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준지 감독, 한국의 극우영화 논란에 대해 말문을 열다**
일본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자신의 신작 <망국의 이지스>가 극우영화라는 한국내 일부 언론보도와 관련, 프레시안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망국의 이지스>는 일본의 메이저 투자사인 쇼치쿠(松竹)가 1백40억 원을 투자해 제작중인 군사액션 영화로 '이지스'는 최첨단 군함을 가리킨다.
<망국의 이지스>는 현재까지 시나리오 전체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일본군 고급장교와 테러리스트들이 이지스함인 이소카제를 탈취, 생화학무기가 장착된 미사일 탄두를 일본 열도에 겨냥한 채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놓고 일본 정부와 대치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근본적인 요구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수정하라는 것. 평화헌법은 군사작전권을 일본의 자위대가 갖지 못하도록 못박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국가 주권의 문제를 내세워 평화헌법의 수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고 이는 일본 정치권의 오래된 현안 가운데 하나다. 현 고이즈미총리 내각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단 일본이 UN 상임이사국으로 선정돼 국제사회의 동반자로서 인정을 받은 후 궁극적으로 군사작전권의 자위대 이양이라는 문제를 타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이즈미의 줄기찬 신사참배 행위는 일본내 그 같은 신(新)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일종의 정치적 상징성을 지니는 것으로 분석돼 왔다.
이런 상황 탓에 국내 언론은 <망국의 이지스>가 자위대의 재무장을 촉구하는 내용의 이른바 '극우 영화'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 예로 한 신문은"일본 방위청과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가 장비를 제공하는 등 사상최초로 제작지원에 발벗고 나설 예정"이라며 이는 "일본의 현 방위정책과 자위대의 한계 등을 묘사함으로써 군사력 강화란 메시지를 강하게 내포한 이 영화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강경우파 계열인 산케이(産經)신문이 이 영화에 6천만엔, 우리 돈 6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한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극우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망국의 이지스>가 극우영화라는 국내 언론의 비판에 따라 이 영화에 테러리스트로 출연중인 우리나라 여배우 채민서도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일종의 매국행위를 하는 게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다. 거센 비난여론 탓에 채민서는 지난 9월 중순 예정돼 있던 제4회 광주국제영화제 폐막식 MC로 예정돼 있다가 행사 직전에 교체되기도 했다. 채민서는 <챔피온>으로 데뷔, TV드라마 <무인시대>, 영화 <돈 텔 파파> 등에 출연해 온 신인급 연기자. 이번 영화에서는 '정희'라는 이름의, 실어증에 걸린 냉정한 테러리스트 역할을 맡았다. 국내언론은 '정희'라는 한국어 이름을 근거로 이 캐릭터가 북한 테러범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곧 이 영화가 일본 및 남북문제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영화의 제작사인 영화사 '데스티니'의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소헤이 고타키는 "그같은 비판은 모두 근거없는 추측에 따른 것으로 <망국의 이지스>는 결코 극우영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고타키는 "여자 캐릭터인 '정희'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며 "극중 정희가 북한 테러범이라는 주장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오히려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맡고 있는 사카모토 준지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KT> 등을 만든 작가. 일본 영화계에서는 선이 굵고 남성적인 스타일의 하드보일드풍 영화를 만드는 중견감독으로, 비교적 명망이 높은 인물로 손꼽혀 왔다. 사카모토 준지는 60년대 좌파운동의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정치사회적 이슈와 밀접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이를 이념적이거나 구조적인 관점으로 그리기보다는 인간 실존의 문제로 접근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일본 영화인 가운데 비교적 '친한파' 혹은 '지한파'로 알려져 있는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현재 한국내에서 자신의 영화가 극우영화로 인식되는 데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한국 관객들이 추후 자신의 영화를 보기 전에 오해가 불식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도쿄 외곽 닛카츠 스튜디오에서 24일 밤 9시부터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으며 프로듀서인 고타키 쇼헤이 씨가 합석했다.
다음은 사카모토 준지와의 일문일답 내용.
***인터뷰**
오동진: 극우영화라는 한국내 비난여론에 대한 심정은?
사카모토: 일부 내용만을 발췌해서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전체적인 줄기로 파악해야 한다. 작품으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다.
오: 오해라면 왜 그런 오해가 생겼다고 보는가?
사카모토: 영화의 줄거리 가운데 상당 분량이 자위대내 극우 강경파들이 사건을 주도하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한국의 <유령>이란 영화를 잘 알 것이다. <유령>에서도 핵미사일로 일본을 공격하려는 한국 군대내의 보수강경파가 중심인물이다.(극중 최민수가 맡은 배역을 말함 – 편집자 註)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령>이 극우영화인가? 오히려 그 반대의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내 영화 <망국의 이지스>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영화다. 오히려 일본 군부내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오: 군사액션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뭔가?
사카모토: 우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의 <유령>이나 <쉬리>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블록버스터급의 군사액션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우리 영화계 안에 그만한 기술력,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유령>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또 마침 거기에 걸맞는 원작소설이 한편 나왔다. 후쿠이 하루토시의 소설을 보고나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니까 한국의 일부 언론이 얘기하는 것처럼 일본내 극우 보수이데올로기를 대변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는 얘기다.
오: 방위청이 지원하고 산케이 신문이 투자했다는 게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사카모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군사액션영화를 만들면서 방위청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군사장비, 공간 등등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강제규 감독 역시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으면서 한국 국방부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이 부분은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태극기 휘날리며>는 강제규 감독측의 줄기찬 요청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사전 지원을 거부했다 – 편집자註) 산케이 신문이 투자 유치하는 과정은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으나 산케이는 9개 투자사 가운데 하나다. 투자액도 전체 예산인 1백40억 원 가운데 극히 일부분인 6천만엔만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정희'의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내느냐야말로 이 영화가 극우라는 오해를 벗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보이는데.
사카모토: 맞다. 이 캐릭터를 두고 북한 테러범이라고 단정짓는 것 같은데 그녀의 과거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이 여러가지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겠으나 그건 나중에 영화가 완성되고 나면 하나하나가 다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건, 난 어느 쪽이나 혹은 특정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굳이 한국 여배우인 채민서를 캐스팅한 이유는 뭔가?
사카모토: 채민서는 수많은 배우들과 함께 오디션을 보고 발탁됐다. 일단 이국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캐릭터인 만큼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 연기자도 똑 같은 조건으로 뽑고 싶었다.
오: 이 영화를 통해 당신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뭔가?
사카모토: 인간은 항상 흔들린다. 극단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할까의 문제가 나의 주된 관심사다. 극단적 상황에서는 이념이나 사상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조직이나 체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개개인들에 의해서 작동되는 것이다. 난 그 개개인들의 얘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지나치게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영웅의 이미지에 빠져있다. 영웅의 진짜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그점도 이 영화의 주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다시 소개되기를 바라는가?
사카모토: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나 역시 내 나라, 조국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자신의 국가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고 하면 흔히들 극우 민족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내 나라를 깊이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내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 나라에 대해 진정으로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난 <망국의 이지스>가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를 성실하게 파헤치고 그려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망국의 이지스>에 대해 한국에서 일고 있는 오해는 아마도 과거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략국가였기 때문에 빚어진 일일 것이다. 부디 한국 관객들이 아무런 편견없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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