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주에서 남한강을 부르는 말) 중류 일대에 위치한 도리섬은 멸종 위기종인 단양쑥부쟁이를 비롯해 표범장지뱀, 삵, 너구리, 고라니 등 수많은 야생 동식물이 발견되는 '생태계의 보고'로 꼽힌다. 그런 이곳에 정부는 남한강 평균 수면보다 7미터 가량 높은 섬을 깎아 육상 준설을 하고, 자전거 도로와 같은 위락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문제는 각종 멸종 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보호를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앞서 시행한 환경영향평가에는 이 같은 희귀 동식물의 존재가 누락돼 있으며, 특히 세계 유일의 희귀 식물이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 야생 식물 2급'인 단양쑥부쟁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도리섬 현장. 4대강 사업을 위한 준설 작업이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선명수) |
4대강 '삽질'에 파헤쳐진 '여강의 눈물'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단양쑥부쟁이 자생지 파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국토해양부는 여주군 바위늪구비 습지에서 진행된 공사가 단양쑥부쟁이를 사실상 멸종시킨다는 비판이 일자, "단양쑥부쟁이는 원형대로 보존 중에 있다"며 "단양쑥부쟁이 군락지는 이중 금줄 및 표지판을 설치해 보존 중에 있으며, 보존 대책을 마련한 후 공사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 '세계 유일' 단양쑥부쟁이, 4대강 '삽질'에 몰살되나)
그러나 국토해양부의 발표 후 두 달이 지났지만, 도리섬 어느 곳에서도 이중 금줄이나 표지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단양쑥부쟁이 군락지에는 사업의 시행 계획을 알리는 깃발만이 꽂혀 있었다. 국토해양부의 주장과 달리, 멸종 위기 식물에 대한 어떠한 조사와 보호 대책 없이 공사가 강행된 것이다.
▲ 도리섬 일대의 단양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는 세계 유일의 희귀 식물이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 동식물 2급이다. ⓒ프레시안(선명수) |
취재진을 목격한 건설 시공사 관계자가 "준설 표시선인 녹색 깃발까지만 공사하고, 나머지는 원형 보존된다"고 반박했지만, 정작 단양쑥부쟁이는 공사 구간인 녹색 깃발 안쪽에도 다수 분포해 있었다.
더 심각한 사실은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앞서 발표한 환경영향평가서 어디에도 도리섬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종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날 현장 조사 결과, 도리섬에는 멸종 위기종 2급인 표범장지뱀 역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리섬 내 단양쑥부쟁이는 물론이고 표범장지뱀에 대한 조사나 대책은 전혀 없었다.
▲ 도리섬에 서식하는 표범장지뱀의 모습. ⓒ프레시안(선명수) |
'졸속'과 '부실' 환경영향평가…희귀 동식물 누락돼
녹색연합 황민혁 활동가는 "현장 조사 결과, 지난 3월 도리섬에서 가창오리와 돌상어까지 발견됐다"며 "그러나 한강 사업 구간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기재됐던 표범장지뱀·가창오리·돌상어는 본안에서는 삭제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는 기재돼 있던 희귀 동식물이 갑자기 본안에서 사라진 까닭은 무엇일까? 정부가 지난 10월 작성한 환경영향평가 본안에는 한강 사업 구간에 서식하고 있는 법적 보호 야생 동물이 총 20종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현황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서 밝힌 31종에 비해 약 30퍼센트 이상이 축소된 것이다. 평가서 본안에는 '최근 5년간의 조사 자료'만 반영한다는 정부의 방침 때문이었다.
정부는 3개월 만에 완료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부실 논란'이 일자, 기존 조사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입장을 재차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초안에서 명시된 법적 보호종이 본안에서 누락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도리섬 지도. 곳곳에서 단양쑥부쟁이 등 희귀 동식물이 발견되지만, 정부는 이곳에 준설 공사를 하고 데크와 목교, 자전거 도로를 세울 예정이다. ⓒ4대강범대위 |
▲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도리섬 일부 구간의 모습. 정부는 이곳을 깎아 자전거 도로 등 위락 시설을 만들 예정이다. ⓒ프레시안(선명수) |
▲ 도리섬 내 공사 현장. 초록색 깃발이 준설 공사 구간임을 알리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대체 서식지' 마련?…"결국 단양쑥부쟁이 멸종시킨다는 말"
황민혁 활동가는 "지난 두 달 동안 현장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단양쑥부쟁이 자생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조사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보호 표지판이 달린 지역 밖에서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발견되는가 하면, 공사장 진입 도로변에 방치된 현장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 10일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 일대에서 단양쑥부쟁이 이식 작업이 졸속으로 진행된 현장이 목격됐다. 황 활동가는 "단양쑥부쟁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 40여 명이 뿌리가 상할 만큼 급하게 손으로 뽑아가며 채취하고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환경영향평가에서 단양쑥부쟁이 생육지 중 대부분을 '원형 보존'한다고 밝혔었지만, 막상 공사가 바위늪구비 습지를 비롯해 전 구간에서 진행돼 논란이 일자, 대체 서식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었다.
▲ 여주군 삼합리 단양쑥부쟁이 군락지 구간. 몇일 전 채취 작업으로 지금은 잡초만 수북하다. 멀리 준설 공사 현장의 모습이 보인다. ⓒ프레시안(선명수) |
그러나 대체 서식지 조성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주대학교 정민걸 교수는 "단양쑥부쟁이는 개척자종으로서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홍수와 같은 자연적인 교란이 있은 후 노출되는 유기물이 적은 지역에서만 정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어서 "공사의 공익성과 시급성도 없는 상황에서, 단양쑥부쟁이의 번식과 생태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계획 없이 멸종 위기종을 막연히 대체 서식지로 이식하겠다는 것은 무대책의 변명의 구실로 멸종 위기종인 단양쑥부쟁이의 생육지를 파괴하는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 활동가도 "현재 국내에서 단양쑥부쟁이의 서식 환경에 적합한 지역은 남한강 중류 일대가 유일하며, 이는 강 중류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홍수 교란터가 대부분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대체 서식지를 조성해 한 곳에 몰아넣는다면, 단양쑥부쟁이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는 △4대강 사업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멸종 위기종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할 것 △멸종 위기종 생육지를 원형 보존할 것 △지역 주민과 함께 공동 조사단을 꾸려 투명하고 합리적인 보존 논의를 할 것 △국내 멸종 위기종에 대한 연구 조사를 진행할 것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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