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생각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활황에 활황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로 9번째를 맞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더 이상 영화제 홍보를 위하여 '구걸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전국의 온갖 매체를 장식하며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행사기간인 8일 내내 부산지역 3개 공중파 방송에서 데일리 특집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중 KBS의 경우에는 중간중간 전국방송도 실시하고 있다. 씨네21, FILM2.0, NKINO, MAXMOIVE, MOVIEST 등등 영화와 관련된 전문지나 전문 인터넷사이트들은 영화제 관객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데일리 뉴스지나 온라인 방송을 실시하며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영화제에 관한 한 오히려 정보가 범람하고 있어 관객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다 올해부터는 무가 일간지들마저 경쟁에 뛰어 든 상태다. 더 데일리 포커스는 행사 초반 특집판을 발행했으며 문화일보가 내는 무가지 AM7은 본지 2페이지를 할애해 부산발 기사를 싣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제대로 별도의 '충실한' 뉴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화 프로그램과 관련한 가이드 북 역시 사전에 이미 대량으로 배포한 상태다.
영화제 안을 들어가 보면 이들 매체들이 왜 이렇게까지 열을 내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실제로 관객들이 엄청나게 몰리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는 행사 기간인 8일동안 매년 평균 2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고 있다. 하루 평균 2만5천명이 영화를 보러 나온다는 얘기가 된다. 박스오피스 상위작이 아닌 보통 영화의 경우, 20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것 자체가 힘이 들 뿐더러 최소 3주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제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같은 인기를 반영하듯 영화제 상영관이 있는 남포동 일대는 보행이 힘들 만큼 관객들의 집중도가 심한 편이다. 지난 해부터는 상영관의 상당수를 해운대의 한 멀티플렉스로 옮긴 덕에 사정이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유동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금-토-일 주말 프라임 타임, 그러니까 오후 5시에서 8시 사이의 경우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남포동 상영관인 대영시네마와 부산극장 사이인, 이른바 PIFF 광장은 영화제가 마련한 각종 이벤트를 즐기려는 사람들까지 몰려 들어 한마디로 폭발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사정이 이러니 주말 시간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티켓 예매처의 한 자원봉사자는 "주말이었던 지난 9,10일의 티켓의 경우는 이미 영화제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매진됐다"며 "주말에 현장에서 티켓을 사서 원하는 영화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고 얘기했다. <화씨 911>과 함께 올해 미국에서 최대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나 한국 여성팬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일본의 미남감독 이와이 슈운지의 신작 <하나와 앨리스>, 올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일본 코레헤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나, 재일교포 감독 최양일이 연출하고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을 맡은 <피와 뼈>,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 후 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와 그리고 올 부산영화제에서 특별전이 마련된 그리스의 거장이자 영국의 켄 로치와 함께 세계 영화계에 몇 남지 않은 정통 좌파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작품들 등등은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란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인기 상영작에 관객들이 몰려 표구하기 경쟁을 벌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또 즐거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이제 부산영화제는 관객들이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며 교통비를 낭비하는 일을 줄여줘야 하는데 골몰해야 할 때다. 이 같은 일은 2008년, 해운대구 우1동의 '센텀시티' 안쪽에 건립될 영화제 전용관이 마련되면 해결될 문제이겠으나 그전까지 아마도 부산영화제의 최대 골칫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올해부터 그 같은 분위기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관객들의 상당수가 해운대면 해운대, 남포동이면 남포동으로 영화관람의 '편가르기' 경향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같은 상황은 영화제 사무국에서 의도적으로 인기 상영작의 상당수를 남포동의 대영시네마와 부산극장 1,2,3관에 집중 편성해 놓음으로써 일시 진정시키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정서적인' 대세는 이미 해운대쪽으로 기울고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 데에는 지난 2~3년동안 해운대 일대에 비교적 저렴하고 깨끗한 데다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컴퓨터 시설까지 완비한 숙박시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또 해운대에서 남포동,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영화제 관객의 흐름이 예년에 비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그동안 이 양 구간을 운영하던 셔틀버스마저 올해부터는 해운대 안쪽으로만 좁혀졌기 때문이다. 