사무실

과거 콜센터 상담원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들이 일하는 사무실도 취재했다. 말이 좋아 취재였지, 방문객으로 가장해 '몰래' 잠입했다. 콜센터 측에서 기자의 취재를 허락할리 없었다. 그렇게 찾은 사무실은 거대 공장을 연상케 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사무실에는 좌우 통로를 두고 다섯 개의 상담사 자리가, 오열 종대로 사무실 끝에서 끝까지 배치돼 있었다. 사무실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는 축구를 할 수 있을 만큼 길어 보였다. 회색의 파티션 안에 갇힌 듯 들어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들을 둘러싼 사무실 벽면에는 대형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대부분이 고객과 상담할 때 갖춰야 할 태도를 각인시키는 문구들이다.

"경청과 배려가 살아 숨 쉬는 즐거운 직장으로 고객 관점 상담"
"일등 DNA로 무장한 강한 홈 CVC(고객상담센터)"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하지만 출근은 오전 8시 20분까지 해야 한다. 조회도 해야 하고 8시 55분부터는 책상에 앉아 전화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님,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9시 정각이 되면 사무실 곳곳에서 인사말이 쏟아졌다. 파티션 사이에 갇힌, 1미터도 안 되는 상담사 책상 위에는 모니터와 전화, 헤드셋이 놓여 있다. 오른쪽 파티션에는 상담 시 주의할 점, 지켜야 할 점 등이 적힌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쉬는 시간은 따로 없고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교대로 주어지는 점심시간 한 시간이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쉬는 시간은 없다. 눈치껏 쉬는 수밖에 없다. 화장실을 가거나 자리를 비울 경우, 무조건 팀장에게 메신저로 보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자리를 비워도 빈자리가 뭉텅이로 발견되면 어김없이 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다.

"다들 뭐하는 거야? 콜 안 받아? 가뜩이나 콜 수 없어서 걱정인데 일 이렇게 할 거야?"

팀장은 전 직원에게 온라인 메시지를 전송한다. 자리에 앉아 있다 이를 본 상담사들은 자리를 뜰 수 없고,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나중에 그 메시지를 발견한 상담사들은 이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식으로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잠깐의 시간도 점점 줄어 간다.

친절하게 빨리 끊어야 하는 상담사들

일을 하면서 가장 고달픈 부분은 ‘진상’ 고객의 욕설이다. 욕하고 소리 지르는 것은 기본. 문의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도 화가 난 고객의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이게 죽을라고 환장했나. 네가 뭔데 안 된다는 거냐?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너 아까 내 이야기 다 안 듣고 전화 끊었지? 나 지금 너네 상담센터 앞에 와있거든. 쳐들어가기 전에 내가 이야기한 거 해결해. 해결 안 하면, 나 10분 내로 들어간다. 너 죽고 나 죽고야."

거짓 협박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행여 찾아와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두려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전화는 계속 받아야 한다. 한 시간당 채워야 하는 콜 수 때문이다. 이를 채우지 못하면 점심시간이 줄어들거나 퇴근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고객과의 통화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중요치 않다. 콜 수는 오로지 고객으로부터 받은 전화 수로만 계산된다.

그렇다고 고객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관리자들이 고객과 나눈 대화 내용을 녹음해 무작위로 검사한 뒤, 평가 점수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고객과의 통화에서는 늘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친절할 것! 빨리 끊을 것!"

시대가 달라졌다 해도, 달라지지 않는 삶

이러한 작업환경과 시스템 속에서 일하다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는 언감생심이 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나 IT기업에서 하는 재택근무는 머나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안해 '사회적 거리두기' 운운하다 해고되면, 달리 갈 곳도 막막하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 대부분은 여성 노동자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평하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뼈아픈 이유다. 콜센터는 전국에 745개, 서울에만 417개가 있다.

이곳 콜센터로 흘러오는 이들 중 상당수는 직업계고 졸업생들이다. '공순이'를 피하는 몇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는 일과 작업여건은 '공순'이와 다를 바 없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지금의 콜센터를 '옛날의 공장'이라고 칭했다.

"콜센터는 옛날의 공장이다. 여성노동자들이 창문도 없는 공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미싱 밟고 실밥 따던 공장. 지금은 미싱 대신 온종일 말을 한다. 그들에게 욕을 하거나 성희롱하는 건 관리자가 아닌 고객님들이다. 변하지 않은 건 낮은 임금과 그들의 사회적 지위. 수많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얼마나 불안할까."

가장 얇은 곳이 먼저 찢어진다고 했다. 시대가 달라지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하나, 여성 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는 쉬이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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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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