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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겻불과 곁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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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겻불과 곁불

필자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절반을 그것에서 농사짓는 시늉을 해가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에 누에치기가 시들해 지니 뽕나무 캐라고 하여 손이 시리도록 삽과 곡괭이질도 해 봤고, 소 먹일 여물 쑬 때면 잘 익은 콩을 쇠죽에서 꺼내 먹기도 했다. 지금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정말로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하나가 왕겨를 때던 일이다. 건넌방에 약한 불을 지피고 왕겨를 한 말 정도 들이 부어 놓고 풍로(風爐풍구)를 돌린다. 살살 돌려야 하는데 성질 급한 필자는 지나치게 빨리 돌려서 짙은 연기가 나다가 결국은 그 연기가 ‘펑’하고 터져 버렸고, 그 소리에 놀라 정말로 뒤로 자빠졌다. 물론 얼굴에 옅은 화상도 입었으나 다행히 흉이 지지는 않았다. 그럴 때면 어른들이 나와서 왕겨를 태우는 법을 알려주고 은은한 그 불길을 즐기는 것을 보았다. 그때가 영동고속도로 공사를 하던 시절이니 참으로 오랜 기억 속에서 건져낸 이야기다.

흔히 어른들은 “이눔아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쬐는 것이여.”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의 곁에서 불을 쬐면 안 되는가 보다.’라고만 생각했었다. 가끔 어른들의 말씀 중에 “오뉴월 겻불도 쬐다 나면 서운한겨.”라고 하는 말이 뭔 소린지 몰라서 듣고 잊었던 적도 있다. ‘겻불’은 ‘겨를 태우는 불’이다. 주로 왕겨를 태운다. 불기운이 미미하여 더운 맛이 없다. 그런데 왜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고 했을까? 처음에는 남의 곁에서 불을 쬐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왕겨를 태우는 불은 쬐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속담사전에 보면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한 경우라도 체면을 깎는 짓은 하지 아니한다.”고 나타나 있다. 양반의 체면을 중시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양반의 숨은 미의식이 들어 있다. 겨를 태우는 불은 뜨겁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오래 타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반상의 구별이 확실하던 시절 상민들이 주로 겻불을 쬐고 있었는데, 양반이 가면 자리를 비켜주고 그들은 멀리서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양반은 그들을 위한 배려로 겻불을 쬐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양반들의 체면만 중시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내면에는 백성들을 생각했던 멋스런 모습이 들어 있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겻불과 곁불은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위의 글을 죽 읽어 보면 틀림없이 겨를 태운 불이므로 겻불이 맞다. ‘겨 + ㅅ + 불 = 겻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남이 불을 쬐는데 옆에서 불을 쬐는 것이기에 곁불이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곁불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곁불’의 사전적 의미는 ‘직접 관계없이 가까이 있다가 받는 영향’<오픈사전>이라고 나타나 있다. 혹은 ‘얻어 쬐는 불’, ‘ 가까이 보는 덕’, ‘ 남이 켰거나 들고 있는 불’과 같이 나타나 있지만 이는 모두 원래의 의미와 조금 거리가 있다. 원래 곁불이라는 뜻은 ‘목표 근처 있다가 맞는 총알’,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가까이 있다가 받는 재앙’이라고 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주로 “유탄 맞았다.”는 표현을 쓴다. 예전에는 총을 쏠 때 화약에 불을 붙여서 사용했다. 그래서 옆에 있다가 총알을 맞기도 했다. 거기서 유래한 말이 ‘곁불 맞는다.’고 한다. 그리고 “무사는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때의 곁불은 “얻어 쬐는 불”이라는 의미다. 곁불에는 “이익을 추구하려고 권력 주변에서 머물다가 예상치 못한 재앙을 당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겻불이나 곁불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의 관념과 백성을 추위를 배려하는 미덕이 함께 들어 있는 단어이고, 곁불은 이익을 추구하다 뜻밖에 재앙을 당한다는 의미가 강하니 서로 적확(的確)하게 구별해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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