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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내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이유는..."

[현장] '슈퍼 화요일' 앞두고 버지니아 유세...지지자 1만여 명 '버니' 연호

"우리는 1%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하는 경제와 정부를 창조할 것이다."(샌더스)

"버니! 버니! 버니! 버니!" (관중들)

2월 2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의 성 제임스 체육문화관(St. James Sports, Wellness, and Entertaining Complex)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유세에는 1만여 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버니"를 연호했다. 당초 리스버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유세는 예상보다 참가하겠다는 신청자가 많아 주최 측은 급하게 더 넓은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 29일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샌더스 유세. 한 아버지가 자녀를 무등 태우고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프레시안(전홍기혜)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민주당 경선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샌더스 의원은 다음 주 '슈퍼 화요일'(3월 3일)에 경선이 진행될 버지니아에서 유세를 진행했다. '슈퍼 화요일' 경선은 버지니아를 포함해, 텍사스, 캘리포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아칸소, 콜로라도, 유타, 미네소타, 테네시, 오클라호마, 매사추세츠, 버몬트, 메인 등 14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이날 경선에는 전체 대의원의 40% 정도(1357명)가 배정돼 있기 때문에 대선 경선 초반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또 이때부터 현재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 3위를 기록하고 있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경선에 참여한다. 샌더스 의원은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초반에 진행된 경선에 배정된 대의원 수가 많지 않고, 중도성향인 당 주류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슈퍼 화요일' 경선을 통해 선두자리를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버지니아주는 경합주(swing states) 중 하나로 꼽힌다. 버지니아는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세했지만, 2018년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이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정치 스타일과 총기 규제 이슈 등에서 입장 변화로 인해 실망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월말 버지니아주 수도인 리치몬드에서 2만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무장시위(총기를 소유한 사람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집회에 참석했다)가 열렸다. 버지니아 뿐 아니라 전국에서 온 집회 참석자들은 민주당 출신의 주지사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도입하려는 총기 규제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모였다. 버지니아는 트럼프 정부 들어 정치 권력 이동으로 인한 갈등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치몬드 집회와 관련해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에 투표하라"고 무장 시위대를 독려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샌더스 "기존 정치를 바꿔야 트럼프를 이긴다"


▲ 연설하고 있는 샌더스 의원. 이날 유세에는 1만여 명의 지지자가 참석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프레시안(전홍기혜)

이날 샌더스 의원이 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지점은 '트럼프 대항마'로서 자신의 경쟁력이었다. 민주당 내에선 샌더스가 최종 후보가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 '사회주의 대 민주주의' 프레임으로 집중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필패"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도 샌더스가 가장 쉬운 상대라는 인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은 이날 자신의 '본선 경쟁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대통령은 누구인가? 트럼프다. 우리는 이제 트럼프가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습적인 거짓말장이고, 부패한 정부를 이끌고 있고, 분명히 미국 헌법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선거 캠페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정의를 요구하며, 더 이상의 인종주의와 차별을 종식시키기를 원한다. 우리는 기후 정의를 원하며, 이 나라의 부의 불평등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한줌의 부자들이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 것에 신물이 났다.

우리는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더이상 과거와 똑같은, 어느 누구도 가슴 뛰게 만들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정치를 바꿔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트럼프를 이길 수 있게 할 것이다."

샌더스 의원은 이어 전국민 의료보험(메디 케어 포 올),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인 그린 뉴딜, 학자금 대출 탕감 등 대학 무료 교육(칼리지 포 올) 등 그의 핵심적인 공약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자신과 민주당 다른 대선주자들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그는 "억만장자와 대기업에 대한 엄청난 세금 감면 혜택을 줄인다면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을 탕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샌더스 의원에 앞서 연설을 한 일한 오마 하원의원은 "나는 우리가 분노하기 때문에 버니가 이기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오마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의원 등 2018년 총선을 통해 의회에 입성한 진보의 대표주자격들로 여겨지는 여성 의원 4명('스쿼드'라 불린다)은 모두 이번 대선에서 샌더스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스쿼드 의원들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우리는 군사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쓴다. 그래서 서민들의 주거와 아이들의 양육을 보조할 돈이 없다고 한다. 현재의 노동조건으로 인해, 현재의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이런 현재 시스템에 대한 당신의 분노를 대신해 싸워줄 사람이 누구인가? 그들(기성 정치인들)은 당신을 대리하지 않는다."

또 이날 대형 유통업체인 '세이프웨이'에서 일하는 미셀 리가 연단에 올라와 노동자들이 왜 샌더스를 지지해야 하는지 역설하기도 했다. 리는 "샌더스는 노동조합의 자랑스러운 지지자이며,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라면서 다른 후보들은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 안전 등 작업 환경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일한 오마 의원(왼쪽)과 샌더스 의원. ⓒWUAS90 화면 캡처

청년-노동자-성소수자 등의 전폭적인 지지...중산층-흑인 등 지지층 확대가 과제

이날 오후 4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유세에는 20-30대 청년층들의 참여에 눈에 띄었다. 알링턴에서 온 질 스코필드(여, 23) 씨는 샌더스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꾸준하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 그의 정치 경력은 모두 노동자, 여성 등 소수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샌더스 필패론'에 대해 그는 "현재 여론만 놓고 보면 민주당에서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고 낙관할 수 있는 후보는 없다"며 "오히려 기존 워싱턴 정치에 익숙한 바이든 같은 후보가 트럼프에게 더 취약하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들은 대학 등록금 문제, 저임금 문제, 그린 뉴딜 등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정치인을 원한다"며 "샌더스가 트럼프에게 지더라도,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의 정치가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당을 바꾸고, 우리 정치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집회에 참석한 30대의 남미 이민자 출신 마이클 씨는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으로 남미 출신 이주민들은 늘 불안에 떨고 있고 위축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며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치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샌더스 의원은 이날 유세장에 나온 지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청년, 노동자, 성소수자 등 진보적 색깔이 뚜렷한 유권자층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선명한 정치적 '색깔'은 지지층 확대에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50%에 가까운 압승을 거둔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인종 문제를 제외한 다른 사회적 이슈에서 중도적인 성향을 갖는 흑인 유권자들은 이날 경선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흑인 유권자들이 60% 정도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샌더스 의원은 이 지역에서 신규 유권자들을 끌어들여 열세를 극복하려고 했지만, 결국 흑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


버지니아 등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중도성향의 백인 중산층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는 것도 샌더스 의원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16년 트럼프 지지에서 2018년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등 백인 유권자가 90%가 넘는 지역에서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 시장이 강세를 보였던 것도 백인 중도성향 유권자들 덕분이다.


샌더스 의원은 이날 저녁에는 버지니아비치에서 유세를 열었다.

▲ 유세장 근처에는 농민, 성소수자, 아메리카 원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지지자들이 피켓 등을 들고 선전전을 했다.ⓒ프레시안(전홍기혜)

▲ 자원봉사자들이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각종 기념품을 팔았다. 샌더스 의원은 기업의 대규모 후원금인 '슈퍼팩'을 받지 않고 지지자들의 소액 후원을 통해 선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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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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