올해까지는 다소 힘에 부치는 한이 있어도 양쪽을 오가는 관객들 수가 어느 정도 유지가 되기는 했으나 아마도 내년부터는 점점 더 줄어드는 추세를 나타낼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상영관 수 때문에 영화제로서는 2008년까지 양쪽 지역을 다 커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용관 건립이 2008년 이후로가지 늦어지게 되면 영화제로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전용관 건립이 시급하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 현재 영화제 개막 10주년이 되는 내년쯤 시공식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거둔 눈부신 성과는,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www.piff.org)에 이미 자세하게 올라 있어 굳이 반복 게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해외 게스트들, 해외의 영화 바이어들이 그 어느 해보다도 부산영화제를 많이 찾아 왔다. 그만큼 이제 부산영화제가 '마켓'으로서의 기능을 '페스티발' 수준만큼 끌어 올렸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객들이 영화제를 즐기는 한편에서는 아시아권 영화에 대한 파이낸싱 방법 혹은 그 새로운 방향 등을 모색하는 제작자와 투자자들의 세미나가 열리기도 하고 영화 로케이션 사업을 모색하는 필름커미션 박람회 같은 행사에 해외 관계자들이 대거 몰려 서로의 영화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산영화제가 예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심야시간대에 열리는 국내 굴지의 투자배급사, 제작사들 주최의 '파티'다. 영화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비교적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여는 이들 파티는 단순하게 영화제를 즐기자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새로운 라인업을 공개하는 일종의 쇼케이스를 병행함으로써 사전판매(Pre-sale)를 확대하고 해외 투자를 유도하는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는 시네마서비스를 제외하고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쇼이스트 등등 주요 영화사들 상당수가 쇼케이스 파티를 주선해 만만찮은 성과를 거뒀다. CJ엔터테인먼트는 이런 과정 등을 통해 개봉대기작 가운데 하나인 정우성 주연의 멜로영화 <내 머릿 속의 지우개>를 일본 가가필름에 무려 2백70만달러(우리돈 31억원)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가격은 지금까지 일본에 판매된 금액 가운데 최고치다.
외국 영화인들이 주선하는 파티 또한 만만치 않다. 프랑스와 호주 등은 매년마다 영화제 기간중에 각각 '프랑스 영화의 밤'과 '호주 영화의 밤' 등을 개최해 왔으며 올해는 '중국 영화의 밤'과 독일 영화인들의 '저먼 파노라마' 행사 등이 가세했다. 그만큼 세계 영화인들 사이에서의 부산영화제에 대한 중요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몇가지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부산영화제는 순항중에 있다. 내년이면 10주년이다. 아마도 이를 계기로 보다 큰 질적 도약이 예상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영화제가 좀더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종종 흘러 나오고 있다. 지금껏 부산영화제는 최다 국가로부터 최대 편수의 영화를 들여와 다양한 영화문화를 형성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른바 양질전화의 법칙, 그러니까 양적 성장으로 인해 질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 프로그래밍에 앞서 부산영화제가 가져가야할 정치사회적 모토를 보다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산영화제는 과연 세계영화의 어떤 흐름을 지지하는지, 국제분쟁에 있어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인디 영화를 옹호하는지 혹은 아트영화를 고수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자기 태도를 분명히 할 때다.
국제영화제라면 보통 상징적인 캐치 플레이즈를 내건다. 예컨대 그리 유명하지 않은 호주의 멜본영화제조차 올해 영화제의 캐치 플레이즈로 'Need to know'를 내세웠다.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인종과 계급의 평화를 원한다면 (영화를 통해) 알아야 할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부산영화제는 지난 10년간 캐치 플레이즈를 내건 적이 없다. 정치적 중립성이 지금의 부산영화제를 키워 온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래서 우파의 텃밭에서 좌파적 성격을 지난 영화들을 마음껏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금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라면 국내 영화계를 향한, 그리고 세계 영화계를 향한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아끼는 많은 팬들의 고언이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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