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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전담하는 건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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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전담하는 건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이다"

[인터뷰]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6일 오후 3시, 여성들은 '조기퇴근'이라는 형태로 일종의 파업에 들어갔다. 2017년부터 시작된 '3시 조기퇴근 시위'는 올해 '3시 여성파업'으로 좀 더 세졌다. '3시'인 이유는 우리나라 성별임금격차(2018년 기준 37.1%)를 하루 8시간 노동으로 계산해보면 3시쯤부터는 여성들은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임금 무노동 원칙에 따라 3시부터 일을 멈추자는 의미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이날 예정된 광화문 집회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파업'이라는 강력한 어감이 주듯 여성들의 요구는 한층 디테일하고 강력해졌다.

여성파업 역사는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아이슬란드의 여성총파업 당시 인구 22만 아이슬란드에서 2만5000여 명 여성이 파업에 참여하자 국가 전체가 멈췄다. 현재 아이슬란드는 성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1991년과 2019년의 스위스 여성파업, 2017년과 2018년의 스페인 여성동맹파업은 인구 10%에 달하는 숫자의 여성들이 참여해 성별임금격차 해소, 여성에 대한 폭력 중단, 등 여성 이슈 전반을 포괄했다.

2020년의 이번 파업은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한 세계적인 공동행동이다. 위민스 글로벌 스트라이크(women's global strike)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100여 개국에서 진행된다. 전 세계 파업 지도를 만들 예정이다.

ⓒ3시STOP공동행동

우리나라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15개 단체가 연대한 '3시STOP공동행동'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4주간 사회가 요구한 여성의 '기본값'에 거부하자는 의미로 감정노동, 꾸밈노동, 독박 가사·돌봄노동을 각 1주씩 3주간 파업하고 마지막 4주차에는 나의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을 얘기한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위의 네 가지 노동(감정·꾸밈·가사·돌봄)을 두고 "여성들에게만 요구되는 것들, 남성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것들, 그러면서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이라며 "구조적인 성차별을 만드는 기제"라고 말한다.

3시STOP공동행동에 참여한 한국여성노동자회의 배진경 대표를 5일 서울 마포구의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4주째 '여성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주간 감정노동, 꾸밈노동, 독박 가사·돌봄노동 파업 운동을 했다. 성차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노동인가.

배진경(이하 배) : 감정노동은 서비스노동자들만 겪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만도 않다. 여성들은 집중해서 일하고 있는데 무표정하단 이유로 지적받는 식이다. 그런 문제들처럼 남성들은 자기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여성은 업무 외적인 요구를 받는다. 꾸밈노동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타이트한 스커트정장을 요구함으로써 온 몸의 세팅을 불편하게 바꾸도록 한다. 화장 안하고 출근하면 '어디 아프냐'고 물어본다. 외모평가가 항상 수반된다.

독박 가사·돌봄 노동은 주로 가정에서 벌어지지만 사무실 내에서도 있다. 여성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손님이 왔으니 커피를 대접하고 회의할 땐 회의실을 세팅하고 또 탕비실 정리하고 회의 끝난 뒤에 뒷정리 하는 일 등.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알아서 하는 일들이다.

최근 성별임금격차해소를 위한 '3분 설문'을 돌렸다. 응답 결과, 의외로 사무실 내 돌봄노동의 문제제기가 많았다. 어떤 분은 손님이 생과일 사오면 집어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걸 누가 깎나. '모두가 여자인 내 손만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미묘하게 여성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일들. 그런 부분들에 파업을 선언하고 그것이 여성의 고유한 역할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3주간 파업 테마 중 하나로 설정했다.

프레시안 :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별 임금격차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성들은 취업준비를 하다보면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한다. '취준페미'라는 말도 있다. 그 과정에서부터 절절하게 느끼는 듯하다.

: 다른 부분에 비해 임금은 직접적인 권력과 맞닿은 부분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력은 그거 자체로 권력이다. 그렇기에 더욱 첨예하다. 성별임금격차가 젊은 여성들에게 더 크게 와닿는 이유는 제도적으로 공고하게 이루어진 차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까지는 대체로 평등하다. 평등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해도 그렇게 큰 차별을 제도적으로 느낀 적은 거의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으로 나가는 순간 차별을 온 몸으로 느낀다. 채용부터 퇴직까지 모든 순간 매 수간 차별을 경험한다. 채용 과정에서 최종에 여성만 남으니까 채용 자체가 무산된 경우도 보고됐다.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구조다.

