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항만과 인천 국제공항 등 대형 국책 사업 공사가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은 약한 지반 위에 그대로 진행돼 지반 침하가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서 건설교통부의 특별감사가 실시될 전망이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실 배수재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일부 기업에서는 최근 문제가 된 배수재를 보완한다면서 7년 전에 이미 사용이 금지된 배수재를 다시 사용하고 있어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국민의 안전은 뒷전인 건설업계의 현주소다.
***"7년 전 문제점 지적돼 사용 중지된 배수재 다시 사용해"**
국회 건설교통위 열린우리당 조경태 의원은 6일 국감자료를 통해, "부산 신항만과 인천 국제공항 확장 공사에 문제가 된 배수재 필터(SF-49) 대신 2004년 3월경부터 새로 쓰이고 있는 배수재 필터(D-165)는 이미 7년 전에 우리나라, 싱가포르 등에서 사용되다 문제가 많아 사용이 중단된 제품"이라고 지적했다.
조경태 의원은 "새로 쓰이는 배수재 필터(D-165)는 이미 1997년 건설교통부 산하 한국토지공사에서 배수 공사에 쓰이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한 제품"이라며 "기존에 쓰던 것(SF-49)이 문제가 되자, 7년 전에 사용이 중지된 제품을 다시 수입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 배수재 필터(D-165)의 경우에는 수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이 배수재로 배수 공사를 할 경우 여전히 지반 침하의 위험성이 상존한다. 실제로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H건설의 경우에는 이미 2003년부터 광양항 건설 현장에 기존에 문제가 된 배수재 필터(SF-49) 대신 다른 필터(5417HS)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안 마련한답시고 기능 떨어지는 물품 수입"**
조경태 의원실이 확보한 최근 3년간 배수재 필터의 수입 현황을 보면, 2004년 들어 이전에는 전혀 쓰이지 않았던 새로운 배수재 필터(D-165)의 수입량이 갑자기 늘어났다. 기존 배수재 필터(SF-49)의 문제점이 지적되자, 건설업체들은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한편으로 대안을 강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문제가 된 기존 배수재 필터(SF-49)는 2002년에는 수입 물량 전량(2만5천5백㎞)이, 2003년에는 전체 물량의 4분의 3인 2만9천1백㎞가 수입됐었다. 이렇게 수입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기존 배수재 필터(SF-49)는 2004년 5월 현재 전체 물량의 3분의 1인 8천6백㎞로 줄어들었다. 대신 2003년까지 전혀 수입 기록이 없는 배수재 필터(D-165)의 수입량이 전체 물량의 2분의 1인 1만3천8백㎞로 늘었다.
<표 1> 2002~2004 배수재 필터 수입 물량 비교
하지만 이 새로운 배수재 필터(D-165)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새로운 배수재 필터(D-165)는 부직포 표면에 칼렌더링(Calendering), 이른바 '곰보 처리'를 한 제품이다.
이 필터는 표면에 '곰보 처리'를 해 기존에 문제가 된 배수재 필터(SF-49)보다 시방서에 명시된 시험(ASTM D4751)을 통과하는 데는 더 용이하다. 하지만 실제 구멍의 크기는 기존 필터(SF-49)와 별 차이가 없어, 물과 함께 흙 알갱이가 그대로 통과되는 문제점은 그대로 남는다. 더구나 '곰보 처리'한 표면의 30%는 아예 물을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기능 면에서는 오히려 떨어지는 제품이다.
***"정부, 이미 7년 전 지적, "제조 원가 낮추고, 눈속임 위해서"**
이런 문제를 정부나 기업이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이미 7년 전 건교부 산하 한국토지공사는 이런 필터의 문제점을 잘 지적해 놓았다.
1997년 9월에 한국토지공사 토지연구소가 내놓은 <연약지반의 처리공법과 침하측정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기업들이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량이 작은 필터재를 사용한 후 시방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필터재 표면을 1~2㎜ 녹여 칼렌더링(Calendering, '곰보 처리')하고 있으나, 이렇게 '곰보 처리'한 부분은 물이 통과할 수 없어 '투수 면적'을 감소시킴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림 1> SF-49(왼쪽)와 D-165(오른쪽)의 비교. 표면에 '곰보 처리'를 했으나 구멍 크기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D-165의 경우에는 물이 통과할 수 있는 표면적만 70% 정도로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구멍 크기 통과 시험이 문제가 되자, 편법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기능이 떨어지는 배수재 필터(D-165)를 도입한 것이다. 실제로 시방서에 명시된 시험을 정상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1.5배나 비싼 필터(SF-77)을 사용해야 하나, 이 필터(D-165)를 사용할 경우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표2> 표에서 보듯이 D-165는 문제가 된 기존 SF-49와 동일한 무게로, 동일한 기능을 가진 제품이나 검사는 가격이 약 1.5배 비싼 SF-77과 같게 나온다.
정부는 이미 7년 전에 이런 문제를 지적해 놓고도 기업들의 편법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현재 더 큰 문제를 야기할지 모르는 새로운 배수재 필터(D-165)는 부산 신항만 배후부지·민자부두, 인천 국제공항 확장 공사에 그대로 쓰이고 있다.
***부적합 제품 수입 단가만 올려놓은 정황도 있어**
이렇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배수 공사에 부적합한 필터(D-165)를 사용하면서, 원 제조사만 이득을 보게 된 정황도 있다.
<그림 2>: 불과 보름 만에 1m 당 수입 단가가 28센트에서 31센트로 올랐다.
이 제품(D-165)의 수입 가격을 확인해 본 결과, 2004년 2월10일에는 22만4백40㎡를 수입하면서 1㎡당 단가는 28센트였으나, 2월24일에는 32만3천2백24㎡를 수입하면서 1㎡당 단가가 31센트로 올랐다.
불과 보름 만에 1㎡당 3센트나 오른 것이다. 물론 이 오른 금액은 고스란히 정부에게 청구가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국민들은 안전사고를 초래할 부적합한 자재의 수입을 위해, 혈세를 기업들에게 받치는 셈이다.
***대안도 있어, "국민 안전에 신경 써라"**
조경태 의원은 "이미 광양항 건설에 쓰이고 있는 우리나라 사양에 적합한 필터(5417HS)를 사용한 배수재를 쓰는 게 가능하다"며 "건설교통부와 기업들이 국민의 안전을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충분히 이런 문제는 막을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조 의원이 지적한 필터(5417HS)는 기존 제품보다 훨씬 더 질이 좋은 섬유(Fine Fabric)로 만든 부직포로 이미 2003년부터 H건설 등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필터의 1㎡ 당 수입 단가는 2004년 2월24일 현재 34센트로 다소 비싸나, 부적합 필터(D-165)의 1㎡당 단가가 31센트로 오른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는 아니다.
<그림3> 이미 광양항 배수 공사에 쓰이고 있는 5417HS.
더구나 배수 공사가 국가의 반영구적인 재산이 될 기반 시설의 안전성과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임을 염두에 둔다면, 기업들의 이런 구태의연한 행태는 이제 중단돼야 한다.
'특별 감사'를 약속한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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