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신상 공개는 무죄라는 <배드파더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국가기관이 아닌 사설 단체 또는 개인이 다른 사람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걸 허용하면 이익보다 침해되는 불이익이 크다는 주장이다.
수원지방법원 제 11형사부(이창열 부장판사)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구본창 씨에게 지난 1월 15일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 모두 피고인 구본창 씨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의 얼굴 사진과 실명, 거주지, 직장 등을 공개한 온라인 사이트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의 명예보다 자녀의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탄생했다.
피고인 구본창 씨는 2018년 9월부터 10월 사이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부모 중 5명(남성 3명, 여성 2명)에게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구 씨는 양육비 미지급자 제보를 받아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진에게 전달하는 자원봉사자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 운영진을 대신해 자원봉사자로 외부와 소통을 맡았다.
재판부는 1심에서 “피고인이 비방의 목적으로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를 공익 실현으로 판단했다.
수원지방검찰청은 2월 4일 법원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배드파더스> 사이트에서 피해자들을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표현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사이트 제목과 게시글을 언급하며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사람들은 모두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나쁜 부모'로 인식되기 때문에 양육비 미지급자의 개별적 사정이 고려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하면 비방이나 모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지적한 <배드파더스> 게시글 내용은 이렇다.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아빠들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책임한 아빠들이 너무 많고, 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니 둔감해져서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검찰은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私人)에게 다른 사람들의 신상정보 공개 권한을 줄 경우 법치주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검찰은 국가기관의 판단 아래 이뤄지는 신상정보 공개제도를 근거로 제시하며 "국가기관이 아닌 사설 단체 또는 개인이 다른 사람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걸 허용할 경우 이익보다 침해되는 불이익이 크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국가기관의 판단 아래 이뤄지는 신상정보 공개제도는 성범죄자, 체납자, 채용비리행위자, 임금체불사업주, 산재보상금 부정수급자에 해당된다. 이중 얼굴 사진이 함께 공개되는 건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가 유일하다.
또한 검찰은 사인(私人)인 피해자 개개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공적 사안이라고 본다고 하더라도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는 19일 기자에게 "검찰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아동학대가 아닌, 단순한 채권–채무 문제로 보았다"면서 검찰의 항소를 비판했다.
구 씨는 "무책임한 부모의 명예와 자녀의 생존권, 두 가지의 권리가 서로 충동할 경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개인적 명예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상식이자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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