이 사회는 여성들이 자기 임금을 가지고 독립생존 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의 피부양자가 되도록 독려한다. 그렇게 됐을 때 여성들이 자신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나. 심지어 그 길이 합리적으로 보이게 포장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가 키워야 돼, 그런데 남성이 돈을 많이 벌어. 그럼 여자인 니가 집에서 애를 보는 게 맞잖아' 이런 식이다.

그게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기본적인 삶의 모습이 돼 있다. 심각한 문제다.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육아를 잘하는 남성이 있을 수도 있고 돈 버는 게 더 적성에 맞는 여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온전히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삶을 꾸려가는 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게 구조적인 차별이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 성별 임금격차는 OECD 최고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2018년 기준으로 37.1%로 나타났다. 이정도 경제규모에도 불구하고 성별 간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이유가 뭔가.

: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루어온 과정을 보면 여성들의 저임금 착취를 빼놓을 수 없다. 60~70년대 경공업 여성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경제발전의 발판이 된 걸 부정할 수 없다. 그 때를 잊지 못한다. 누군가의 임금을 깎아내고 착취해서 다른 누군가의 배를 불려야 하는데, 그 착취의 대상이 '여성'이다.

'한국의 흑인은 여성'이라는 말도 있다.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각하고 일반화되어 있으면서 흑인들이 저임금 일자리에 몰려 있다. 비슷하게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들을 저임금 일자리에 몰아넣고 저임금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착취다. 경제규모와 관련이 없다. 사회 인권 척도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분단과 독재가 있었고 사회적인 합의에 의한 인권 신장이 더뎠다. 거기에 여성이 많이 희생됐다.

우리나라가 경제규모에 비해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이정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여성을 갈아 넣어서 유지되는 복지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돌봄을 전담하는 건 여성이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서 비용을 지불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사회가 지정한 여성의 기본 역할은 '돌봄'인 듯하다.

: 인간은 돌봄이 많이 필요한 존재다. 문제는 돌봄이 여성들에게 독박이 씌워진다는 점이다. 여성들에게 따라 붙는 기본 세팅값이다. 젊은 시절에는 채용 성차별로 발목을 잡기 시작해 나이 들어서는 가족 돌봄으로 경력단절까지 여성 생애 전반에 따라붙는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 없는, 무임금 무보상의 돌봄. 그리고 이게 일자리가 되는 순간 저임금이 된다. 요양보호사 같이.

돌봄은 인간사회에 꼭 필요하다. 인간은 돌봄이 많이 필요한 존재다. 태어나서도 그렇고 죽을 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소는 태어나자마자 걷는다. 사람은 일년 가까이 걸린다. 그렇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든가. 그 힘듦이 그 사회에서 가장 권력이 없는 존재에게 떠넘겨진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여성이기 때문에 아이를 먹이고 돌봐야한다는 책임론, 그걸 모성이라는 신화 안에 가둬놓았다. 아이를 낳았다고 모성이 생기는 게 아니다. 아이와 교감하고 애착을 형성해야 모성애가 점점 만들어진다. 모성이 본능이고 그렇기 때문에 돌봄이 여성의 당연한 역할인 것은 아니다.

사회가 남성들에게는 돌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성들은 돌봄이 자기의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집안일과 비슷하다. 내가 해오지 않은 일, 내가 하지 않았지만 되어 있던 일, 그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일이다.

프레시안 : 결혼을 하면 안되는 건가.

: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다고 해서 인생이 탄탄대로는 아니다.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여성도 끊임없이 차별에 맞서야 한다. 요즘은 고령화 때문에 노인돌봄이 문제가 되는데 나이든 부모의 돌봄이 누구에게 독박이 씌워지느냐, 며느리 아니면 딸이다. 특히나 비혼의 딸은 주요 타겟이다. 실제로 비혼의 딸들이 겪는 부모돌봄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우리보다 더 빨리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비혼 비출산이 탄탄대로'라는 말이 나오는 건 실제로 기혼 여성들과 비혼 여성들 사이에 임금격차는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기혼여성들은 가사와 육아라는 부담감을 짊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회사에서 실적을 내기 어렵고 회사에선 중요한 일을 맡기지도 않는다.

