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출생률은 OECD 국가 최하위이며 임신중단율도 높은 이상한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임신과 출산 대신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9년 발표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선택 이유로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33.4%,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 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가 32.9%가 각각 1, 2위로 나타났습니다. 즉, 임신중단을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회경제적 사유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자녀 양육으로 인해 직장 내에서 차별받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자녀 양육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과 지원도 미비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육아휴직은 이러한 차별 문제를 해결하고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입법정책입니다. 1987년부터 육아휴직 제도가 시행되었지만(남성의 육아휴직은 1995년 도입)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육아휴직 제도가 안전하게 정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일·가정 양립 실태와 정책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임금 노동자를 제외한 여성 5,43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출산휴가(산전후휴가)는 40%, 육아휴직은 21.4%가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비정규직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비율 조사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임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육아휴직 사용률은 출산휴가 6.6%, 육아휴직 1.8%에 불과했습니다. 정규직에게 육아휴직이 먹기 힘든 떡이라면, 비정규직에게 육아휴직이란 그림 속의 떡이란 이야기입니다.
정부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 기피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양육 부담'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실제 2019년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하여 35조 6,332억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올해는 약 40조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중에는 부모의 육아휴직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육아휴직, 자녀 돌봄 휴가 등 양육과 관련된 입법정책을 쏟아내는 것을 보며, 문득 저는 법률 조언을 얻기 위해 저를 찾아왔던 A와 B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올해 시행될 새로운 정책과 투입될 약 40조의 예산 중 A와 B를 위한 할당은 얼마나 될까요?
이기적인 계약직? : 계약직 A의 이야기
올해 초 임신한 A는 공공기관의 계약직입니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지던 무렵 A는 인사담당자인 C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조만간 기관에서 구인공고를 올릴 예정인데, A의 자리까지 공고를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미리'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A의 계약 기간은 충분히 남은 상태였고, 출산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A는 출산휴가를 쓰든, 육아휴직을 쓰든 자신의 선택이니 거취에 관한 결정을 강요하지 말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C가 다음과 같이 쏘아붙입니다.
"계약직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요?"
결국 그 후 A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됩니다. A의 빈자리는 또다시 결혼 전의 비정규직 여성으로 채워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C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한 경험이 있는 '정규직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육아휴직? : 무기계약직 B의 이야기
기간제 근로자였던 B는 최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B는 같은 무기계약직인 선임 G에게 지속해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그 스트레스로 일상생활과 업무에 어려움을 느낀 B는 직속 상사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예상하지 못한 조언을 듣게 됩니다.
"육아휴직을 가는 것은 어때요?"
B와 G는 해당 부서에서 이동이 불가능한 무기계약직이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고려되어야 하는 공간 분리 또는 업무배치 전환 등의 보호조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절차를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상사가 제시할 수 있었던 보호조치는 어린 자녀가 있는 'B의 육아 휴직 권유'였습니다. 그냥 그만두는 것보다는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이직 시 근무연수 산정에서도 유리하지 않겠냐는 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현재 B는 어쩔 수 없이 육아휴직 중입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을 해야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의 상처로 인하여 복귀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19년 7월 16일 '근로기준법' 내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시행되었지만, B를 위한 지원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B는 직장인들이 그렇게 사용하기 그렇게 힘들다는 "육아휴직"을 심지어 조직으로부터 추천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B의 원치 않은 육아휴직 끝 역시 "퇴사"로 마무리되겠지요.
비정규직에게는 일·가정 양립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던 A.
육아휴직을 쓰고 싶지 않았던 B.
저는 A와 B의 이야기 속 공통 키워드인 '육아휴직'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례에서 육아휴직은 처음 취지와는 다르게 변질되어 나타납니다. A는 실제 현장에서 육아휴직 지원체계에 대한 '접근' 자체를 차단당했습니다. B의 경우 육아휴직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다른 맥락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이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에게 육아휴직이란 '처음부터 사용할 수 없는 제도'이며 사용하더라도 원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제도'일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A와 B가 노동 당국에 신고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제 방법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은 A와 B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A와 B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와 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근로자로서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보장되어야만 하는 권리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경력' 전부를 오롯이 걸어야만 한다는 그들의 상황적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A와 B가 구제 절차 대신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그 문제를 야기한 차별적인 비정규직 고용 구조 때문입니다. A와 B가 자신의 의지대로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못했던 것처럼, 자신의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내기 역시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차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본질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갈등 관계가 아니라, 차별 발생을 허용하는 이분화 된 '고용구조'에서 찾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의 일상화'를 공고히 하는 사회 전체 구조를 더 깊숙이 분석하고 해체해야 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더욱 강하게 구조화된 비정규직 문제는 특히 여성의 임신·출산, 그리고 양육으로 인한 노동시장 이탈과 비정규직으로의 재진입 현상을 통해 더욱 공고히 되었습니다.
현행법과 제도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근로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지만, 결국 현실에서 이를 보장받는 집단은 아직도 '정규직 중 운이 좋은 일부'로 한정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이 차별을 정당화하고 근로자의 인권 침해를 일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별로 점철된 비정규직의 일상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소수의 정규직을 기준으로 하는 육아휴직, 임신·출산 정책은 그 기반부터 이미 흔들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사람을 범주화하고 차별하는 것을 정당화해오고 있는지 깊게 반성해야 합니다. 매년 다양한 입법정책이 쏟아지고 투입예산이 증가하고 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비정규직에게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우리는 이제 반드시 찾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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