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계방송' 시청 줄이기
이 시기 확진자 수, 사망자 수, 어디, 누가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본능이고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뉴스 채널에 중독될 필요는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포털의 실시간 뉴스만 쳐다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정보(인포메이션)가 병원균이 되면 이른바 '정보 역병(인포데믹)'이 유행한다.(☞ 바로 가기 : <더란셋(THE LANCET)> 2월 29일 자 '정보 역병과 싸우는 방법(How to fight an infodemic)')
"하루 최대폭 증가" "사망자 3명 추가" "최연소 환자" "마스크 대란" "OO시 우왕좌왕"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불안, 스트레스, 울분으로 이어지는 것이 태반일 터, 막상 우리 동네에서는 어디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는지 실용적 소식은 들을 수도 없다.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최선, 최고, 최대의 '우량' 정보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전혀 안 보는 것은 불가능하니, 제안한다. 방송 뉴스든 인터넷 뉴스 검색이든 이번 유행에 대한 소식 찾기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 두 차례로 줄이자. 그리고 '낚시형' 제목보다 정보형 제목의 뉴스를.
2. 마스크 양보하기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적은 개인으로는 마스크를 찾는 것이 당연하고 합리적이다. 개인 행동수칙으로도 의미가 있을 터, 모두가 강박이다 싶을 정도로 준수하고 있으니 유행을 줄이는 데도 한몫을 하리라.
문제는 '전 국민'이 되면서 필시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생기고 모자라는 곳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마스크 또한 '배분'이 필요하고, 그 원칙은 간단하다. 요즘과 같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곳부터 배분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것(감염병 유행 시기와 미세먼지가 관심인 시기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
당연히 의료진과 방역 요원들이 최우선이다. 그들은 모여 있고, 많은 환자를 만나야 하며, 그중에는 감염자도 있을 수 있다. 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가까이 접촉하고, 자주 말을 해야 하며, 특히 그 일을 피할 수 없는 사람도 우선순위가 높다.
혼자 있는 사람, 길거리를 다니는 경우, 사람이 아닌 무생물과 더 가까이 일하는 노동자들, 주로 외부에서 활동하면서 가까이 접촉하는 사람이 적은 경우, 사람이 많은 데라도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동선 등은 훨씬 덜 급하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부작용을 조심할 것도 이지 말자.(☞ 관련 기사 : <연합뉴스> 2월 4일 자 '신종코로나 차단에 꼭 보건용 마스크?…"일반 마스크도 괜찮아"', <뉴스톱> 2019년 1월 25일 자 '미세먼지 마스크, 정말 효과 없고 건강에 해롭나')
3. 개인적 거리가 아닌 '사회적 거리'
이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는 마땅하나, 몸과 마음까지 거리 두기가 압도하면 부작용이 안 생길 수 없다. 우리는 지난주 논평에서 말한 것, 필수 의료를 피하면 곤란하다는 것과 함께 경제 활동의 전면 중지가 미칠 부정적 효과를 걱정한다. 경제 그 자체를 중시하기보다 그 경제 또한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실내에서 밀접하게 접촉하는 사회적 활동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피하지만, 본래부터 경제적 약자인 사람들이 이 시기에 겪을 위험 또한 같이 줄여야 한다. 철저하게 안전한 범위 안에서, 이들이 일하고 돈을 벌며 생활의 물질적 토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사회적 경제 주체'가 되자고 주장한다.
4. '전수조사'와 '동선 추적'에 덜 불안해하기
할 수만 있으면(!) 완전한 전수조사와 완전한 동선 추적(그리고 이에 기초한 완전한 판단과 의심, 자기격리 등)이 얼마간 유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완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늘 명확할 수 없으나, 개인정보나 인권 문제를 빼고 순전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하는 소리다. 설사 완전해도 늦추는 정도 이상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신천지 교인 찾기에서 확인되듯 완전한 전수조사는 불가능하다. 완벽한 동선 추적도 (속은 시원하겠지만)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드러나는 즉시 비난과 오명이 쇄도하고 그 개인이 사회적 배제에 이를 정도면 당사자의 숨기는 가히 결사적이리라. 백약이 무효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방법들의 효용성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미 감염원을 모르는 확진자 수가 절반을 넘었다고 하지 않는가.(☞ 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2월 29일 자 '"혹시 저 사람도?"…국내 확진자 절반 이상 감염원도 몰라') 바이러스 전파와 활동 범위를 상상하면, 감염된 사람이 다닌 데가 아니라 지금 바이러스를 내뿜는 사람과 밀접하게 접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과거를 뒤지는 전수조사와 동선 파악으로 내가 피해야 할 그 의심자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지역에 처음 확진자가 나왔거나 몇 사람 되지 않으면 그나마 유행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숫자가 몇십, 몇백을 넘으면 개인행동 수칙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전수조사와 동선 추적에 정신이 없는 공무원들이 혹시 더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5. 빠지고 빈 곳에 주목하기
우리는 인터넷도 하지 않고 스마트 폰도 없는 분들을 잊기 쉽다. 이 글부터 말이 좋아 '시민' 행동이지 그들에게는 닿을 도리가 없다. 이 글을 읽어도 이해하고 해독하지 못하면 결과는 마찬가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 자신의 실천부터 구조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피하기 어렵다.
아예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거나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노숙인, 이주노동자, 독거노인, 장애인, 시설 거주자와 수용인 등은 또 어떤가. 이미 대남병원 사태에서 본 것과 같이, 흔히 그들은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으며, 더 흔하게 의식에서 지워진다. 국민과 시민으로부터 배제된다.
철저하게 주류에 기초해 축적된 체제는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현실에 무력하다. 체제와 체계가 무능하면, 그곳은 지역사회와 시민, 사회권력이 메울 수밖에 없다. 당장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뭐라도 하자고 제안한다.
관심을 두고 그런 곳과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 행동 수칙과 같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일, 마스크나 생활용품과 같은 자원을 나누는 실천, 지역 공동의 노력이나 외부 지원을 촉구하는 일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수십 년 축적한 시민의 역량도 진가를 발휘할 때다. 그중 하나로, 지역별로 풀뿌리 수준의 '시민대책위'를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시민의 힘으로 '민주적 공공성'을 조직하고 실천하면, 이 또한 공공의료 강화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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