프레시안 : 국가에서는 그런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나.

: 국가가 제일 문제다. 정책을 만들 때 사용하는 워딩을 보면 알 수 있다. 2017년도 발표한 여성일자리대책을 보면 목표에 여성이 없다. '저출산 고령사회 극복', '경제발전' 이런 용어들만 나온다. 여성을 도구화해서 사고해왔다는 점이 그렇게 드러난다. '출산력', '노동력' 이런 식으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여성을 어떻게 이용해서 잘 써먹을까 하는 데에 정책이 초점이 맞춰진다. 시민으로서 존중받는 인격체로서의 여성이라는 걸 찾아보기 어렵다.

프레시안 : 작년에 성별임금격차 관련해서 의미 있었던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법원에서 판결 받은 국정원 성차별 채용 사례가 있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KEC 채용사례를 성차별로 시정권고했다. 위 두 사례는 공통적으로 성별 구분지어서 채용하고, 직군을 다르게 해서 고용형태와 연봉 등에서 차이를 둔다. 이전까지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이다.

: 판결은 사회의 반영이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사실 아직은 성별에 따른 고용상의 불이익 차별 소송 자체가 많지 않다. 이걸 차별이라고 이야기해서 문제제기한 다음에 나한테 떨어지는 실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실익이 없다. 노동법 같은 경우는 노동위원회로 간다.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 자체를 다루는 위원회가 없다. 그러다보니 소송으로 가야한다. 차별이라고 판단을 받으려면 형사소송을 해아하고 그런 다음에 소송에서 이기면 못 받은 임금을 받아야 되는데, 이때 민사소송을 다시 해야 된다.

콜텍 노동자들은 소송을 여섯 번 했다. 형사 세 번 민사 세 번. 여섯 번 하고나서야 겨우 차액임금을 받았다. 시간은 시간이려니와 돈도 돈이고. 어떤 실익을 얻을까.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른 위원회에 비해 진일보한 결정을 한다. 그런데 인권위 결정은 구속력이 없는 권고라는 게 문제다.

프레시안 : 법원에서는 채용 성차별이라는 판단이 잘 나오는 편인가.

: 변화는 분명 있는데 이게 '성차별이다'는 판단을 받는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차별을 판단하는 기준도 매우 협소하다. 미국은 차별을 판단할 때 모집단부터 다르다. 채용을 할 때 어떤 집단이 불리하다는 통계적인 수치를 내릴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는 그 채용에 응시한 사람만을 모집단으로 본다면 미국은 채용정보를 받아간 사람, 그 회사가 차별적이라는 소문을 듣고 지원을 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모집단에 넣어서 판단한다. 차별을 좀 더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한단계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국정원이나 KEC 사례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차별이라 판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많은 경우들은 성차별이라고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효성의 경우엔 성별에 따라 직군을 다르게 뽑고 비슷한 일을 시켰다. 직군이 다르니 임금이나 처우가 달랐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동일노동'이라는 판단을 받기가 어려웠다. 판단기준이 굉장히 엄격하다.

프레시안 : 해결되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MBC 성차별 채용은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은행권 성차별 채용도 흐지부지하게 지나가는 거 아닌지 우려스럽다.

: MBC 사례는 아직 계속 싸우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넣은 게 곧 결론이 나온다. 그걸 보고 이후에 어떻게 할 건지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은행권 성차별 채용은 정부에서 액션을 취하긴 했다. 다음 해에 채용 성비가 좀 조정이 됐다고 하는데 이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은행 같은 경우는 '텔러' 직군이 따로 있다. 그 직군은 여성을 집중적으로 뽑는다. 승진이 가능한 대졸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여성 채용을 제한해서 이 부분에 우리가 문제제기를 했다. 이걸 섞어서 발표하면 통계가 물타기 된다. 정규직 채용 성비가 개선됐는지를 봐야한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조심하고는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아예 그 성차별 채용을 못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현재 상황으로는 채용 성차별 관련 벌칙조항이 너무 미약하다. 벌금 최대 500만 원이다. 여성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밀어내도 500만 원 내면 땡이다.

노동관련 법들은 다른 법과 비교하면 벌칙조항이 굉장히 낮다. 우리나라는 체불임금 문제가 심각한데 특별한 제재가 거의 없다. 노동자들이 진정을 하면 근로감독관들이 와서 '어떻게 할거냐, 합의해라', 이렇게 하면 좀 버티다가 원래 임금만 준다. 그 기간의 이자라던가 그 기간에 노동자들이 겪었을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 피해보상은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는 노동자 손해다.

이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가야 하는 문제다. 아예 임금을 체불할 생각을 못하도록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쪽 법률안을 만드는 데 벌벌 떠는 경향이 있다. 노동법 위반이 굉장히 일상적이고. 별 일 아니라 생각한다. 그게 굉장한 문제라 본다.

프레시안 : 위 사례 말고도 구조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를 유발하는 게 뭐가 있나. 사례가 있나.

: 구조적으로는 여성집중직종이 따로있는 게 제일 크다. 직종분리, 고용 형태가 다르다. 여성들만 따로 뽑는데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또 회사 내부적으로는 직군 분리가 있다. 은행 같은 경우는. 텔러직을 따로 뽑는다.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뽑아놓고 저임금을 준다. 다른 정규직이면서 승진이 가능한 직군에는 남성들을 주로 뽑는다. 그런 식으로 구조화된 차별이 다 존재한다.

여성친화직종이라는 말은 있는데 남성친화직종이라는 말은 없다. 왜냐면 남성들은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여성들이 하기 좋은 일이라는 건 결국 저임금 일자리다. 여성들이 특별히 그 일을 잘 해서가 아니다. 돈을 조금 줘도 괜찮다는 일자리는 여성친화 직종, 여성친화 일자리라고 붙여 놓는다.

또 회사 안에서 똑같은 업무를 배치하지 않는다. 여성들 같은 경우는 보조적인 일들을 주로 시킨다. 마케팅이라면 홍보는 여성 시키고 기획은 남성 시키는 식이다. 그렇게 되면 여성들은 중요한 일에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다. 이런 경험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10년 넘게 일을 했어도 중요한 업무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승진도 힘들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사회구조적으로 여성을 저임금의 굴레에 가두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처음부터 여성을 저임금의 영역에 놓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성 스스로 저임금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 사회가 여성들의 노동을 저평가하면서 일부 직종, 직군, 고용형태로 한정하고 있다면, 여성들 스스로 저임금 직종을 택한다기 보다는 차별을 피해 가는 것이다.

'저임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일하는 직업 가운데서 그나마 대우가 괜찮은게 교사나 공무원이다. 지금은 교사나 공무원의 처우가 사람들의 생각과 많이 다르고 옛날만큼 저임금 일자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전부터도 여성들이 하기 좋은 일자리는 교사라는 이야기 많았다. 그 이유가 일찍 퇴근할 수 있어서. 집에 가서 가사와 돌봄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 생활 균형이라는 게 여성에게만 요구된다. 남성들은 사회활동을 하고 그걸 보좌하기 위한 여성의 역할이 가정되어 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여성 본연의 역할'로 여겨지는 돌봄, 그걸 동시에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게 교사와 공무원 정도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이 교사가 많이 됐다. 민간기업으로 가서 경쟁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할 수 있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회다. 그렇게 몰아가는 구조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여성들에게 '너는 왜 노력하지 않고 그런 선택을 했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하거나 그런 구조를 깨기에는 그만한 실익이 없고. 차별을 피한 선택이다.

프레시안 : 저임금에 엄청 열악한 일자리에 여성들이 몰리는 경우는 어떻게 봐야하나.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식당 이런 힘들고 저임금에 그런 일자리에도 여성들이 많이 몰린다. 직업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 다른걸 할 수가 없으니까. 요양보호사는 나이 많은 중년의 여성들이 많은 직종이다. 그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가정 내에서도 돌봄을 전담하던 분들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요양보호사가 접근하기 제일 쉽다. 교육기간도 짧고 바로 일할 수 있다. 전일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사일과 병행이 가능하다.

그 사람들이 살아온 삶과 현재 놓인 여건 등이 고려된 선택이다. 그러면 이 여성들이 선택했다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았다면 그 일을 안 한다. 여성의 삶은 선택지가 없다. 나이 많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뭐가 있나. 떠오르는 게 있나. 성차별을 극복한다는 말은 여성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의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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